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군
1. 개요
수도군은 조선 제2대 정종의 7남으로, 숙의 윤씨를 어머니로 두었다. 1430년 원윤에 책봉되었으며, 1444년 명선대부 수도정에 이르렀다. 1449년 박만 등이 연루된 사건으로 전라도 담양군으로 유배를 가던 중 용인에서 사망했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시에 있었으며, 순조 때 포천시 소흘읍으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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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9년 사망 -
왕진
왕진은 명나라 시대 환관으로, 학문적 소양을 갖추었으나 권력을 남용하여 부정부패를 저질렀으며, 토목보의 변에서 사망했다. -
1449년 사망 -
쇼시타쓰왕
쇼시타쓰왕은 1187년 오키나와섬을 통일하고 류큐 왕국을 건국한 인물로서, 1187년부터 1260년까지 슌텐 왕조를 다스렸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조선 정종의 자녀 -
무림군
무림군은 조선 세조의 아들 정종과 숙의 기씨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로, 정부인 홍씨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두었으며, 세조의 순행을 호종하고 문폐사로 활동하며 지방 실정을 조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
조선 정종의 자녀 -
도평군
도평군은 조선 정종의 아들로, 기생 첩을 사랑하여 탄핵을 받았으나 세종의 비호를 받았고, 예종 즉위년에 군호를 하사받았으며 1470년 이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2. 생애
조선 제 2대 정종의 7남으로 생모는 숙의 윤씨(淑儀尹氏)인 해평 윤씨이다. 정부인으로는 군부인 여산 송씨(郡夫人 礪山宋氏)이다. 자녀로는 정부인 송씨가 낳은 장남 어산부정 검(語山副正 儉)과 차남 동림부정 암(東林副正 巖), 3남 풍산부정 외(豊山副正 畏)와 딸이 있다.
오랫동안 작위가 없다가 1430년 원윤(元尹)에 책봉되었다. 1431년 이녹생(李祿生) 등과 함께 연고가 있다는 이유를 대고 종학(宗學)에 나아가지 않아 종부시가 세종에게 이를 보고하였다.
1433년에는 허리 아래가 아프고 저리다는 이유로 반열에 참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부시의 탄핵을 받았다. 1444년 명선대부 수도정에 책봉되었다.
1449년 2월 박만(朴萬)·원생(元生) 등이 수도정(守道正) 이덕생(李德生)의 집에 숨어 살며 또 소뼈를 그의 집 뒷편 뜰에 묻어두고 감추었다가 적발되었다. 이 일로 그해 7월 4일 전라도 담양군으로 유배되었다. 7월 10일 유배지로 가던 길에 용인(龍仁)에서 병으로 갑자기 사망하였다.
2.1. 초기 생애 및 왕족으로서의 삶
정종의 7남으로 생모는 숙의 윤씨(淑儀尹氏)인 해평 윤씨이다. 정부인으로는 군부인 여산 송씨(郡夫人 礪山宋氏)이다. 자녀로는 정부인 송씨가 낳은 장남 어산부정 검(語山副正 儉)과 차남 동림부정 암(東林副正 巖), 3남 풍산부정 외(豊山副正 畏)와 딸이 있다.
오랫동안 작위가 없다가 1430년 원윤(元尹)에 책봉되었다. 1431년 이녹생(李祿生) 등과 함께 연고가 있다는 이유를 대고 종학(宗學)에 나아가지 않아 종부시가 세종에게 이를 보고하였다.
1433년에는 허리 아래가 아프고 저리다는 이유로 반열에 참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부시의 탄핵을 받았다. 1444년 명선대부 수도정에 책봉되었다.
1449년 2월 박만(朴萬)·원생(元生) 등이 수도정(守道正) 이덕생(李德生)의 집에 숨어 살며 또 소뼈를 그의 집 뒷편 뜰에 묻어두고 감추었다가 적발되었다. 이 일로 그해 7월 4일 전라도 담양군으로 유배되었다. 7월 10일 유배지로 가던 길에 용인(龍仁)에서 병으로 갑자기 사망하였다.
2.2. 불미스러운 사건 연루 및 유배
정종의 7남으로 생모는 숙의 윤씨(淑儀尹氏)인 해평 윤씨(海平尹氏)이다. 정부인으로는 군부인 여산 송씨(郡夫人 礪山宋氏)이다. 자녀로는 정부인 송씨가 낳은 장남 어산부정 검(語山副正 儉)와 차남 동림부정 암(東林副正 巖), 3남 풍산부정 외(豊山副正 畏)와 딸이 있다.
오랫동안 작위가 없다가 1430년(세종 13) 원윤(元尹)에 책봉되었다. 1431년 이녹생(李祿生) 등과 함께 연고가 있다는 이유를 대고 종학(宗學)에 나아가지 않는다 하여 종부시가 세종에게 이를 보고하였다.
1433년에는 허리 아래가 아프고 저리다는 이유로 반열에 참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부시의 탄핵을 받았다. 1444년(세종 26) 명선대부 수도정에 책봉되었다.
1449년(세종 31년) 2월 박만(朴萬)·원생(元生) 등이 수도정(守道正) 이덕생(李德生)의 집에 숨어 살며 또 소뼈를 그의 집 뒷편 뜰에 묻어두고 감추었다가 적발되었다. 이 일로 그해 7월 4일 전라도 담양군으로 유배되었다. 7월 10일 유배지로 가던 길에 용인(龍仁)에서 병으로 갑자기 사망하였다.
2.3. 사망과 묘소
수도군은 1449년 7월 10일 유배지로 가던 길에 용인에서 병으로 갑자기 사망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시 미아리에 있었다. 고종 때 가서 군에 추증되고, 시호를 받았다.
순조 때 후손들이 묘소를 포천군 소흘면 무림리(후일의 포천시 소흘읍 무림2리 258-12번지 산)로 이장하였다. 묘소 아래에는 재실 묵은사와 백색 대리석으로 된 신도비가 있다.
3. 가족 관계
부왕은 조선 제2대 임금인 정종이며, 모친은 숙의 윤씨이다. 정비는 여성군부인 여산 송씨로 부사(府使) 증이판(贈吏判) 송계성(宋繼性)의 딸이다. 슬하에 어산부정 이검(語山副正 李儉), 동림부정 이암(東林副正 李巖), 풍산부정 이외(豊山副正 李畏) 3남과 안동 김씨 김선손(金善孫)에게 출가한 1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