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구
1. 개요
소방구는 남조 양나라의 인물로, 상동왕 소역의 넷째 아들이다. 소방구는 남안후에 봉해졌으며, 형주 자사를 거쳐 시중, 중위장군을 역임했다. 형 소방등과 소방제가 죽자 왕세자가 되었고, 이후 황태자로 책봉되었으나 서위의 침략으로 인해 아버지 원제와 함께 살해되었다. 사후에는 민회태자로 추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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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효원제의 황자 -
소방등
소방등은 남조 양나라 원제 소역의 맏아들로, 어려서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후경의 난과 하동왕 소예 토벌에 참여했다가 22세에 익사했으며 사후 무열세자로 추시되었다. -
양 효원제의 황자 -
양 경제
양 경제는 남조 양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서위의 공격으로 아버지 원제가 죽자 양왕으로 옹립되어 국정을 맡았으나 진패선에게 제위를 넘겨주고 암살당했다. -
남북조 시대의 황태자 -
소대기
소대기는 양나라 건문제의 아들로, 후경의 난에서 활약 후 황태자에 책봉되었으나 폐위되어 살해당했으며, 사후 애황태자로 추증된 비극적인 인물이다. -
남북조 시대의 황태자 -
소통 (양나라)
양나라 무제의 장남이자 태자였던 소통은 《문선》 편찬으로 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요절하여 황위에 오르지 못했고, 그의 죽음은 양나라 쇠퇴의 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
554년 사망 -
성왕 (백제)
성왕은 백제의 제26대 왕으로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변경하는 등 백제 중흥을 위해 노력했으며 불교를 장려하고 왜에 불교를 전파했지만, 신라와의 관계 악화로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했다. -
554년 사망 -
서위 폐제
서위 폐제 원흠은 북위 효문제의 손자이자 서위 문제의 장남으로, 우문태와의 갈등으로 폐위 및 살해된 서위의 제2대 황제이다.
2. 생애
소방구는 소역의 넷째 아들로, 어머니는 원귀인이다. 소방구는 남안현후(南安侯)에 봉해졌다가, 547년에는 사지절, 도독 상영계영성합라 7주 제군사, 진남장군, 상주자사가 되었고, 548년에는 시중, 중위장군으로 소환되었다. 소역이 상동왕(湘東王)으로 봉해진 뒤 소방구를 남안후로 삼았다.
549년과 552년에 소역의 아들들이 잇따라 전사하자, 소방구가 왕세자가 되었고 소원량으로 개명했다. 소역이 즉위한 후에는 황태자가 되었다.
소방구는 총명했지만, 아버지처럼 흉폭하고 의심이 많았다. 554년, 서위군이 강릉을 함락하면서 원제와 함께 살해당했다. 555년에 소방지가 즉위한 뒤 민회태자로 추시되었다.
2.1. 초기 생애 및 관직
소방구는 소역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원귀인이다. 처음에는 남안현후(南安侯)에 봉해졌고, 아버지 소역을 따라 강릉으로 내려갔다. 547년(태청 원년), 사지절, 도독 상영계영성합라 7주 제군사, 진남장군, 상주자사가 되었다. 548년(태청 2년), 시중, 중위장군으로 소환되었다. 소역이 무제로부터 상동왕(湘東王)으로 봉해진 뒤, 소방구를 남안후로 삼았다.
549년 소역의 맏아들인 상동 세자 소방등이 전사하자 소역은 둘째 아들 소방제를 왕세자로 삼았다. 그러나 552년 소방제도 전사했으므로 소역은 소방구를 왕세자로 삼았고, 이때 소방구는 소원량으로 개명했다. 이후 소역이 즉위하고 소방구를 황태자로 삼았다.
소방구는 총명했지만, 아버지와 같이 흉폭하고 의심이 많았다.
2.2. 왕세자와 황태자 책봉
549년에 소역의 맏아들인 상동 세자 소방등이 전사하자 소역은 둘째 아들 소방제를 왕세자로 삼았다. 그러나 552년에 소방제도 전사했으므로 소역은 소방구를 왕세자로 삼았고, 이때 소방구는 소원량으로 개명했다. 이후 소역이 즉위하고 소방구를 황태자로 삼았다. 승성 원년 11월 기묘일에 황태자로 세워졌다.
2.3. 죽음
554년 서위의 대장 우근(于謹)이 양나라의 수도 강릉을 함락하자, 소찰은 원제와 소원량, 그리고 원제의 열째 아들인 시안왕 소방략 등을 모두 살해했다.
555년 원제의 아홉째 아들인 진안왕 소방지가 황제로 즉위한 뒤, 소원량을 민회태자로 추시했다.
2.4. 사후
소역이 무제로부터 상동왕(湘東王)으로 봉해진 뒤, 소방구를 남안후(南安侯)로 삼았다.
549년 소역의 맏아들인 상동 세자 소방등이 전사하자 소역은 둘째 아들 소방제를 왕세자로 삼았다. 그러나 552년 소방제도 전사했으므로 소역은 소방구를 왕세자로 삼았고, 이때 소방구는 소원량으로 개명했다. 이후 소역이 즉위하고 소방구를 황태자로 삼았다.
554년 서위의 대장인 우근(于謹)이 양나라의 수도인 강릉을 함락시키자, 소찰은 원제, 소원량과 원제의 열째 아들인 시안왕 소방략 등을 모두 살해했다.
555년 원제의 아홉째 아들인 진안왕 소방지가 황제로 즉위한 뒤 소원량을 민회태자로 추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