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다이 나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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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쇼다이 나오야는 일본의 스모 선수로, 1991년 구마모토현 우토시에서 태어났다. 우토 초등학교에서 스모를 시작하여 구마모토 농업고등학교 시절 청소년 전국 스모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고, 도쿄 농업 대학에서 요코즈나로 활약했다. 2014년 프로 스모에 입문하여 2020년 9월 바쇼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며 오제키로 승진했다. 요츠즈모 스타일을 선호하며, 2024년 1월 대회에서 요코즈나 테루노후지를 꺾고 킨보시를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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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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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의 쇼다이
본명쇼다이 나오야
출생일1991년 11월 5일 ()
출생지구마모토현 우토시
신장184.0cm
체중169.0kg
BMI47.78
소속 헤야토키츠카제베야
대학도쿄 농업대학
기술오른쪽 샅바 잡고 공략 (미기욧츠), 기대기 (요리)
최고 계급동쪽 오제키
최종 업데이트2024년 12월 23일
경력
시코나 (링네임)쇼다이 나오야 (正代 直也)
별칭쇼다이, 나오야, 마사요
첫 데뷔2014년 3월
최고 랭크오제키 (2020년 11월)
통산 전적472승 399패 10결장 (64개 바쇼)
마쿠우치 전적404승 381패 10결장 (53개 바쇼)
우승 기록
마쿠우치 우승1회
쥬료 우승1회
마쿠시타 우승1회
죠노쿠치 우승1회
수상
감투상6회
수훈상1회
금성
금성 획득2개
금성 획득 상대하루마후지
테루노후지
기타 정보
현재 순위
현재 순위동쪽 마에가시라 4 (2024년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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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린 시절 및 스모 경력

쇼다이 나오야는 1991년 11월 5일 구마모토현 우토시에서 태어났다. 3500g의 몸무게로 태어나, 유아기에는 모유가 부족해 울음을 그치지 못할 정도로 식욕이 왕성했다. 생후 11개월에 걸어 다니는 등 성장이 빨랐고, 1세에 1되의 떡을 짊어졌다. 우토 초등학교 1학년 때 우토 소년 스모 클럽 감독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스모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난 삼아 시작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훈련은 본격화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국 스모 대회에 출전했고, 츠루시로 중학교 재학 중에는 전국 중학교 스모 선수권 대회 우승팀의 예비 멤버였다. 구마모토 농업고등학교 마지막 해에는 청소년 전국 스모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도쿄 농업 대학에 진학하여 국제 농업 개발 학부에서 국제 식품 정보 과학을 공부했다. 2학년 때 대학 요코즈나가 되었고, 쓰케다시 자격으로 프로 스모에 진출할 수 있는 마쿠시타 15위의 자격을 얻었지만, 학업을 우선하여 이 기회를 놓쳤다. 대학 3학년 때 전일본 스모 선수권 대회에 진출했지만, 엔도에게 패하여 아마추어 요코즈나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했다. 대학 4학년 때 쓰케다시 자격을 얻지 못했다. 1학년 때는 각계 진입을 현실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도요노시마에게 "몸도 만들어졌고, 프로에서도 해낼 수 있어"라는 말을 들었다. 교육 실습을 갔지만 자신은 교사에게 맞지 않는다고 느껴 각계 진입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2.1. 어린 시절

