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 다다타네
1. 개요
소마 다다타네는 1637년에 태어나 1673년에 사망한 소마 나카무라 번의 3대 번주이다. 그는 가즈사국 구루리 번의 번주 도이 도시나오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소마 요시타네의 양자가 되어 가문을 상속받았다. 내정에 능하여 영내 검지를 실시하고, 신전 개발을 추진하는 등 번정을 개혁했다. 또한 막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 명군으로 불렸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이름 | 소마 다다타네 |
|---|---|
| 로마자 표기 | Sōma Tadatane |
| 한자 표기 | 相馬 忠胤 |
| 가명 | 겐고로 (源五郎) |
| 계급 | 종5위하 |
| 출생 | 간에이 14년 음력 7월 18일 (1637년 8월 19일) |
|---|---|
| 사망 | 엔포 원년 음력 11월 16일 (1673년 12월 24일) |
| 사망 당시 나이 | 37세 |
| 아버지 | 소마 요시타네 |
|---|---|
| 어머니 |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딸 가메히메 |
| 정실 | 도이 도시카쓰의 딸 |
| 측실 | 도이 도시타카의 딸 |
| 자녀 | 소마 사다타네 딸 (마쓰다이라 사다미치 정실) 딸 (오가사와라 나가오키 정실) |
| 관위 | 종5위하 시모쓰케노카미 (下総守) |
|---|---|
| 봉행 | 사무라이 |
| 번 | 소마 나카무라 번 |
|---|---|
| 재임 기간 | 1651년 ~ 1673년 |
| 이전 | 소마 요시타네 |
| 이후 | 소마 사다타네 |
| 다른 이름 | 도요시게 (豊重), 다다타네 (忠胤) |
|---|---|
| 혈액형 | 알 수 없음 |
-
쓰치야씨 -
쓰치야 다다나오
쓰치야 다다나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이 되어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섬겼으며, 가즈사 구루리 번의 번주가 되었고, 그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는 장면을 묘사했다는 설이 있는 '후지 삼보 세이켄지 그림 병풍'이 전해진다. -
쓰치야씨 -
쓰치야 마사나오
쓰치야 마사나오는 쓰치야 가즈나오의 장남으로, 여러 번을 거쳐 쓰치우라 번주를 역임하고 로주, 로주 수좌를 역임하며 4명의 쇼군을 섬겼으며, 아코 사건 관련 진무와 도쿠가와 요시무네 옹립에 기여하고 82세에 사망했다. -
소마 나카무라번주 -
소마 모로타네
소마 모로타네는 소마 노리타네의 친자이자 소마 타카타네의 양자이며, 아오야마 유키히데의 딸을 정실로, 여러 측실과 자녀를 두었던 소마씨 가문의 인물이다. -
소마 나카무라번주 -
소마 사다타네
소마 사다타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소마 씨 당주로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복종하며 가문 유지에 힘썼고, 농업 장려 등의 정책으로 영내 경제를 활성화했으며, 그의 삶은 공연 예술 작품으로도 창작되었다. -
소마씨 -
소마 나카무라번
소마 나카무라번은 가마쿠라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무쓰국 일대를 다스렸으며,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영지를 지켜내고 번의 체제를 갖추었으나, 폐번치현으로 나카무라 현이 되었다가 후쿠시마현에 통합되었다. -
소마씨 -
사타케 요시쓰마
무쓰국 소마 나카무라 번주 소마 마스다네의 아들로 태어나 아키타 신덴 번 사타케 가문의 양자가 된 사타케 요시쓰마는 보신 전쟁에서 신정부군에 가담하여 활약한 후 메이지 유신 이후 종4위로 추증된 에도 시대 후기에서 메이지 시대 초기의 무사이다.
2. 생애
소마 다다타네는 내정에 뛰어난 수완을 보여 번정 개혁에 힘썼으며, 에도 막부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 명군으로 불렸다.
1673년 10월, 소마 나카무라 성에서 병으로 쓰러져 11월 2일에 사망했다. 묘소는 미나미소마시 도케이 사찰이다.
2.1. 출생과 가독 상속
1637년(관영 14년), 카즈사 쿠루리 번 2대 번주 토야 리나오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케이안 4년 3월 3일, 무츠국 소마 나카무라 번 2대 번주 소마 요시타네가 사망했다. 요시타네에게는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죠오 원년 2월 8일, 리나오의 차남을 요시타네의 딸인 카메히메와 혼인시켜 양자로 삼아 소마 가문의 가독을 상속하게 했다. 이후 에도 막부 노중 마츠다이라 노부츠나에게 인정받아 소마 다다타네로 개명했다. 같은 해 12월 28일, 종5위하 나가토노카미에 서임되었다.
2.2. 번정 개혁
메이레키 2년 영내 검지를 실시하여 연공 감면, 검약, 100섬 당 1냥의 적립금 제도를 실시했다. 칸분 8년에는 신전 개발을 했다. 막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명군으로 불렸다.
2.3. 막부와의 관계 및 사망
다다타네는 막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명군이라고 불렸다. 1651년 3월 3일, 무쓰국 소마 나카무라 번 2대 번주 소마 요시타네가 후사 없이 병사하자, 1652년 2월 8일, 도야 리나오의 차남이 요시타네의 딸 가메히메와 결혼하여 양자가 되어 소마 가문의 가독을 상속받았다. 이는 에도 막부 노중 마쓰다이라 노부쓰나에게 인정받아 소마 다다타네로 이름을 바꾸었다. 같은 해 12월 28일, 종5위하 나가토노카미에 서임되었다.
1673년 10월, 소마 나카무라 성에서 병으로 쓰러져 11월 2일에 사망했다. 묘소는 미나미소마시 도케이 사찰이다.
3. 가계
소마 다다타네는 쓰치야 도시나오의 아들이며, 친어머니는 나카히가시 다이젠의 딸인 레이코인(측실)이다. 소마 요시타네를 양아버지로 삼았다. 정실은 소마 요시타네의 장녀 카메히메이다.
3.1. 부모
* 친아버지: 쓰치야 도시나오
* 친어머니: 레이코인(나카히가시 다이젠의 딸, 측실)
* 양아버지: 소마 요시타네
3.2. 정실
* 소마 요시타네의 장녀 카메히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