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소공 (득)
1. 개요
송 소공 (득)은 송나라의 군주로, 송 경공의 후계자 경쟁에서 승리하여 즉위했다. 경공은 아들이 없어 동생의 아들인 득과 계를 궁중에서 길렀으며, 경공 사후 대윤이 계를 옹립했으나, 여섯 경의 반대와 백성들의 지지를 얻어 득이 옹립되었다. 그는 묵자를 등용하고 초나라의 침략을 받았으며, 권력 다툼으로 잠시 쫓겨났으나 복위하여 65년간 재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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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04년 사망 -
다리우스 2세
다리우스 2세는 기원전 423년부터 404년까지 아케메네스 제국을 통치한 왕으로, 제국 안정과 국력 회복을 위해 노력했으나 지방 총독들의 반발, 왕실 내부 권력 다툼, 잦은 전쟁 등으로 제국은 쇠퇴했다. -
춘추 전국 시대의 군주 -
윤상 (월나라)
춘추 시대 월나라의 제34대 군주인 윤상은 월자 부담의 아들이자 구천의 아버지로, 기원전 538년부터 기원전 497년까지 재위하며 오나라와 잦은 충돌을 겪었다. -
춘추 전국 시대의 군주 -
송 민공 (공)
송 민공은 송나라 정치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송 정공의 아들이며 불보하와 송 여공을 자녀로 두었다. -
중국의 군주 -
제지
중국 신화와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제지는 삼황오제 시대 인물로, 사기에는 고황제의 아들로 폭정을 펼친 것으로, 다른 기록에는 황제의 뒤를 이어 통치한 인물로 기록되어 그 통치 기간과 성격에 대한 기록이 엇갈린다. -
중국의 군주 -
제후
제후는 고대 중국에서 왕에게 봉토를 받아 통치하는 세습적 수장으로, 동아시아와 유럽의 봉건 제도에서 유래되었으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이묘, 귀족 등으로 불렸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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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경공은 아들이 없어서 동생인 공자 서진(褍秦)의 아들인 공손 주(周)의 두 아들 득(得)과 계를 궁중에서 길러 후계자를 뽑으려고 했다.
기원전 469년에 경공이 끝내 태자를 세우지 않고 죽자 경공이 총애하던 신하 대윤(大尹, 관직 이름)이 계를 옹립했다. 어느 날 득이 낮잠을 자다 꿈을 꾸었는데 궁으로 들어가는 큰 문에 동생인 계가 누워서 자고 있고 자신은 한 마리 까치가 되어 계의 머리 위에 앉는 꿈이었다. 득은 깨어나서 자신이 장차 계를 대신하여 임금이 될 징조라고 여겼다.
좌사(右師) 황완(皇緩), 대사마(大司馬) 황비아(皇非我), 사도(司徒) 황회(皇懷), 좌사(左師) 영불완(靈不緩), 사성(司城) 악패(樂茷), 대사구(大司寇) 악주서(樂朱鉏)의 여섯 경(卿)은 이에 반대하여 백성들에게 형인 득을 제치고 계가 선 것은 옳지 못하다고 하자 백성들이 이에 동조했다. 대윤도 백성들에게 이미 세워진 군주를 다시 바꾸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했지만 백성들이 그를 비난했다. 여섯 경이 백성들을 선동하여 대윤을 체포하라고 하니 마침내 대윤과 계는 초나라로 달아났다. 여섯 경은 그 길로 득을 맞이하여 세웠다.
《사기》에는 공손 주가 규(糾)로 되어 있으며 경공이 규를 죽이자 이에 원한을 품어 경공 사후 경공의 태자를 죽인뒤 자립했다고 하며, 계에 대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송 소공은 즉위 후 묵자에게 송나라로 와서 정치에 참여할 것을 청했고, 절한 뒤 대부(大夫)로 임명했다. 묵자는 "위로는 임금의 일이 없으며, 아래로는 경농하는 일이 없다"고 칭송받았다.