쇼다이 나오야는 1991년 11월 5일 구마모토현 우토시에서 태어났다. 3500g의 몸무게로 태어나, 유아기에는 모유가 부족해 울음을 그치지 못할 정도로 식욕이 왕성했다. 생후 11개월에 걸어 다니는 등 성장이 빨랐고, 1세에 1되의 떡을 짊어졌다. 우토 초등학교 1학년 때 우토 소년 스모 클럽 감독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스모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난 삼아 시작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훈련은 본격화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국 스모 대회에 출전했고, 츠루시로 중학교 재학 중에는 전국 중학교 스모 선수권 대회 우승팀의 예비 멤버였다. 구마모토 농업고등학교 마지막 해에는 청소년 전국 스모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도쿄 농업 대학에 진학하여 국제 농업 개발 학부에서 국제 식품 정보 과학을 공부했다. 2학년 때 대학 요코즈나가 되었고, 쓰케다시 자격으로 프로 스모에 진출할 수 있는 마쿠시타 15위의 자격을 얻었지만, 학업을 우선하여 이 기회를 놓쳤다. 대학 3학년 때 전일본 스모 선수권 대회에 진출했지만, 엔도에게 패하여 아마추어 요코즈나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했다. 대학 4학년 때 쓰케다시 자격을 얻지 못했다. 1학년 때는 각계 진입을 현실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도요노시마에게 "몸도 만들어졌고, 프로에서도 해낼 수 있어"라는 말을 들었다. 교육 실습을 갔지만 자신은 교사에게 맞지 않는다고 느껴 각계 진입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2.2. 아마추어 스모 경력

쇼다이 나오야는 우토 초등학교에서 스모를 시작하여 구마모토 농업 고등학교 시절 청소년 전국 스모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재능을 보였다. 도쿄 농업 대학에 진학하여 국제 농업 개발 학부에서 국제 식품 정보 과학을 공부했다. 2학년 때 대학 요코즈나(横綱)가 되어 쓰케다시 자격으로 프로 스모에 진출할 수 있는 마쿠시타(幕下) 15위의 자격을 얻었지만, 학업을 우선시하여 이 기회를 놓쳤다. 3학년 때는 전일본 스모 선수권 대회 결승에 진출했지만, 엔도에게 패하여 아마추어 요코즈나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했다. 대학 4학년 때도 주요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해 쓰케다시 자격을 얻지 못했다. 대학 시절 도요노시마에게 프로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격려를 받았고, 도쿄 농업대학 씨름부의 연례 행사인 도키츠카제 방과의 합동 봄 합숙을 통해 프로의 세계를 경험하며 실력을 키웠다. 대학교 4학년때에는 교사가 되기위해 2주간의 교육 실습을 진행했으나, 10kg이나 살이 빠지는등의 경험을 겪고 교사가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교사(농업) 교원 면허를 소지하고 있다.

3. 프로 스모 경력

쇼다이 나오야는 대학교 졸업 후, 도키쓰카제 방에 입문하여 2014년 3월 첫 도효(土俵)에 올랐다. 쓰케다시 자격을 얻지 못하고 마에즈모에서 시작하여, 5일째에 시바에게 패하기도 했으나, 2승 1패의 기록으로 프로 무대에 진입했다. 2014년 5월 조노쿠치에서 7승 0패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이후 조니단(7월, 6승 1패), 산단메(9월, 6승 1패)를 거쳐 11월 마쿠시타로 승진했다.

2015년 1월 마쿠시타에서 봉와직염설사 등 컨디션 난조에도 불구하고, 7승 0패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이후 세 번의 마쿠시타 토너먼트에서 승리하며, 2015년 9월 주료로 승진했다. 도쿄 농업 대학 출신으로는 2013년 11월 히고노조 이후 처음이며, 16대 도키쓰카제가 키운 첫 직계 세키토리였다. 스승은 "좋은 이름이다"라며 쇼다이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게 했다. 쇼다이는 3년 안에 세키토리가 되지 못하면 스모를 은퇴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도효에 들어서는 쇼다이(2015년 9월 13일 촬영)
도효에 들어서는 쇼다이(2015년 9월 13일 촬영)


주료 승진 기자 회견에서 "누구와도 붙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답하는 등 비관적인 발언으로 '초 네거티브 세키토리'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주료 첫 토너먼트에서 11승 4패, 다음 토너먼트에서 13승 2패로 주료 우승을 차지하며 마쿠노우치로 승진했다.

