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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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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토기는 인류가 물질의 화학적 변화를 응용하여 제작한 최초의 도구로, 점토를 가열하여 물에 녹지 않는 용기로 만든 것이다. 토기는 식량 저장, 요리 도구로 사용되며 식량 획득 방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토기는 일본 열도, 서아시아, 아메리카 대륙 등 여러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발명되었으며, 제작 방법, 재료, 장식 기법 등 지역별, 시대별로 다양한 특징을 보인다. 토기는 고고학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며, 형식학적 연구, 층위학적 연구, 태토 분석 등을 통해 시대와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밝히는 데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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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개요
채색, 음각 및 유약 처리된 도기. 10세기,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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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물병 또는 하브의 윗부분. 토기. 12세기 후반-13세기 초 이라크 또는 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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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미술관
정의
설명는 약 에서 구워지는 비유리질 도자기이다.
기타점토를 구워 만든 것이라도 용기가 아닌 것은 "토제품" 또는 "기와"라고 부른다.
제작
야외 소성야외에서 도자기를 구울 때, 구덩이를 파서 소성하는 것을 '소성갱'이라고 한다.

2. 토기의 발명과 인류사적 의의

조몬 시대 초기의 깊은 그릇 모양 토기 (요코하마시 하나미야마 유적 출토)


고든 차일드에 따르면 토기의 발명은 "인류가 물질의 화학적 변화를 응용한 최초의 사건"이다.[31][32][33] 석기는 돌을 깨뜨려 물리적인 형태로 제작된 반면, 토기는 점토를 빚어 가열함으로써 물에 녹지 않는 용기로 만들어졌다.[32][33] 토기 제작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수정이 가능한 "덧셈형" 조형 방식으로, 제작자는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만들 수 있었다.[34]

초기 토기는 둥근 바닥 모양이었으며, 이는 토기 내부에 대류를 일으켜 전체를 고르게 요리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현대 전기밥솥에도 둥근 바닥 모양이 일부 채용되고 있다. 뾰족한 바닥 토기는 흙에 꽂아 불을 지펴 요리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끓이는 도구이자 화덕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2. 1. 식량 획득 방식의 변화

토기의 발명은 식량 섭취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35][37] 생으로 먹거나 구워 먹는 것 외에 삶는 방식이 추가되면서 식물성 식량 이용이 확대되었다.[35][37] 끓이는 조리법은 떫은맛, 쓴맛 제거, 해독, 살균 효과를 가져와, 이전에는 식용으로 여겨지지 않던 버섯, 산나물, 견과류, 뿌리채소 등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35][37] 특히, 온난화로 낙엽활엽수림이 확대된 갱신세 말기에는 도토리나 밤 등의 견과류를 끓여 쓴맛을 제거하고, 마 등 뿌리줄기에 포함된 녹말 소화를 돕는 것이 중요했다.[35]

식물성 식량 이용 확대는 식생활을 안정시키고 식량 획득 활동을 더욱 안전하고 확실하게 만들었다.[37] 사냥과 어로 외에 식물 채집 비중이 커지면서, 동물을 따라 이동하는 생활에서 제철에 채집할 수 있는 정착 생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37][38] 사람들은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것을 반복하면서 정착 생활이 유리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으로 추측된다.[38] 한편, 깨지기 쉽고 무거운 토기는 이동 생활에 적합하지 않아, 토기 사용은 정착 생활을 촉진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35]

2. 2. 정착 생활의 시작

토기는 식량을 저장하고 조리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식물성 식량 이용을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35][37] 짐승고기나 어패류는 신선하면 날것으로 먹어도 되지만, 대부분의 식물성 식량은 불에 익혀야만 먹을 수 있었다.[37] 토기 발명은 삶는 방식을 가능하게 하여, 이전에는 식재료로 여겨지지 않던 도토리, 밤, 마 등의 견과류와 뿌리채소를 섭취할 수 있게 하였다.[35][37]

토기는 깨지기 쉽고 무거워 이동 생활에는 부적합했기 때문에, 토기의 사용은 정착 생활을 촉진하는 요인이 되었다.[35] 정착 생활은 식물 채집의 비중을 높였고, 사람들은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37][38]

정착 생활은 사냥과 어로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함정을 이용한 매복 사냥이나 그물 등 정치 어구를 사용한 어로 등 정착 생활과 조화되는 방식이 증가했다.[37]

2. 3. 토기 발명지

토기는 일본 열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한 서아시아, 아메리카 대륙 등 여러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발명되었다.[41] 과거에는 최초의 토기가 중동 지역에서 발생하여 각지로 전파되었다는 설이 유력했지만, 오늘날에는 여러 지역에서 각각 토기가 발명되었다는 다원설이 더 유력하다.[22]

최근 연구에 따르면, 중국 장시성의 동굴 유적에서 발견된 약 2만 년 전의 토기 조각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로 알려져 있다.[40] 이 토기는 탄화물 부착 흔적을 보아 조리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40]

일본 열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1만 년 전(기원전 8000년)을 넘는 토기가 다수 발견되고 있다.[22][36][42] 아오모리현 소토가하마정에 있는 오히라야마모토 I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는 1만 6500년 전 - 1만 5500년 전의 연대로 측정되었다.[42][44]

