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왕후
1. 개요
순정왕후는 고려 우왕의 법적 어머니이자 공민왕의 후궁으로, 사후 왕후로 추존된 인물이다. 한씨는 원 간섭기 종식 무렵 공민왕의 후궁으로 간택되었으며, 1371년 우왕의 법모로 포고되었다. 1374년 순정왕후로 추존되었고, 1376년 의릉에 안장되었으나, 1389년 의릉은 폐지되었다. 드라마 《신돈》에서 배우 최정원이 순정왕후를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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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후궁 -
경화궁부인
고려 혜종과 의화왕후의 딸인 경화궁부인은 이복 숙부 광종과 혼인하여 경화궁부인의 호를 받았으나, 왕비가 아닌 부인의 위치에 머물렀으며, 소생 없이 생몰년과 능에 대한 기록이 없어 자세한 정보는 알 수 없다. -
고려의 후궁 -
은천옹주
고려 충혜왕의 후궁인 은천옹주는 단양대군의 여종 임신의 딸로, 충혜왕의 총애를 받아 옹주에 봉해졌으나, 충혜왕이 원나라에 압송된 후 궁에서 쫓겨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고려 공민왕 -
완풍대군
완풍대군 이원계는 고려 말 무신이자 이성계의 이복 형으로, 위화도 회군에 반대하다 사망 후 대군으로 추봉되었으며 홍건적과 왜구 격퇴에 공을 세워 완산군에 봉해졌고 조선 개국 후 완산백에 추봉, 여러 사당에 배향되었다. -
고려 공민왕 -
우왕
우왕은 고려 제33대 국왕으로 공민왕의 아들이며, 이인임의 추대로 10세에 즉위하여 명덕태후의 섭정을 받았으나, 술과 여색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하고 왜구 침입, 명나라와의 관계 설정 문제, 요동 정벌 명령, 위화도 회군 등의 사건을 겪으며 폐위되어 처형되었다.
2. 생애
1357년(공민왕 6년), 한씨는 공민왕의 후궁으로 간택되었고, 1371년에는 공민왕의 유일한 아들인 모니노의 법적 어머니로 선포되었다. 1374년 한씨의 환생으로 거짓 소문이 돌았고, 같은 해 11월 혜명전에서 순정왕후(順靜王后)라는 시호와 능호를 받았다.
1376년 9월(우왕 2년), 개경 서쪽, 현릉(공민왕릉) 및 정릉(인덕왕후릉) 서쪽에 해당하는 봉명산 기슭, 개풍군 중서면 여릉리 정릉동에 있는 의릉(懿陵)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1389년 12월(공양왕 1년), 의릉은 폐지되었다.
2.1. 가계
증조부는 증 면양부원대군(沔陽府院大君) 한통(韓通)이다. 조부는 증 면양부원대군(沔陽府院大君) 한평(韓平)이다. 부친은 증 면양부원대군(沔陽府院大君) 한준(韓俊)이고, 외조부는 증 면성부원대군(沔城府院大君) 한량(韓良)이다.
2.2. 후궁 책봉과 우왕의 법모
원 간섭기(고려 말기를 예고한 원나라 간섭기 정동등처행중서성 시대)가 종식된 직후, 공민왕의 후궁으로 간택되었다. 1371년(공민왕 20년) 공민왕의 유일한 아들인 모니노의 법모로 포고되었다.
2.3. 왕비 추존과 의릉 조성
1374년(공민왕 23년) 11월, 한씨에게 순정왕후(順靜王后)라는 시호가 추증되었다. 한씨는 1357년(공민왕 6년)에 공민왕의 후궁으로 간택되었고, 1371년에는 공민왕의 유일한 아들인 모니노의 법적 어머니로 선포되었다. 그러나 1374년에 한씨의 환생으로 거짓 소문이 돌았고, 같은 해 11월 혜명전에서 시호와 능호를 받았다.
1376년 9월(우왕 2년), 한씨는 개경 서쪽, 현릉(공민왕릉) 및 정릉(인덕왕후릉) 서쪽에 해당하는 봉명산 기슭, 개풍군 중서면 여릉리 정릉동에 있는 의릉(懿陵)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1389년 12월(공양왕 1년), 의릉은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