초나라가 혜왕과 성왕 때 일찍이 두 번에 걸쳐 송나라를 침공하여 수도를 포위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만년에는 대환(戴歡)을 대재(大宰)로 삼았고, 사성 황희(皇喜)가 전정했는데 두 사람의 무리가 서로를 잔살함에 이르자 후에 사성 자한(子罕)이 대환을 쳐서 패배시키고 소공을 쫓아내니 소공은 비(鄙)로 달아났다. 후에 잠심하고 잘못을 고친지 3년이 지나자 복위되었고 65년 재위했다.
2.1. 즉위 과정
송 경공은 아들이 없어서 동생인 공자 서진(褍秦)의 아들인 공손 주(周)의 두 아들 득(得)과 계를 궁중에서 길러 후계자를 뽑으려고 했다.
기원전 469년에 경공이 끝내 태자를 세우지 않고 죽자 경공이 총애하던 신하 대윤(大尹, 관직 이름)이 계를 옹립했다. 어느 날 득이 낮잠을 자다 꿈을 꾸었는데 궁으로 들어가는 큰 문에 동생인 계가 누워서 자고 있고 자신은 한 마리 까치가 되어 계의 머리 위에 앉는 꿈이었다. 득은 깨어나서 자신이 장차 계를 대신하여 임금이 될 징조라고 여겼다.
좌사(右師) 황완(皇緩), 대사마(大司馬) 황비아(皇非我), 사도(司徒) 황회(皇懷), 좌사(左師) 영불완(靈不緩), 사성(司城) 악패(樂茷), 대사구(大司寇) 악주서(樂朱鉏)의 여섯 경(卿)은 이에 반대하여 백성들에게 형인 득을 제치고 계가 선 것은 옳지 못하다고 하자 백성들이 이에 동조했다. 대윤도 백성들에게 이미 세워진 군주를 다시 바꾸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했지만 백성들이 그를 비난했다. 여섯 경이 백성들을 선동하여 대윤을 체포하라고 하니 마침내 대윤과 계는 초나라로 달아났다. 여섯 경은 그 길로 득을 맞이하여 세웠다.
《사기》에는 공손 주가 규(糾)로 되어 있으며 경공이 규를 죽이자 이에 원한을 품어 경공 사후 경공의 태자를 죽인뒤 자립했다고 하며, 계에 대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2.2. 묵자 등용
송 소공은 즉위 후 묵자에게 송나라로 와서 정치에 참여할 것을 청했고, 절한 뒤 대부(大夫)로 임명했다. 묵자는 "위로는 임금의 일이 없으며, 아래로는 경농하는 일이 없다"고 칭송받았다.
2.3. 초나라 침입
2.4. 권력 다툼과 복위
송 경공은 아들이 없어 동생 공자 서진(褍秦)의 아들 공손 주(周)의 두 아들 득(得)과 계를 궁중에서 길러 후계자를 뽑으려 했다. 경공이 끝내 태자를 세우지 않고 기원전 469년에 죽자, 경공이 총애하던 신하 대윤(大尹)이 계를 옹립했다. 그러나 좌사(右師) 황완(皇緩), 대사마(大司馬) 황비아(皇非我) 등 여섯 경(卿)은 백성들을 선동하여 대윤과 계를 초나라로 쫓아내고 득을 맞이하여 세웠다. 《사기》에는 공손 주가 규(糾)로 되어 있으며 경공이 규를 죽이자 이에 원한을 품어 경공 사후 경공의 태자를 죽인 뒤 자립했다고 하며, 계에 대한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즉위한 후 묵자를 대부(大夫)로 임명했다. 초나라 혜왕과 성왕 때 두 번에 걸쳐 송나라를 침공하여 수도를 포위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만년에는 대환(戴歡)을 대재(大宰)로 삼았고, 사성 황희(皇喜)가 전정했는데 두 사람의 무리가 서로를 잔살했다. 이후 사성 자한(子罕)이 대환을 쳐서 패배시키고 소공을 쫓아내니 소공은 비(鄙)로 달아났다. 3년 후, 소공은 잠심하고 잘못을 고쳐 복위되었고 65년 재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