쇼다이는 2015년 9월 바쇼에서 주료로 승진했다. 그의 방의 스승은 "좋은 이름입니다. 전혀 나쁘지 않다"라고 말했다. 기자 회견에서 그는 비관적인 발언을 해 "매우 부정적인 스모 선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주료 데뷔 바쇼에서 11승 4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2015년 11월 바쇼에서는 13승 2패로 주료 우승을 차지하여 마쿠노우치로 승진했다.

쇼다이 나오야는 2016년 1월 바쇼에서 마쿠노우치(幕内)로 승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구마모토현 출신으로는 20번째로 스모 최고 계급에 오른 선수가 되었으며, 1958년 이후 (쓰케다시 제외) 단 11번의 토너먼트만으로 스모 최고 레벨에 도달한 세 번째로 빠른 선수와 동률을 이루었다.

마쿠노우치 데뷔 바쇼에서 쇼다이는 10승 5패의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었고, 간토쇼(敢闘賞, 투혼상)를 수상했다. 이는 스모 입문 이후 12번의 토너먼트만에 특별상을 획득한 것으로, 1950년 1월 9번째 토너먼트에서 투혼상을 받은 전 요코즈나 와카노하나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이다.

쇼다이 나오야는 2016년 11월 마에가시라 3위에서 11승 4패를 기록하여 이시우라와 함께 투혼상을 수상했다. 2017년 1월 바쇼에서 세키와케(関脇)로 승진했는데, 프로 데뷔 이후 단 17번의 바쇼만에 세키와케에 도달한 것은 1958년 이후 마에즈모에서 시작한 선수 중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이다(코니시키의 14번 다음). 그러나 세키와케 데뷔에서 승리 기록을 아깝게 놓치고, 다음 바쇼에서는 고무스비(小結)로 강등되었다. 2017년 5월 바쇼에서는 마에가시라(前頭) 계급으로 강등되었으나, 7월 바쇼에서 마에가시라 1위로 요코즈나 하루마후지를 꺾고 첫 긴보시(金星)를 획득했다.

|thumb|야스쿠니 신사 봉납 스모 도효에 들어서는 쇼다이(2017년 4월 17일 촬영)]]
|thumb|야스쿠니 신사 봉납 스모 쇼다이의 상대는 타카노이와(2017년 4월 17일 촬영)]]

2019년 11월 바쇼에서는 11승 4패의 기록으로 하쿠호의 준우승을 차지했고, 마지막 날에 아사노야마를 꺾고 투혼상을 받았다. 2020년 1월 바쇼에서는 마지막 날까지 챔피언십 경쟁을 벌였으며, 13승 2패로 준우승을 차지하고 간토쇼를 수상했다. 2020년 3월 바쇼에서 세키와케로 복귀했으며, 2017년 3월 이후 처음으로 산야쿠(三役)로 복귀했다. 3월 바쇼에서 우승자 하쿠호를 꺾은 두 명의 선수 중 한 명이었으며, 8승 7패의 기록으로 세키와케 계급을 유지했다. 2020년 7월 바쇼에서는 11승 4패의 성적을 거두며, 테루노후지를 꺾은 두 명의 선수 중 한 명으로서 다섯 번째 투혼상을 받았다.

쇼다이는 2020년 9월 바쇼에서 13승 2패의 기록으로 첫 우승을 차지했으며, 동시에 스이쇼(殊勲賞)와 간토쇼를 수상했다. 그는 톱 디비전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최초의 구마모토현 출신 선수이다.

3.1. 초기 경력

쇼다이 나오야는 대학교 졸업 후, 도키쓰카제 방에 입문하여 2014년 3월 첫 도효(土俵)에 올랐다. 쓰케다시 자격을 얻지 못하고 마에즈모에서 시작하여, 5일째에 시바에게 패하기도 했으나, 2승 1패의 기록으로 프로 무대에 진입했다. 2014년 5월 조노쿠치에서 7승 0패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이후 조니단(7월, 6승 1패), 산단메(9월, 6승 1패)를 거쳐 11월 마쿠시타로 승진했다.

