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대심
1. 개요
소대심은 남조 양나라의 황족으로, 간문제 소강의 아들이다. 532년 당양현공에 봉해졌으며, 영주자사, 강주자사 등을 역임했다. 후경의 난 당시 건강을 구원하려 했으나, 후경의 공격으로 강주에서 임약과 강화했다. 이후 간문제가 폐위된 뒤 551년 살해당했으며, 향년 2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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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년 출생 -
국광 (고창)
국광(고창)은 북위 효장제 영안 원년(528년)에 평서장군과 과주 자사를 역임하고 태림현백과 고창왕을 이었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
523년 출생 -
다타파부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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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남조)의 시중 -
소대기
소대기는 양나라 건문제의 아들로, 후경의 난에서 활약 후 황태자에 책봉되었으나 폐위되어 살해당했으며, 사후 애황태자로 추증된 비극적인 인물이다. -
양 (남조)의 시중 -
심약
심약은 남조 시대 송, 제, 양나라를 섬긴 문인이자 관료로서, 강남 호족 출신으로 경릉팔우의 일원이었으며, 궁체시의 선구자이자 사성팔병설을 주창하여 영명체와 근체시 발전에 기여했고, 양나라 건국 공신이자 역사서 편찬자이다. -
양 간문제의 황자 -
소대기
소대기는 양나라 건문제의 아들로, 후경의 난에서 활약 후 황태자에 책봉되었으나 폐위되어 살해당했으며, 사후 애황태자로 추증된 비극적인 인물이다. -
양 간문제의 황자 -
소대춘
소대춘은 남조 양나라의 인물로, 학문에 힘썼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후경의 난 때 살해된 인물이다.
2. 생애
양 간문제 소강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진숙용(陳淑容)이다.
소대심은 532년 당양현공(當陽縣公)으로 봉해졌고, 535년 영주자사(郢州刺史)를 맡았다. 541년에는 시중(侍中)과 석두수군사(石頭戍軍事)로 임명되었고, 547년 운휘장군(雲麾將軍)과 강주자사(江州刺史)로 바뀌어 임명되었다. 후경의 난이 일어나자 건강을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으나, 550년 임약에게 항복하였다. 551년 후경에게 살해당했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531년 아버지 간문제가 황태자가 되자 이듬해인 532년 당양현공(當陽縣公)으로 봉해졌고 식읍 1,500호를 받았다. 어릴 적부터 현명하고 밝은 성격이었으며, 문장을 잘 지었다.
535년 사지절도독영남사북사정신오주제군사(使持節都督郢南司北司定新五州諸軍事), 경거장군(輕車將軍), 영주자사(郢州刺史)를 맡았다. 13세의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아버지 소강은 "일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대리 관료에게 맡기고, 조금도 얽매여서는 안 된다"라고 훈계했다. 소대심은 주무(州務)를 스스로 결재하지는 않았지만, 발언은 항상 이치에 맞았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놀라 복종했다.
541년 시중(侍中)과 석두수군사(石頭戍軍事)로 임명되었다.
547년 운휘장군(雲麾將軍)과 강주자사(江州刺史)로 바뀌어 임명되었다.
2.2. 후경의 난과 최후
후경의 난이 일어나자 소대심은 수만 명의 사졸을 모아 수도인 건강을 구원하러 갔다.
549년 무제가 죽자 간문제가 즉위했고, 밀조를 내려 소대심을 산기상시(散騎常侍)와 평남장군(平南將軍)으로 삼았다. 그해 7월 18일 심양군왕(尋陽郡王)으로 봉해졌고 식읍 2천 호를 받았다.
550년 8월 18일 후경의 신하인 임약(任約)이 소대심이 있는 강주(江州)를 공격하자, 버티지 못한 소대심은 항복했다.
551년 후경이 간문제를 폐위한 뒤, 그해 10월 2일 소대심을 살해하니 향년 29세였다. 황태자 소대기, 소대균, 소대위, 소대구, 소대흔도 함께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