러시아 극동 지역과 중국에서도 일본의 초기 토기군에 필적하는 오래된 토기가 발견되고 있다.[45] 특히, 중국 남부의 여러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들은 1만 5000년 이상 전의 연대가 제시되고 있다.[45]

토기 발명지 관련 주요 유적
지역유적명연대 (추정)특징
일본 아오모리현오히라야마모토 I 유적1만 6500년 전 - 1만 5500년 전무문토기
중국 장시성선인동 유적약 2만 년 전세계 최고(最古) 토기 조각, 조리용 추정
러시아 극동 아무르 강 하류가샤 유적1만 3000년 이상 전평저 토기


3. 토기의 성질과 제작 방법

토기는 일반적으로 다공질이며 유약을 바르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원료로는 유색의 양토질 또는 석기질이 사용되지만, 정도기(精陶器)와 매우 비슷한 소지토(素地土)를 사용하기도 한다. 약 9000년 전부터 인류는 토기를 만들어 왔으며, 현재는 검은 기와, 붉은 벽돌, 화분 등으로 제작된다. 또한 정도기질 토기는 전지용 애벌구이, 전해용 격막, 기체 여과, 세균 여과 등에도 사용된다. 토기는 도자기 중에서 가장 원시적인 형태로, 한국에서는 즐문식(櫛紋式), 채문식(彩紋式) 토기 등이 있다.[49]

토기는 소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백자토보다 가소성이 높아 램 프레스, 롤러 헤드, 도자기 틀을 사용하여 본차이나자기보다 쉽게 모양을 만들 수 있다.[8] 다공성 때문에 5~8%의 흡수율을 가지는 소성된 토기는 방수를 위해 유약을 발라야 한다.[11] 본차이나, 자기, 석기보다 강도가 낮아 깨지기 쉽지만, 일반적으로 더 두꺼운 단면으로 제작된다.[9]

테라코타 화분


산화철 함량이 높아 주황색이나 붉은색을 띠는 테라코타는 화분, 타일, 장식용품, 오븐용품 등에 널리 사용된다.[4] 현대 토기의 일반적인 구성 비율은 카올린 25%, 볼클레이 25%, 석영 35%, 장석 15%이다.[9][12]

토기는 600°C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도 생산될 수 있지만, 많은 점토는 1000°C 이상에서는 성공적으로 소성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많은 토기가 800°C 정도에서 소성되었는데, 이는 온도 측정 방법이 부정확하고 가마 내부 조건이 불규칙했던 시대의 오차 범위를 반영한다.

현대 토기는 1000°C 에서 1150°C 사이에서 비스킷 소성되고, 950°C 에서 1050°C 사이에서 유약 소성된다.[13][14][15][4][16] 일부 도예가들은 낮은 온도의 비스킷 소성과 높은 온도의 유약 소성을 반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산화 분위기가 가장 일반적이다. 소성 후 대부분의 토기는 흰색, 황갈색 또는 붉은색을 띤다. 철분이 풍부한 토기의 경우, 산화 분위기에서 비교적 낮은 온도로 소성하면 붉은색이 되고, 환원 분위기에서 높은 온도로 소성하면 검은색을 포함한 더 어두운 색이 된다. 더 높은 온도로 소성하면 토기가 팽창될 수 있다.

2022년, 베이징대학(北京大学)과 미국 등의 연구팀은 중국 장시성(江西省)의 동굴 유적에서 약 2만 년 전의 토기 조각을 발견하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로 발표했다. 이 토기 조각들은 요리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49]

3. 1. 토기의 물리화학적 성질

토기는 다공질이어서 액체를 담으면 스며 나온다.[18][22] 그러나 이 성질을 이용하여 물을 차갑게 보관하거나, 냄비, 화분 등 특수한 용도로 활용하기도 한다. 토기는 점토를 주원료로 하며, 점토는 가열하면 비가역적인 화학 변화를 일으켜 단단해진다.

현대 토기의 일반적인 구성 비율은 카올린 25%, 볼클레이 25%, 석영 35%, 장석 15%이다.[9][12]

소성 후 대부분의 토기는 흰색, 황갈색 또는 붉은색을 띤다. 철분이 풍부한 토기의 경우, 산화 분위기에서 비교적 낮은 온도로 소성하면 붉은색이 되고, 환원 분위기에서 높은 온도로 소성하면 검은색을 포함한 더 어두운 색이 된다. 더 높은 온도로 소성하면 토기가 팽창될 수 있다.

