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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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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포서는 춘추 시대 초나라의 인물로, 오자서와 친분을 맺었으나 오자서가 초나라를 공격하려 하자 이를 막으려 했다. 오자서가 초 평왕의 시신을 훼손하자 이를 비판하고, 초 소왕을 위해 진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여 초나라를 지키는 데 기여했다. 이후 월왕 구천에게 오나라 멸망에 대한 계책을 제시하여 오나라 멸망에 영향을 주었다.

2. 생애

오자서와 신포서는 친구였으나, 기원전 522년 오자서의 아버지와 형이 초 평왕에게 살해되면서 둘의 관계는 갈라진다. 오자서는 복수를 위해 초나라를 떠나며 멸망을 맹세했고, 신포서는 초나라를 지키겠다고 다짐했다.[1]

기원전 506년 백거 전투 이후 오나라 장군이 된 오자서는 초나라를 함락시키고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300번 채찍질했다. 신포서는 이 소식을 듣고 오자서에게 복수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1]

오자서가 소왕에게 복수하려 하자, 신포서는 진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애공은 소왕의 어머니 백영이 자신의 딸임에도 처음에는 거절했다.[1]

신포서는 7일 동안 울며 간청했고, 애공은 "초나라에 이런 충신이 있다면 멸망해선 안 된다"라며 전차 500대를 지원했다. 기원전 505년 진나라 원군과 오나라 내분으로 초나라는 오나라를 물리쳤다.[1] 소왕은 신포서에게 봉읍 5천 호를 제안했으나, 신포서는 조상 무덤을 지키기 위한 일이라며 사양했다.[1]

기원전 476년 신포서는 월나라구천에게 사신으로 가서 오나라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질문받았다.

2. 1. 오자서와의 관계

오자서와 신포서는 친구로서 친하게 지냈으나, 기원전 522년 오자서의 아버지와 형이 초 평왕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오자서는 복수를 위해 초나라를 떠나면서 초나라를 멸망시키겠다고 맹세했고, 신포서는 초나라를 존속시키겠다고 말했다.[1]

기원전 506년 백거 전투 이후 오나라의 장군이 된 오자서는 초나라를 함락시키고, 죽은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삼백 번 채찍질했다. 신포서는 이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 오자서에게 복수가 너무 심하다고 따졌다.[1]

2. 1. 1. 친구 오자서에게 간언하다

기원전 522년, 오자서의 아버지와 형이 초 평왕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오자서는 복수를 위해 초나라를 떠나면서 반드시 초나라를 멸망시키겠다고 맹세했다. 신포서는 그런 오자서의 소매를 잡고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존속시키겠다"며 만류했지만, 오자서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1]

훗날 오나라의 장군이 된 오자서는 기원전 506년 백거 전투에서 승리하여 초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는 이미 사망한 초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에 삼백 번 채찍질을 하는 복수를 감행했다.[1] 산속으로 피신해 있던 신포서는 이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 오자서에게 다음과 같이 따졌다.[1]

: "그대의 복수는 어찌 그리 심한가. 나는 들은 적이 있다. 일시적인 흉폭함이 하늘을 이기려 해도, 하늘이 정하면 결국 무너진다고. 그대는 일찍이 북면하여 평왕을 섬겼던 몸이다. 그 시체를 욕되게 하다니, 하늘이 정해지면 사람의 흉폭함 따위는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1]

이에 오자서는 "날은 저물고 길이 멀어서, 거꾸로 걸으며 거꾸로 일을 했다(日暮途遠 倒行逆施)"라고 변명했다. 즉, 자신에게 시간이 없고, 도리에 따라 일을 진행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1]

2. 1. 2. 오자서의 복수와 신포서의 비판

기원전 522년 오자서의 아버지와 형이 초 평왕에게 살해당했다. 오자서는 복수를 위해 초나라를 떠나면서 반드시 초나라를 멸망시키겠다고 맹세했다. 신포서는 오자서의 소매를 잡으며 초나라를 존속시키겠다고 말렸지만 소용없었다.[1]