2015년 1월 마쿠시타에서 봉와직염설사 등 컨디션 난조에도 불구하고, 7승 0패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이후 세 번의 마쿠시타 토너먼트에서 승리하며, 2015년 9월 주료로 승진했다. 도쿄 농업 대학 출신으로는 2013년 11월 히고노조 이후 처음이며, 16대 도키쓰카제가 키운 첫 직계 세키토리였다. 스승은 "좋은 이름이다"라며 쇼다이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게 했다. 쇼다이는 3년 안에 세키토리가 되지 못하면 스모를 은퇴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도효에 들어서는 쇼다이(2015년 9월 13일 촬영)
도효에 들어서는 쇼다이(2015년 9월 13일 촬영)


주료 승진 기자 회견에서 "누구와도 붙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답하는 등 비관적인 발언으로 '초 네거티브 세키토리'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주료 첫 토너먼트에서 11승 4패, 다음 토너먼트에서 13승 2패로 주료 우승을 차지하며 마쿠노우치로 승진했다.

3.2. 주료 승진

쇼다이는 2015년 9월 바쇼에서 주료로 승진했다. 그의 방의 스승은 "좋은 이름입니다. 전혀 나쁘지 않다"라고 말했다. 기자 회견에서 그는 비관적인 발언을 해 "매우 부정적인 스모 선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주료 데뷔 바쇼에서 11승 4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2015년 11월 바쇼에서는 13승 2패로 주료 우승을 차지하여 마쿠노우치로 승진했다.

3.3. 마쿠노우치 승진

쇼다이 나오야는 2016년 1월 바쇼에서 마쿠노우치(幕内)로 승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구마모토현 출신으로는 20번째로 스모 최고 계급에 오른 선수가 되었으며, 1958년 이후 (쓰케다시 제외) 단 11번의 토너먼트만으로 스모 최고 레벨에 도달한 세 번째로 빠른 선수와 동률을 이루었다.

마쿠노우치 데뷔 바쇼에서 쇼다이는 10승 5패의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었고, 간토쇼(敢闘賞, 투혼상)를 수상했다. 이는 스모 입문 이후 12번의 토너먼트만에 특별상을 획득한 것으로, 1950년 1월 9번째 토너먼트에서 투혼상을 받은 전 요코즈나 와카노하나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이다.

3.4. 산야쿠 승진

쇼다이 나오야는 2016년 11월 마에가시라 3위에서 11승 4패를 기록하여 이시우라와 함께 투혼상을 수상했다. 2017년 1월 바쇼에서 세키와케(関脇)로 승진했는데, 프로 데뷔 이후 단 17번의 바쇼만에 세키와케에 도달한 것은 1958년 이후 마에즈모에서 시작한 선수 중 두 번째로 빠른 기록이다(코니시키의 14번 다음). 그러나 세키와케 데뷔에서 승리 기록을 아깝게 놓치고, 다음 바쇼에서는 고무스비(小結)로 강등되었다. 2017년 5월 바쇼에서는 마에가시라(前頭) 계급으로 강등되었으나, 7월 바쇼에서 마에가시라 1위로 요코즈나 하루마후지를 꺾고 첫 긴보시(金星)를 획득했다.

2019년 11월 바쇼에서는 11승 4패의 기록으로 하쿠호의 준우승을 차지했고, 마지막 날에 아사노야마를 꺾고 투혼상을 받았다. 2020년 1월 바쇼에서는 마지막 날까지 챔피언십 경쟁을 벌였으며, 13승 2패로 준우승을 차지하고 간토쇼를 수상했다. 2020년 3월 바쇼에서 세키와케로 복귀했으며, 2017년 3월 이후 처음으로 산야쿠(三役)로 복귀했다. 3월 바쇼에서 우승자 하쿠호를 꺾은 두 명의 선수 중 한 명이었으며, 8승 7패의 기록으로 세키와케 계급을 유지했다. 2020년 7월 바쇼에서는 11승 4패의 성적을 거두며, 테루노후지를 꺾은 두 명의 선수 중 한 명으로서 다섯 번째 투혼상을 받았다.