3. 2. 토기의 재료

토기는 주로 물이나 바람에 의해 운반되어 쌓인 이차 점토를 재료로 사용한다. 점토만으로는 점성이 부족할 수 있어, 모래, 잘게 부순 암석 입자, 식물 섬유 등 다양한 혼합재를 섞어 점성을 조절한다.[9][12]

고급 토기나 도자기를 만들 때는 점토를 정제하거나, 여러 종류의 점토를 섞어 품질을 높이기도 한다. 현대에는 카올린 25%, 볼클레이 25%, 석영 35%, 장석 15%의 비율로 섞어 토기를 만들기도 한다.[9][12]

산화철 성분이 많이 포함된 점토를 사용하기 때문에, 구운 후에는 주황색이나 붉은색을 띠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테라코타는 화분, 타일, 장식용품, 오븐용품 등에 널리 사용된다.[4]

3. 3. 토기 성형 방법

토기 성형 방법은 크게 물레를 사용하지 않는 방법과 도자기 물레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물레를 사용하지 않는 토기 성형 방법에는 손으로 빚기, 덧붙이기, 감기, 찍어내기 등이 있으며, 이 중 끈 만들기가 가장 일반적이다.[22]

도자기 물레를 이용한 성형은 회전 운동의 원심력을 통해 점토 덩어리에서 그릇 모양을 깎아내는 방법이다. 서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으며, 우르크 시대(기원전 3500년경 - 기원전 3100년경)에 로크로 성형이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101] 물레 성형은 틀을 이용하여 토기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103]

3. 3. 1. 물레를 사용하지 않는 성형

토기는 손으로 빚기, 덧붙이기, 감기, 찍어내기 등의 방법으로 성형하며, 이 중 끈 만들기가 가장 일반적이다.[22]

3. 3. 2. 물레 성형

도자기 물레를 사용한 성형은 회전 운동의 원심력을 이용하여 점토 덩어리에서 그릇 모양을 깎아내는 방법이다. 서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으며, 우르크 시대(기원전 3500년경 - 기원전 3100년경)에 로크로 성형이 시작되었다.[101] 물레 성형은 틀을 이용하여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압착, 손가락 누름, 새김 등으로 기하학 문양을 붙이거나 손잡이가 있는 토기를 만드는 데에도 활용되었다.[103]

아나톨리아에서는 기원전 3천년기에 검은색 연마 붓 모양 주둥이 토기가 활발하게 만들어졌고, 이 시대의 트로이 제2층에서는 로크로 사용이 시작된 것이 확인된다.[101]

3. 4. 토기의 장식

토기 장식 기법은 크게 침선문, 부가문, 채색토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침선문은 토기 표면에 선이나 점 등으로 무늬를 새기는 기법이다. 부가문은 점토 띠나 덩어리를 덧붙여 무늬를 만드는 기법이다.

밧줄을 사용하여 무늬를 새기는 조문(縄文)은 일본의 조몬 토기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조몬 토기는 '조몬 시대'라는 시대 명칭의 유래가 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채색토기는 토기 표면에 색깔을 칠하거나 그림을 그려 넣어 장식하는 기법이다. 채색토기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문명, 중국, 고대 그리스 등 세계 각지에서 널리 제작되었다.

기원전 5800년경부터 기원전 5200년경에 걸친 하수나 시대에는 흰색 화장토를 바른 밝은 색상의 표면에 적갈색의 기하학 문양을 그린 토기가 특징적이다.[100]

기원전 5200년 이후에는 하라프 문화가 번성하여 메소포타미아 북부에는 하라프 토기가 보급되었다.[100] 하라프 시대의 토기에는 기하학적 문양 외에 , 사슴, 표범, 아시아 야생 당나귀(오나가), 과 같은 동물, 새, 꽃, 식물, 인물 등이 그려져 있다.[100]

우바이드 문화 시대(기원전 5300년경~기원전 3500년경)는 4기로 구분되는데, 마지막 우바이드 4기가 되면 실용적인 측면이 강해지면서 무늬가 없는 토기가 증가한다.[102] 뒤를 잇는 우르크 시대(기원전 3500년경~기원전 3100년경)에는 틀을 이용하여 대량 생산되면서 압착, 손가락 누름, 새김 등으로 기하학 문양을 붙이고 손잡이가 있는 것도 증가한다.[103]

아나톨리아에서는 기원전 3천년기에 검은색 연마 붓 모양 주둥이 토기가 활발하게 만들어졌다.[101] 기원전 1000년 이후의 아나톨리아 동부에서는 우라르투 시대에 붉은색 연마 토기가 많이 제작되었다.[101]

4. 세계 각지의 토기 문화

예술적으로 중요한 많은 토기류는 특정 문화에 의해 개발되면서 돌기와 자기로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 도자기는 모두 토기였으며, 후기 중세 시대의 이슬람-스페인 도자기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유럽 여러 지역에서 주석도금 도자기 또는 파이앙스 전통으로 발전했는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채색 마조리카와 네덜란드의 델프트 도자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흰색 유약을 사용하여 동아시아와 유럽 모두의 자기를 모방할 수 있었다.

(907~1125)의 실물 크기 의현 유약 토기 로한들, 16세기 중반 프랑스 궁정을 위해 만들어진 생포르셰르 도자기, 그리고 1860년대 민턴(Mintons)사의 실물 크기 마조리카 공작[17] 등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가장 복잡한 토기에 속한다.

민턴(Mintons)사의 실물 크기 마조리카 공작, 1876년경


삼각형 모양의 생포르셰르 도자기 소금통


18세기, 특히 영국 스태퍼드셔 도자기에서는 기술적 개선으로 웨지우드의 크림웨어와 같이 자기와 경쟁하는 매우 정교한 제품들이 만들어졌다. 전사 인쇄 공정의 발명은 유럽의 더 광범위한 계층에게 장식이 화려한 제품을 저렴하게 제공했다.

