소노 미쓰코
1. 개요
소노 미쓰코는 고미즈노오 천황의 후궁으로 교고쿠노쓰보네로 불렸다. 1633년에 고코묘 천황을 낳았으며, 이후 여러 황족을 배출했다. 1654년에 준삼궁에 올랐으나 고코묘 천황이 사망한 후 미부인의 원호를 받고 출가했다. 소노 미쓰코의 존재로 소노 가문은 번성했으며, 그녀의 묘는 센뉴지 내 쓰키노와 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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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가 -
소노 구니코
소노 구니코는 고미즈노오인의 후궁으로 입궁하여 레이겐 천황을 낳았으며, 준삼궁으로 추증되고 신코기몬인이라는 원호를 받았다. -
소노가 -
소노 사치코
메이지 천황의 후궁인 소노 사치코는 소노 모토사치 백작의 딸로, 메이지 천황과의 사이에서 2남 6녀를 두었으며, 메이지 천황 사후에는 데이메이 황후의 여관장을 지냈고, 가도에 재능을 보여 우타카이하지메에서 선가를 받기도 했다. -
고미즈노오 천황 -
자의 사건
자의 사건은 1627년 도쿠가와 막부가 천황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종교계를 통제하려다 고미즈노 천황이 자색 법복을 수여한 것을 문제 삼아 칙허를 무효화하고 관련 승려들을 처벌한 사건이다. -
고미즈노오 천황 -
소노 구니코
소노 구니코는 고미즈노오인의 후궁으로 입궁하여 레이겐 천황을 낳았으며, 준삼궁으로 추증되고 신코기몬인이라는 원호를 받았다. -
1602년 출생 -
쥘 마자랭
쥘 마자랭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30년 전쟁 종식과 프랑스-스페인 전쟁 승리에 기여하고 프롱드의 난을 진압하여 루이 14세의 절대왕정 기반을 다진 추기경이자 정치가이다. -
1602년 출생 -
오토 폰 게리케
오토 폰 게리케는 진공 펌프와 정전기 발전기를 발명하고 마그데부르크 반구 실험을 통해 기압의 힘을 입증하며 진공과 대기압, 정전기 연구에 기여했으며, 저서 『신기한 실험들』을 통해 자신의 업적을 기록했다.
2. 생애
고미즈노오 천황의 후궁으로 들어가 교고쿠노쓰보네(京極局)로 불렸다. 간에이 10년(1633년)에 고코묘 천황을 낳았고, 그 후에도 슈쵸 법친왕, 겐쇼 여왕, 소쵸 여왕, 황녀 (카쓰라노미야)를 낳았다. 고코묘 천황의 치세 때인 조오 3년(1654년) 8월 18일, 준삼궁에 올랐으나, 같은 해 9월 20일 고코묘 천황이 승하했다. 같은 해 10월 6일에 다음 천황인 고사이 천황으로부터 미부인(壬生院)의 원호를 선하받았고, 10월 26일에 출가했다.
국모가 된 소노 미쓰코의 존재로 인해, 출신 가문인 소노가의 지위는 크게 높아졌다. 미쓰코의 아버지인 모토타다에게는 쇼호 2년(1645년)에 좌대신으로 추증되었다. 미쓰코의 오빠인 곤다이나곤 소노 모토나리의 딸 쿠니코도 고미즈노오 천황의 후궁이 되어 레이겐 천황을 낳았다. 국모를 두 명이나 배출한 소노가는 이후 크게 번창하였다.
교토부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이마쿠마노센잔쵸의 센뉴지 내에 있는 쓰키노와 능에 묘가 있다.
2.1. 황실 후궁
소노 미쓰코는 고미즈노오 천황의 후궁으로, 교고쿠노쓰보네(京極局)로 불렸다. 간에이 10년(1633년)에 고코묘 천황을 낳았고, 그 후에도 슈쵸 법친왕, 겐쇼 여왕, 소쵸 여왕, 황녀 (카쓰라노미야)를 낳았다. 고코묘 천황의 치세 때인 조오 3년(1654년) 8월 18일, 준삼궁에 올랐으나, 같은 해 9월 20일 고코묘 천황이 승하했다. 같은 해 10월 6일에 다음 천황인 고사이 천황으로부터 미부인(壬生院)의 원호를 선하받았고, 10월 26일에 출가했다.