3.5. 오제키 승진과 그 이후

쇼다이는 2020년 9월 바쇼에서 13승 2패의 기록으로 첫 우승을 차지했으며, 동시에 스이쇼(殊勲賞)와 간토쇼를 수상했다. 그는 톱 디비전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최초의 구마모토현 출신 선수이다. 2020년 9월 30일, 일본 스모 협회는 쇼다이의 오제키 승진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쇼다이는 수락 연설에서 "오제키"의 명성에 먹칠을 하지 않도록 지극히 성실한 정신으로 스모의 길에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1962년에 토치히카리가 승진한 이후 구마모토현 출신 첫 오제키이다.

쇼다이는 2020년 11월 바쇼에서 오제키로 데뷔했으나, 왼쪽 발목 부상으로 5일째에 기권해야 했다. 2021년 1월 바쇼에서 오제키로서 첫 번째 전체 바쇼를 마치고, 승리 기록을 달성하여 계급을 유지했다. 이후 몇 차례 가도반(角番) 위기를 겪었으나, 2022년 9월 바쇼에서 4승 11패로 부진하며 가도반 상태가 되었다. 2023년 1월 바쇼에서 세키와케로 강등되었다. 그는 1월에 10승을 거두면 오제키 계급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6번의 경기에서만 승리했다.

쇼다이의 오리지널 테가타 (수형 및 서명)
쇼다이의 오리지널 테가타 (수형 및 서명)

4. 경기 스타일

쇼다이는 요쓰즈모(四つ相撲) 레슬러로, 상대를 밀어내는 기술보다는 잡기 기술을 선호한다. 마와시를 잡을 때는 미기와리(右四つ) 자세를 선호하며, 왼손은 바깥쪽, 오른손은 안쪽으로 잡는다.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승리 기술은 요리키리(寄り切り)이다.

양 샅바 잡기나 들어 던지기(掬い投げ)도 특기이며, 다른 역사(力士)에게 없는 독특한 부드러움으로 상대의 공격을 넘겨 백성을 줍는 씨름도 많다. 하지만 샅바를 잡지 못하면 引技(당기는 기술)에는 의존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입씨름(立)에서는 과제가 남아 허리가 높고, 수세에 몰리는 경우가 많지만, 부드러움으로 상대의 공격을 넘기기도 한다. 미끄러지듯이 걷는 발걸음은 좋지 않으며, 미끄러질 때 허리가 상하로 움직이기 쉽다. 턱을 들고 가슴을 내미는 입씨름 때문에 선제 공격을 받으면 맥없이 물러서는 장면이 눈에 띄며, 특히 묘기류와 같은 속공형 츠키오시(突き押し) 역사에게 약하다. 가슴을 내미는 입씨름은 많은 각계 관계자 및 OB들이 지적하고 있다.

연습에 열심인 편은 아니지만, 츠루류나 코야나기(현·토요야마) 등 연습 상대의 혜택을 받았고, 토키텐쿠가 건강했을 때는 그에게도 가슴을 내밀게 해 힘을 키웠다. 오제키 승진 후에도 키타노후지로부터 연습 부족을 지적받고 있다.

츠키오시(突き押し)에 약하고, 너무 뚱뚱한 것도 단점이다. 2019년 11월 장소 무렵에는 양 샅바 잡기에 치우친 씨름에서 벗어나, 오른쪽 샅바 왼팔 굽혀 잡는 형태도 향상되었다. 2020년 1월 장소 중 4대 아사시오 타로는 가슴을 내미는 입씨름은 변함없지만 입씨름의 부딪침이 강해졌다고 평했다.