중국에서는 당삼채 유약 제품이 납유 토기였으며, 테라코타는 조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에트루리아인들은 대형 조각품을, 로마인들은 주로 작은 조각상과 캄파나 부조에 테라코타를 사용했다. 중국의 채색 또는 당나라 묘상은 후기 의현 유약 토기 로한과 마찬가지로 토기였다. 유럽 자기에서 세라믹 작은 조각상이 부활한 후, 영국의 인기 있는 스태퍼드셔 피규어와 같은 토기 인형이 등장했다.

4. 1. 이집트

이집트의 토기는 대체로 조잡하게 제작되었으며, 품질이 우수한 토기는 상(上)이집트에 한정되었다. 선왕조 시대에는 흑정토기(블랙 톱), 채문토기(배와 동물 무늬), 적색·흑색 마연토기 등이 주로 제작되었다.[57] 물레는 초기 왕조시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왕조시대에 들어서면서 토기 제작 기술은 침체되었고, 문양은 단순해지거나 사라져 실용적인 용도로만 사용되면서 파이안스에 그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토기로 만든 용기 외에도 인물이나 동물을 본뜬 조형물도 제작되었다. 토기에 광택을 내는 기술은 기원전 4세기경부터 나타났다.

4. 2. 한국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는 융기선문토기이며, 그 문화는 일본의 조몬 토기 시대 초기에서 전기 초두에 걸쳐, 또 중국의 자산문화·배리강문화와 병행한다.[124][125][126] 약 9700년 전 - 9200년 전 제주도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단계에 위치하며, 섬유를 많이 혼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127]

이후 한국에서는 신석기 시대(일본의 조몬 시대 전기-후기에 해당)의 장기간에 걸쳐 넓은 범위에서 빗살무늬토기가 제작·사용되었다.[125][126] 빗살무늬토기는 빗과 같은 시문구로 누르거나 걸어서 만든 점·선·원 등의 기하학 문양을 배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며, 융기선문토기가 평저였던 것에 비해 평저와 원저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128] 저부가 다른 두 양식은 지역성을 나타내며, 북한 중부 평안북도의 여러 유적에서는 두 유형이 함께 발견되고, 그보다 북쪽이 평저, 그보다 남쪽이 원저 또는 첨저 빗살무늬토기 문화에 속한다.[128] 이후 한국에서는 기원전 1000년기에 무문토기(공렬문토기·적색마연토기·흑색마연토기·점토대토기) 시대를 맞이했다.[125][126]

1세기부터 4세기에 걸친 원삼국시대에는 와질토기가 탄생하고, 그 후기에 한국의 토기 제작 기술에 획기적인 진보가 일어나 남부에서 로크로 성형의 경질 토기가 나타났다.[125][126] 삼국시대에는 가마에서 환원염 소성된 청회색의 경질 토기(토질토기)가 5세기 이후 백제, 신라, 가야의 각지에서 만들어졌고, 특히 가야 토기는 일본의 수혜기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125][126] 신라의 도읍이었던 경주와 그 주변 고분에서는 막대한 수의 토질토기가 출토되었으며, 일반적인 용기 외에도 동물이나 수레바퀴 등 다양한 구상을 도입한 이형 토기도 풍부하게 볼 수 있다.[125]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녹유의 시유 토기도 보였다.[125][126] 7세기 이후 통일신라 시대에는 그릇 표면에 여러 가지 스탬프를 찍은 후 소성하는 인화문토기가 활발하게 만들어졌다.[125]

4. 3. 메소포타미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기원전 7000년경부터 토기가 제작되기 시작했다.[99] 북 메소포타미아에서 북 레반트에 걸친 지역의 초기 토기는 "초기 광물 혼합 토기"(Early Mineral Ware영어)라고 불리며, 어두운 색에 방해석이나 현무암 입자를 많이 섞은 무거운 토기였다. 이미 채색 문양이 있는 것도 있었으며, 수는 적지만 전반적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99]

기원전 5800년경부터 기원전 5200년경까지의 하수나 시대에는 짧은 목 항아리와 밥그릇을 중심으로 흰색 화장토를 바른 밝은 색 바탕에 적갈색 기하학 문양을 그린 토기가 특징적이었다.[100]

기원전 5500년경부터 기원전 5200년경까지는 사마라 문화라고 불리며, 이 시기에는 농민들이 산록 지방으로 생활 영역을 넓혀갔다. 기원전 5200년 이후에는 하라프 문화가 번성하여 메소포타미아 북부에 하라프 토기가 보급되었다.[100] 하라프 시대는 기원전 4400년경까지 계속되었으며, 기하학적 문양 외에 , 사슴, 표범, 오나가(아시아 야생 당나귀), 과 같은 동물, 새, 꽃, 식물, 인물 등이 그려졌다.[100]

우바이드 문화는 기원전 5300년경(넓은 의미로는 기원전 6500년경)부터 기원전 3500년경까지의 긴 시기로, 농민의 일부가 메소포타미아 평야 지대로 진출한 시기이다.[102] 우바이드 문화 시대는 4기로 구분되지만, 마지막 우바이드 4기가 되면 실용적인 측면이 강해지면서 무문 토기가 증가했다.[102] 뒤를 잇는 우르크 시대(기원전 3500년경 - 기원전 3100년경)에는 로크로 성형이 시작되었다.[101] 또한, 틀을 이용하여 대량 생산되었고, 압착, 손가락 누름, 새김 등으로 기하학 문양을 붙이고 손잡이가 있는 것도 증가했다.[103]