국모가 된 소노 미쓰코의 존재로 인해, 출신 가문인 소노가의 지위는 크게 높아졌다. 미쓰코의 아버지인 모토타다에게는 쇼호 2년(1645년)에 좌대신으로 추증되었다. 미쓰코의 오빠인 곤다이나곤 소노 모토나리의 딸 쿠니코도 고미즈노오 천황의 후궁이 되어 레이겐 천황을 낳았다. 국모를 두 명이나 배출한 소노가는 이후 크게 번창하였다.
교토부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이마쿠마노센잔쵸의 센뉴지 내에 있는 쓰키노와 능에 묘가 있다.
2.2. 고코묘 천황 즉위와 사망
고미즈노오 천황의 후궁으로 교고쿠노츠보네(京極局)로 불렸다. 간에이 10년 (1633년)에 고코묘 천황을 낳았다. 그 후에도, 슈쵸 법친왕ㆍ겐쇼 여왕ㆍ소쵸 여왕ㆍ황녀 (카츠라노미야)를 낳았다. 고코묘 천황의 치세 때인 조오 3년 (1654년) 8월 18일, 준삼궁에 올랐으나, 같은 해 9월 20일, 고코묘 천황이 승하했다. 같은 해 10월 6일에 다음 천황인 고사이 천황으로부터 미부인 (壬生院)의 원호를 선하받았고, 미츠코는 10월 26일에 출가했다. 교토부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이마쿠마노센잔쵸의 센뉴지 내에 있는 쓰키노와 능에 묘가 있다.
국모가 된 그녀의 존재로, 출신 가문인 소노가의 지위는 크게 높아졌고, 미츠코의 아버지인 모토타다에게는 쇼호 2년 (1645년)에 좌대신으로 추증되었다. 미츠코의 오빠인 곤다이나곤 소노 모토나리의 딸 쿠니코도 고미즈노오 천황의 후궁이 되어 레이겐 천황을 낳았다. 국모를 두명이나 배출한 소노가는 이후 크게 번창하였다.
2.3. 가문의 번영
고미즈노오 천황의 후궁으로 들어가 쿄고쿠노츠보네(京極局)로 불렸다. 간에이 10년 (1633년)에 고코묘 천황을 낳았다. 그 후에도, 슈쵸 법친왕ㆍ겐쇼 여왕ㆍ소쵸 여왕ㆍ황녀 (카츠라노미야)를 낳았다. 고코묘 천황의 치세 때인 조오 3년 (1654년) 8월 18일, 준삼궁에 올랐으나, 같은 해 9월 20일, 고코묘 천황이 승하했다. 같은 해 10월 6일에 다음 천황인 고니시 천황으로부터 미부인 (壬生院)의 원호를 선하받았고, 미츠코는 10월 26일에 출가했다. 교토부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이마쿠마노센잔쵸의 센뉴지 내에 있는 쓰키노와 능에 묘가 있다.
국모가 된 그녀의 존재로, 출신 가문의 지위는 크게 높아졌고, 미츠코의 아버지인 모토타다에게는 쇼호 2년 (1645년)에 좌대신으로 추증되었다. 미츠코의 오빠인 곤다이나곤 소노 모토나리의 딸 쿠니코도 고미즈노오 천황의 후궁이 되어 레이겐 천황을 낳았다. 국모를 두명이나 배출한 소노가는 이후 크게 번창하였다.
2.4. 사망
고코묘 천황이 쇼오 3년(1654년) 9월 20일에 붕어하자, 같은 해 10월 6일에 다음 고사이 천황으로부터 닌부인의 원호를 선하받았으며, 미츠코는 10월 26일에 출가했다. 교토부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이마쿠마노 이즈미야마정에 있는 센뉴지 내의 겟린료에 묘가 있다.
국모가 된 그녀의 존재로 출신 가문인 소노가의 지위는 크게 올랐다. 미츠코의 아버지인 모토토에는 쇼호 2년(1645년)에 좌대신이 추증되었다. 또한 미츠코의 오빠인 곤다이나곤 소노 모토히사의 딸 구니코도 고미즈노 천황의 후궁이 되어 레이겐 천황을 낳았다. 국모를 두 명이나 배출한 소노가는 그 후 크게 번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