기원전 506년 백거 전투에서 승리한 오자서는 오나라의 장군이 되어 초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이미 사망한 초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채찍으로 삼백 번 내리쳤다.[1] 산중에 피신해 있던 신포서는 이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 오자서에게 복수가 너무 심하다고 따졌다. 신포서는 "일시적인 흉폭함이 하늘을 이기려 해도, 하늘이 정하면 결국 무너진다"며, "그대는 일찍이 북면하여 평왕을 섬겼던 몸인데, 그 시체를 욕되게 하다니, 하늘이 정해지면 사람의 흉폭함 따위는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질책했다.[1]

이에 오자서는 "날은 저물고 길이 멀어서, 거꾸로 걸으며 거꾸로 일을 했다(日暮途遠 倒行逆施)"고 변명했다. 이는 시간이 없어 도리에 따라 일을 진행할 수 없었다는 의미였다.[1]

2. 2. 초나라 구원

오자서가 초 평왕의 뒤를 이은 소왕에게 복수하려 하자, 신포서는 진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러 갔다. 애공은 소왕의 어머니 백영이 자신의 딸이었음에도 처음에는 원군을 거절했다.[1]

신포서는 7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계속 울었다. 이에 감동한 애공은 "초나라는 무도하지만, 이러한 충신이 있다면 멸망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며 전차 500대를 투입했다. 기원전 505년 진나라 원군은 오나라 군대를 무찌르고, 오나라에 내분이 일어나면서 마침내 초나라는 오나라를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1]

2. 2. 1. 진나라 애공에게 구원을 요청하다

오자서가 초 평왕의 뒤를 이은 소왕에게 복수하려 할 때, 신포서는 진(秦)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러 갔다. 소왕의 어머니 백영이 진 애공의 딸이었음에도 애공은 처음에는 원군 요청을 거절했다.[1]

신포서는 7일 밤낮으로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울부짖었다. 그 모습에 감동한 애공은 "초나라는 무도하지만 이러한 충신이 있다면 멸망시켜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며 전차 500대를 보내 초나라를 돕게 했다.[1]

기원전 505년, 진나라 원군은 오나라 군대를 격파했고, 오나라 내부 분쟁까지 겹쳐 초나라는 마침내 오나라를 물리쳤다.[1]

2. 2. 2. 초나라 부흥

기원전 505년, 오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오나라의 내분도 겹쳐 는 오나라를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신포서는 진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러 애공에게 찾아갔으나, 소왕의 어머니 백영이 애공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거절당했다. 신포서는 7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울며 원군을 요청했고, 이에 감동한 애공은 전차 500대를 지원하여 초나라의 부흥을 도왔다.[1]

소왕은 초를 지킨 신포서의 공적을 치하하며 봉읍 5천 호를 제안했지만, 신포서는 선조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한 일이라며 사양하였다.[1]

2. 3. 월나라 왕과의 만남

기원전 476년 신포서는 초나라 혜왕 어머니의 아버지뻘이 되는 월나라구천에게 사신으로 갔다. 이 시기는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마지막 단계였다. 신포서는 구천에게 오나라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질문받았다.

2. 3. 1. 월왕 구천에게 오나라 멸망 계책을 제시하다

기원전 476년, 신포서는 초나라 혜왕 어머니의 아버지뻘이 되는 나라 왕 구천에게 사신으로 갔다. 이 시기는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마지막 단계였다. 신포서는 구천에게 오나라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질문받았다. 몇 마디 문답을 주고받은 후, 신포서는 "전쟁은 지혜를 으뜸으로 하고, 인(仁)을 둘째로, 용기를 셋째로 합니다."라고 구천에게 말했다. 이 말은 오나라 멸망의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되었고, 구천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성공한다. 신포서는 조국인 초나라를 유린했던 친구 오자서가 죽은 뒤 오나라가 월나라에게 멸망당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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