4. 4. 유럽

기원전 6000년경, 고대 그리스의 에게 해 연안에 무문토기(無紋土器)를 사용하는 집단이 정착하기 시작했다.[106] 이들은 곡물·류 재배 및 토기 제조 문화를 유럽에 전파한 사람들로 추측된다.[106] 테살로니키 지방이나 크레타 섬에는 처음에는 재배 문화만 전해졌다. 기원전 5500년경부터 기원전 4500년경까지 그리스에서는 세스크로 문화라는 채문토기(彩文土器)를 수반하는 농경 문화가 발전했다.[106]

그리스에서 발칸 반도로 농경 문화가 전파됨과 동시에, 이탈리아 반도에서 남프랑스, 이베리아 반도로 확산되는 또 다른 농경 전파의 흐름이 있었다.[107] 기원전 5500년경부터 기원전 5000년경까지 이탈리아 반도의 아드리아 해·지중해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카르디알 토기 문화가 성립했다.[107] 이 문화는 이매패류인 카르디움속(현재는 Cerastoderma속) 조개껍질을 태토(胎土)에 눌러 빗살무늬 같은 무늬를 새긴 토기(카르디움 토기)가 특징이다.[107] 기원전 5000년경 이후에는 적색 채색을 한 위에 조개껍질 압흔(壓痕)을 새긴 토기가 일반화되었고, 이 토기 전통은 약 1000년에 걸쳐 계속되었다.[107] 그 후 남프랑스에서는 기원전 4000년경에 샤세 문화가 성립한다.[107]

한편, 기원전 4000년경 그리스에서는 디미니 토기 문화가 발전하고, 기원전 3000년경에는 크레타 섬에 미노아 문명(크레타 문명)이 개화한다.[108] 미노아 문명은 독특한 토기 문화를 발전시켰다.[108][109] 미노아 토기는 3기로 나뉘는데, 전기는 검은색 반점 무늬를 가진 바실리키 양식, 중기는 선명한 채색이 특징인 카마레스 양식 토기가 만들어졌고, 후기에는 문어를 비롯한 해양 생물을 그려 "해양 양식(Marine Style영어)"이라고 불리는 특징적인 채색 토기가 활발하게 만들어졌다.[109] 미노아 문명은 기원전 1400년경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에 의해 멸망했다.[110]

세스크로·디미니의 토기 문화를 가진 원(原)그리스인들은 청동기 시대에 들어 유약과 비슷한 광택이 있는 상면 도장을 한 "울필르니스 토기"를 만들어냈다 (헤라드스 문화[110]). 헤라드스 문화는 적색이나 황갈색으로 무늬를 넣은 무광택 토기, 흑·회색으로 무문인 "미뉴아스 토기"로 이어지고, 후기 청동기 시대에는 미케네 문명을 개화시켰다.[110] 그리스 본토에서는 그 후 기원전 10세기 이후, 용기에 기하학 무늬를 새긴 기하학 양식, 적색 바탕에 흑색으로 그림을 그린 흑채식(흑상식), 그것을 반전시킨 적채식(적상식), 백색 바탕에 다채로운 그림을 그린 백지다색식 등 다양한 토기·도기가 만들어졌다.[109]

아나톨리아에서 그리스로 농경 문화를 전파한 사람들은 발칸반도로 더 퍼져나갔고, 기원전 5500년 이후 그리스의 세스크로 문화와 병행하여, 불가리아에서는 카라노보 문화, 루마니아에서는 크리슈 문화, 헝가리에서는 케레스 문화, 구 유고슬라비아의 스타르체보 문화가 각각 독자성을 강화하며 발전해 나갔다.[106]

기원전 4500년경부터 기원전 4000년경에 걸쳐 농경이 유럽 내륙으로 더 퍼져 폴란드에서 독일, 네덜란드까지 확대되었다.[106][111] 그 시기에는 세르비아의 벨그라드 근처 빈차를 중심으로 빈차 문화가 발전했다.[106] 한편, 라인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 유럽에서 서유럽에 걸친 일대에는 띠무늬토기 문화라고 불리는 독특한 토기 문화가 성립했다.[111] 띠무늬토기는 항아리나 그릇 표면에 두 줄의 평행한 새김선을 단위로 하는 곡선 무늬를 그리고, 그 선 안에 찍기 무늬를 여러 곳에 넣는 것이 특징인 토기이다.[111]

금석 병용 시대(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면서 그리스에서는 디미니 문화, 남프랑스에서는 샤세 문화가 일어났을 무렵 발칸반도에서는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후기 빈차 문화, 불가리아 북부에서 루마니아에 걸쳐서는 구멜니차 문화, 루마니아 북부에서는 쿠쿠테니 문화 등 지역 특성이 풍부한 문화가 발전했다.[108] 띠무늬토기가 퍼진 중앙 유럽·서유럽에서는 조문토기 문화를 거쳐 렝기엘 문화와 레센 문화, 헝가리에서는 티사 문화가 일어났다.[108]

