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 (1950년 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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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순천시 (1950년 선거구)는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순천시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신설된 선거구이다. 이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승주군 선거구와 통합되어 순천시·승주군 선거구로 변경되면서 폐지되었다.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국민당 김양수가 당선되었고, 이후 제3대부터 제5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윤형남이 당선되었다.

순천시 (1950년 선거구) - [선거구 정보]에 관한 문서
선거구 정보
이름순천시
의회국회
큰 지도전라남도
지도 연도알 수 없음
연도1950
폐지1963
유형국회
이전 선거구순천군 갑
순천군 을
이후 선거구순천시·승주군
유권자알 수 없음
의원알 수 없음
정당알 수 없음
지방 의회알 수 없음
지방 선거구알 수 없음
인구알 수 없음
의원수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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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1949년 8월 14일, 순천군 순천읍·도사면·해룡면 일부가 순천부로 분리되었으며 순천부는 순천시로 개칭되었다. 이에 제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순천시 전 지역을 관할하는 선거구로 신설되었다.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승주군 선거구와 통합되면서 순천시·승주군 선거구를 이루게 됨에 따라 폐지되었다.

3. 역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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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제2대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김양수 후보가 47.06%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당선되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황두연 후보는 26.39%를 득표하여 2위를 기록하였다. 그 외에 윤형남, 서정기, 정봉식 후보는 무소속으로, 신순우 후보는 대한노동총연맹 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모두 낙선하였다.

3.2. 제3대 (1954년)

1954년 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윤형남 후보가 당선되었다. 윤형남은 7,266표(33.19%)를 얻어, 4,448표(20.31%)를 얻은 무소속 김정기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자유당 김종하 후보는 3,722표(17.00%), 무소속 서정록 후보는 3,573표(16.32%), 민주국민당 김양수 후보는 2,882표(13.16%)를 얻었다. 무소속 조상두 후보는 0표를 얻었다. 윤형남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반대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3.3. 제4대 (1958년)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윤형남이 당선되었다. 윤형남은 11,031표(45.18%)를 얻어 재선에 성공하였다. 자유당 김병수 후보는 7,847표(32.14%), 무소속 윤구혁 후보는 2,777표(11.37%), 무소속 심승용 후보는 2,756표(11.28%)를 얻었다. 이 선거는 4.19 혁명의 배경이 된 3.15 부정선거에 대한 국민적 저항 속에서 치러졌다.

3.4. 제5대 (1960년)

대한민국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윤형남 후보가 42.71%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당선되었다. 민주당 최의남 후보는 38.68%를 득표하여 그 뒤를 이었다. 무소속 김정중 후보는 15.10%, 무소속 반승용 후보는 3.50%를 득표하였다. 총 유효 투표수는 26,760표였다.

4. 역대 선거 결과

4.1. 제2대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김양수 후보가 47.06%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황두연 후보는 26.39%를 득표하였다.

4.2. 제3대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 윤형남 후보가 33.19%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자유당 김종하 후보는 17.00% 득표에 그쳐, 이승만 정권에 대한 반감이 드러났다고 평가된다. 그 외, 무소속 김정기 후보는 20.31%, 무소속 서정록 후보는 16.32%, 민주국민당 김양수 후보는 13.16%를 득표했다.

4.3. 제4대 (1958년)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윤형남 후보가 45.18%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자유당 김병수 후보는 32.1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무소속 윤구혁 후보는 11.37%, 무소속 심승용 후보는 11.28%를 득표했다.

4.4. 제5대 (1960년)

대한민국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윤형남 후보가 42.71%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같은 민주당 최의남 후보도 38.68%를 득표하여, 순천시에서 민주당의 지지세가 강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