거한 역사 상대로는 팔을 굽혀 잡지 못하면 힘든 듯하며, 2020년 1월 장소 14일째에 토쿠쇼류에게 츠키오토시(突き落とし)로 패배했다. 오제키로 승진했을 무렵에는 가슴을 내미는 씨름은 변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의식과 압력, 씨름의 빠름과 체격이 향상되었다.

하쿠호와의 대결에서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었고, 후타코야마 오야카타(전 미야비야마)는 연습 태도를 혹평했다. 2021년 1월 장소는 큰 몸집에 비해 경쾌한 도효기와의 회전이 능숙했지만, 키타노후지로부터 씨름 내용의 나쁨을 비판받았다.

변덕스러워서 기분이 좋으면 백성을 쌓기 쉬워지는 경향이 있다. 다이에이쇼와의 대결에서는 오른팔을 差し(샅바를) 잡으러 나오는 부분을 목젖으로 밀어내는 것이 패턴화되어 있으며, 키타노후지는 "몇 번이나 같은 지는 방식을 하면 만족할까 하고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포기했다. 본인에 따르면 나고야 장소에서는 예년 후반에 피로가 나타나 속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

5. 기타

5.1. 성격

쇼다이는 소극적이고 신중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기자 회견에서 비관적인 발언을 하여 "매우 부정적인 스모 선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20년 1월 장소 중에는 구마모토 농고 3학년 때 도농대에 스포츠 추천으로 진학 예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험에 대해 매우 불안해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부정적인 성격을 드러내기도 했다.

원래 긴장하기 쉬운 타입으로, 본 장소 한 달 전부터 긴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십 양 승진 당시의 발언으로 인해 부정적인 성격으로 여겨지기 쉬우나, 2016년 9월 장소 전 인터뷰에서는 부정과 긍정의 중간이라고 답했다. 막하로 떨어질 걱정이 없어지면서부터는 긴장하지 않게 되었지만, 입막(幕内) 후에도 긴장하기 쉬운 성격은 변하지 않아 스모 비디오 등은 보지 않는다고 한다. 도효(土俵)를 벗어나면 되도록 스모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2020년 9월 장소의 막내 최고 우승 이후, 자신감이 붙었는지 부정적인 말이 나오는 일은 줄었다고 한다. 2020년 11월 장소 전 보도에서는, 긴장하지 않기 위해 장소 시작 전에 초일·2일째의 대진표는 확인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5.2. 한국과의 관계

5.3. 평가

쇼다이는 뛰어난 재능과 잠재력을 가진 선수로 평가받는다. 특히, 부드러운 몸놀림과 끈기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소극적인 성격과 기복이 있는 경기력은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적된다. 2017년 7월 장소 전의 후타코야마 (전 오제키 미야비야마)의 칼럼에서는 다카겐지와 함께 차세대 주자를 담당할 씨름꾼으로서 기대를 받았다.

2023년 1월 대회에서 6승 9패의 메-코시(메-코시)로 마친 결과, 3월에 마에가시라 1로 강등되어 2020년 1월 이후 처음으로 산야쿠 계급 밖으로 밀려났다. 특히, 2023년 이후로는 과거 오제키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좋지 못한 성적을 거듭하고 있어, 재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NHK 해설의 기타노후지 가쓰아키는 "훈련 부족" 등의 신랄한 코멘트를 하기도 했다.

2024년 1월 대회 7일째, 마에가시라 4였던 쇼다이는 요코즈나 테루노후지를 꺾고 두 번째 킨보시를 획득했다. 쇼다이는 경기 내내 공격적인 경기를 펼친 것이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졌고, 관중들이 방석을 던지는 것을 보고서야 승리가 실감났다고 말했다. 그는 징가쿠와 함께 킨보시 사이의 최장 연속 대회 7위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