기원전 3000년경 스페인,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덴마크대서양·북해 쪽에 거석 문화가 퍼졌다. 기원전 2500년경 이후에는 유럽 전역에 농경과 말·소·양의 사육, 청동기가 보급되어 기원전 2000년경에는 전 유럽이 그러한 생업을 기반으로 마을을 이루어 생활하는 여러 민족이 분포하는 세계가 되었다.[108] 기원전 2000년경 중부 유럽에서 서유럽에 걸쳐 넓은 범위에서 종형배토기(벨-비커)가 유행했다(종형배기 문화).[108] 그러나 이 토기는 발칸반도 등에는 퍼지지 않았다.[108]

역사 시대에 들어서면서 유럽은 지중해 연안의 고전 고대(그리스·로마 문명)의 도자기의 영향을 받았다. 중세에서 17세기에 걸쳐 라인강 유역의 쾰른 주변 및 상류의 베스터발트 지방, 뉘른베르크 근처 크로이첸 주변에서는 무유약 또는 염유약의 사기가 활발하게 만들어졌다. 이것을 라인 사기(독일 사기)라고 부르고 있다.

4. 5. 남아시아

인도아대륙에서 농업은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주메르가르 유적에서 시작되었으며, 기원전 7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에서는 보리를 재배하고 , 염소, 소를 기르는 반농반목 생활을 했다. 기원전 5500년까지의 문화층(메르가르 I기)에서는 토기가 사용되지 않았지만, 터키석, 석회암, 사암, 연마한 구리, 해양성 조개껍질, 청금석 등 다양한 장신구를 사용한 문화가 나타났으며, 충치 치료 흔적도 발견되었다.

토기는 기원전 5500년부터 전 4800년까지의 메르가르 II기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메르가르 III기(기원전 4800년 - 전 3500년)는 인더스 문명에 앞서 각 지역에서 지역 문화가 형성되는 시기였다.[112] 메르가르 IV기·V기(기원전 3500년 - 전 3000년)를 거치면서 인더스 지역에서는 지역 문화 간 관계 재편이 시작되었다.[112]

기원전 2700년경에는 다른 지역과의 교류 활성화와 지역 문화 통합이 진행되는 변혁기를 맞이했고, 기원전 2600년경 인더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인더스 문명이 성립했다.[112] 인더스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에 비해 매우 넓은 지역에 걸쳐 있었으며, 모헨조다로하라파 두 대도시가 정치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113] 초기 토기 제작은 여성들이 주로 담당했으며, 물고기나 괴물, 수류 문양, 격자 문양, 운기 문양 등으로 장식된 항아리와 그릇 등의 채문토기는 주술적 의미를 지니기도 했다.[114]

물레 성형이 도입되면서 토기 제작은 전문 도공에게 넘어가고 가마도 개량되어 더 단단하게 구워졌다.[115] 하라파 문화의 토기는 특히 다양하다.[116] 채문토기는 붉은색 바탕에 검은색 채색, 또는 크림색 바탕에 주홍색과 검은색 채색으로 나뉜다.[115] 수류, 연속 원, 어린, 격자, 파상, 대상 문양 등 다양한 기하학적 문양이 사용되었고, 페르시아수사나 테베·무시안 등에서 출토되는 채문토기와의 교류도 확인된다.[113][115][116] 공작, 아이벡스(산양), 물고기 등 동물 문양과 인도보리수, 로제트 등 식물 문양도 있으며, 실용적인 토기일수록 무늬가 없는 경향이 있다.[113][116] 넓은 입술을 가진 대형 항아리, 고배, 컵, 바닥이 좁은 항아리, 뾰족한 바닥의 고블릿(배) 등 다양한 형태가 있으며, 측면에 구멍이 있는 원통형 다공 토기는 화로나 체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13][116] 지모신상을 비롯한 인형, 동물 모양 토우, 수레 미니어처, 비둘기 피리, 소형 토판(테라코타 케이크) 등 용기 외 토제품도 다양하게 제작되었다.[115][116]

데칸 고원을 중심으로 인도아대륙에 나타난 문화(기원전 1600년 - 전 1300년)에서도 붉은색 또는 주황색 용기에 검은색 안료로 채색한 토기가 발견된다.

말와 문화 기원전 1300년경 채문토기 고배 마디아 프라데시주

4. 6. 동남아시아

메콩 강 유역 태국 북부 콘깬 주에 있는 논녹타 유적에서는 기원전 4000년경의 채문토기와 마제석기 손도끼, 조개껍데기 구슬 등이 발견되었으며, 소, 개, 돼지를 가축으로 사육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토기에는 벼 껍질 자국이 있어 이미 벼농사를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36][117] 반치앙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독특한 나선무늬로 장식된 채문토기가 다수 출토되었으며, 최근 중국 문명이나 인더스 문명과는 다른 동남아시아 고유의 농경 문명과 관련된 유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철기 시대에 들어 중부 태국의 로프부리 주에서 출토된 수소를 본뜬 토기에는 몸통에 다중 선각에 의한 나선무늬가 새겨져 있다.

베트남에서는 토기의 출현이 신석기 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박손 문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의견도 있었지만,[36] 자세한 내용은 불명확하다.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동남아시아에서는 각 지역에서 다채로운 토기가 제작되었다.

4. 7. 아메리카 대륙

남아메리카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 콜롬비아 북부 카리브해 연안 저지대에서 토기를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이나 유적과 같은 패총 유적이 대표적이다.[145][146][147] 같은 시기 에콰도르 태평양 연안의 에서는 토기와 토용이 출토되는 발디비아 패총이 발견되었다.[36][145] 발디비아 문화기의 레알 알토 유적에서는 강낭콩, 목화, 옥수수 재배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145] 현재로서는 푸에르토 올미가와 발디비아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 문화의 시작으로 여겨진다.[146][148][149]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용기와 토용 외에도 악기, 장신구, 의자, 방추차, 인장 등 다양한 물건을 도자기로 제작했다.[148] 물레는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빚거나 끈으로 만들거나 형틀에 넣어 제작했다.[148] 그러나 ろうけつ染めの 원리를 이용한 네거티브 기법은 사용되었다.[148]

중앙아메리카(메소아메리카)에서는 기원전 1700년경부터 토기가 등장했다.[150][151] 초기 토기 종류에는 무경호(테코마테)나 바깥으로 벌어진 평저의 얕은 그릇 등이 있으며, 무경호는 구형 또는 난형 용기의 상부를 수평으로 절단한 형태의 항아리 모양 토기이다.[150] 기원전 1500년경 과테말라 태평양 연안을 중심으로 오코스 양식 토기가 사용되기 시작하여 과테말라 고지, 치아파스 고지, 우스마신타 강 유역, 멕시코만 연안 저지대, 오악사카 고원, 멕시코 고원 등으로 퍼져나갔다.[150][151] 이는 토기와 정주 농경 생활 방식이 보급되었음을 의미한다.[151] 기원전 1200년경부터 기원전 800년경까지 멕시코만 연안의 열대우림 지대에서 올멕 문명이 발생하여 인공 마운드와 거석 조각이 특징적인 대규모 제사장 중심지가 형성되었다.[152]

기원 전후부터 기원후 600년경까지 멕시코 중앙 고지에서는 테오티와칸 문명이 번성했다.[153] 태양의 피라미드로 알려진 도시 국가 테오티와칸은 최성기인 5세기 - 6세기에 인구가 10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153] 테오티와칸에는 토기·토우 제작 공방과 보석, 조개, 현무암 가공 공방, 마제석기 제작 공방 등 500곳 이상의 장인 작업장이 있었으며, 원료와 제품 유통 및 특수 공예 생산 장악이 도시 번영을 뒷받침한 것으로 추정된다.[153]

3세기 말, 유카탄 반도의 오코스 토기 문화를 계승한 화전 농경 사회는 올멕 문명과 테오티와칸 문명의 영향을 받아 마야 문명을 탄생시켰다.[154] 이는 메소아메리카 「고전기」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마야 문명은 마야 문자마야력을 가지고 900년경까지 이어졌으며, 유카탄 반도 기저부를 중심으로 현재의 과테말라 북부, 멕시코 타바스코주, 온두라스 서부, 벨리즈 등지로 확대되어 여러 도시를 출현시켰고, 석조 건축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154][155]

고전기 마야 문명(250년 - 900년)의 특징적인 토기는 완형, 원통형, 접시형 등의 다색 토기로, 그릇 표면에 역사적 사건이나 신화의 한 장면을 그리고 마야 문자를 덧붙인 것이다.[148][156] 이러한 토기는 획일성과 지역성을 동시에 보여주며, 활발한 장거리 교역과 강력한 권력을 가지지 않은 마야 도시 연합의 성격을 엿볼 수 있게 한다.[148] 테오티와칸에서 기원한 삼각대 부착 원통 토기는 마야 문명에서도 광범위하게 출토되어 교역품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148]

마야 문명 쇠퇴 후 「후고전기」(900년경 - 1500년경)에는 새김글이나 압인 문을 새긴 정교한 태토를 사용한 오렌지색 토기가 마야 각지로 퍼져나갔다.[148] 광택이 있는 좋은 소성의 토기는 「연유토기」(Plumbate Ware영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실제로 연유가 사용된 것은 아니다.

안데스 산지와 해안 지역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 정착 생활이 진행되었고, 기원전 2000년경 토기와 직조 기술이 도입되면서 본격적인 농경 생활이 시작되어 내륙 계곡에 중심 마을이 형성되었다.[157] 이러한 움직임은 페루 태평양 연안 지방에서 두드러졌으며, 거대한 제사와 의례 시설을 갖춘 문화가 급속히 발전했다.[157]

안데스 문명의 특징적인 토기로는 등자 모양의 주구부가 달린 항아리류(등자형 주구토기)가 있다.[148][156] 이는 페루 북부를 중심으로 선고전기 시작인 기원전 18세기경부터 프레 잉카 시대 전체, 차빈 문화, 모체 문화, 치무 왕국(850년 - 1470년) 시대까지 일관되게 나타나며, 주형 기법으로 만들어졌다.[148]

선고전 문화 전반의 토기는 검은색, 갈색, 적색의 광택 있는 표면이 특징이며, 등자형 주구토기 외에 장경호와 평저의 얕은 발 등이 있고, 동체에 인물, 동식물 상형 장식, 각선 무늬 등을 새기는 공통점이 있다.[157] 인물, 동식물 장식은 프레 잉카의 특징이 되었으며, 신화나 종교 의례와 관련된 소재가 많이 그려졌다.[148][156] 특이한 기법으로는 소성 후 안료를 칠하는 채색 토기가 있으며, 페루 남해안에서는 수지를 섞은 안료로 채색하는 토기가 만들어졌다.[148]

15세기 안데스 전역을 통합한 잉카 제국(1438년 - 1532년)에서는 토기 종류가 줄고, 무늬도 구체적인 것에서 기하학적인 것으로 변화했다.[148]

아나사지 문화(고대 푸에블로 문화)는 현재 미국 남서부에서 질 좋은 토기를 제작한 사회 중 하나이며, 장식의 선명함이 특징이다.[148][156] 아나사지 사람들은 초기에는 바구니 짜는 기술로 유명하여 바스켓메이커(Basketmaker영어)라고 불렸다.[148] 바스켓메이커 문화 III기(서기 500년경 - 700년경)에 토기 문화를 발전시켜 푸에블로 시대에 다양한 토기를 제작했다.[148] 대표적인 유적지는 콜로라도주 메사 베르데와 뉴멕시코주 이며, 아파트식 집합 주택에 살고, 라고 불리는 수직 구멍식 제사 및 정치 건축물을 운영했다.[148] 토기 문양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 선으로 톱니 모양, 직선, 나선형 등 기하학적인 문양을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며, 항아리류, 그릇류 등이 있다.[148] 15세기 이후에는 크림색 바탕에 빨강이나 검정으로 문양을 새긴 다채로운 토기가 제작되었다.[148]

4. 8. 오세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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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피타인들은 독특한 토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들이 오세아니아 대륙에 본격적인 농경을 가져오고 널리 퍼뜨린 것으로 생각된다.[117]

라피타 토기는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하여 선을 새기거나 미세한 점선으로 기하학 무늬를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개성적인 토기는 뉴칼레도니아의 라피타 유적을 표식 유적으로 삼고 있다.[117] 기원전 1500년경 뉴기니 북부, 솔로몬 제도, 비스마르크 제도 등에 나타났으며, 기원전 1300년경에는 바누아투의 뉴헤브리디스 제도, 멜라네시아 최동단의 피지 제도 등으로 전파되었다.[117]

라피타 토기 접시 (바누아투 포트빌라)

5. 토기 연구와 고고학

토기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형태, 장식, 제작 기법 등이 다르기 때문에 고고학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1997년부터 2009년에 걸쳐 실시된 서아프리카 말리 공화국 중부의 유적군 조사에서는 1만 1400년 전(기원전 9400년)의 토기 조각이 발견되어 주목을 받았다.[91] 이 유적군은 반디아가라 절벽과 그 주변 일대에 있으며, 100개 이상의 고고학 유적지로 구성되어 있다. 조사는 "아프리카에서의 인구와 고환경"의 일환으로 28개국 50명의 조사단에 의해 비교적 넓은 범위에 걸쳐 이루어졌고, 홍적세에서 홀로세에 이르는 고환경의 변천과 그것과 함께하는 인류의 활동이 어떠했는지 다각적으로 분석·검토되었다.[91] 조사를 지휘한 제네바 대학교의 에릭 위세콤은, 이 토기가 사막이 녹화되는("녹색 사하라" 시대의 도래) 환경의 큰 변화에 따라 발명된 아프리카·중동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이며, 중국·일본·러시아 연해주와 같은 동아시아 지역과는 별도로 독자적으로 발명된 것이며, 동아시아와의 동시성에 대해서는 오히려 의 발명과의 관련을 제기하면서, 인류가 기후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보여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하고 있다.[91]

동아프리카의 동아프리카 지구대에 위치한 케냐의 갬불 동굴에서는, (구 "케냐 카프사 B 문화")로 여겨지는 후기 구석기 시대 말엽의 문화층에서 토기 조각이 발견되어, 약 1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로 여겨진 적이 있다.[36] 이 상층(구 "케냐 카프사 D 문화" 및 엘레멘테이타 문화 시기)의 유적에서는 약 8000년 전(기원전 6000년경)의 뾰족한 바닥의 깊은 그릇 모양 토기가 출토되었다.[36]

나이지리아에서는 기원전 10세기부터 6세기에 걸친 철기 시대의 문화인 노크 문화는 뛰어난 토우와 토면을 많이 출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오늘날에도 야생 등에서 일상 용품 외 민예품적인 토기가 널리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는 뛰어난 예술성을 가진 작품도 적지 않다.

5. 1. 형식학적 연구와 층위학적 연구

토기의 형태와 장식 변화를 시간적, 공간적으로 배열하여 변화의 방향성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각 유물이 사용되었던 사회와 문화를 밝히는 연구 방법이다.

5. 2. 태토 분석과 산지 동정

토기의 태토 속 암석이나 광물 구성을 분석하여 토기의 생산지를 추정할 수 있다. 이는 토기 제작 집단의 활동과 제품의 이동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된다.[3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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