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소왕
1. 개요
초 소왕은 춘추 시대 초나라의 왕으로, 평왕의 아들이며 이름은 진(軫)이다. 기원전 516년에 즉위하여 오나라의 침략으로 수도를 잃고 도망쳤으나, 진나라의 지원을 받아 나라를 재건했다. 오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수도를 약(鄀)으로 옮겼으며, 기원전 489년 진나라를 정벌하던 중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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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89년 사망 -
밀티아데스
밀티아데스는 기원전 6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반 아테나이의 장군이자 정치가로, 트라키아 헤르소네소스의 참주였으나 아테네로 귀환하여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을 격파했지만 파로스 섬 공략 실패 후 민중 기만죄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사망했다. -
기원전 489년 사망 -
안유자
안유자는 춘추시대 제나라 군주로, 즉위 후 쿠데타로 폐위 및 살해당해 제나라 내부 권력 투쟁을 심화시키고 전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배경이 되었다. -
기원전 6세기 중국의 군주 -
초 영왕
초 영왕은 춘추 시대 초나라의 왕으로, 조카를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후 쇠퇴한 초나라의 패권을 재건하려 했으나, 쿠데타로 자결했다. -
기원전 6세기 중국의 군주 -
주 경왕 (개)
주 경왕은 주 영왕의 손자이자 주 경왕의 아들로, 형인 도왕 사후 기원전 520년에 즉위하여 왕자조의 난 등을 겪고 성주로 천도했으며 기원전 476년에 사망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평왕과 백영(伯嬴) 사이에서 태어났다. 기원전 523년, 태자 건(太子 建)이 송나라로 망명하자 태자로 책봉되었다.
기원전 516년에 평왕이 죽자 10살도 되지 않은 진이 즉위하였다. 즉위 후 이름을 진(軫)으로 고쳤다.
기원전 515년, 원년에 비무기를 주살하여 나랏사람들의 분노를 달래주었다.
기원전 512년, 오나라의 이보공(二父公)이 초나라로 도망쳐오자, 소왕은 오나라를 막아내기 위해 그들에게 땅을 주어 봉했다.
기원전 511년, 오나라가 초나라를 쳐서 육성(六城)과 체성(潜城) 두 개의 성을 취했다.
기원전 509년, 소왕이 자상에게 명령하여 오나라를 쳤지만, 예장에서 크게 패했다.
기원전 506년 겨울, 오자서와 손무가 오나라의 군사를 거느리고 초나라를 쳤다. 소왕은 초나라 최고의 명장 좌사마 심윤술(沈尹戌)과 영윤 자상(子常)을 보내어 오나라군을 막게 했으나 백거(柏擧)전투에서 자상의 욕심으로 초나라군이 크게 패했다. 이어서 오나라군이 초나라의 수도인 영도(郢都)를 공격하여 들어가니, 소왕은 도망갔다. 운몽택에 이르렀을 때 오나라 군이 쏜 화살에 부상을 입었으며, 이리저리 도망다니다가 운나라, 수나라에 이르렀다. 신포서(申包胥)가 진나라에 가서 군사를 내어 구원해 주기를 빌었다. 진(秦) 애공(哀公)은 처음엔 응답하지 않았지만, 신포서가 조정의 뜰에서 꿇어 앉고 곡을 한지 7일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자 마침내 그 충성에 감동하여 군사를 내어 초나라를 구원하였다.
기원전 505년 6월, 초나라와 진나라의 연합군이 오나라 군사를 직(稷)에서 패배시켰고, 소왕은 영도로 돌아와 공신에게 상을 내렸지만 신포서는 달아나 받지 않았다. 오나라에서 부개가 오나라의 군사가 얼마나 있는지 보고서는 자립하여 왕이 되자 오왕 합려(闔閭)가 군사를 물려 돌아가 반란을 평정하였다. 부개는 초나라로 달아났고, 초나라에서는 당계(堂谿) 땅을 주고 봉하였다. 부개는 당계씨(堂谿氏)가 되었다. 10월에 전쟁이 마침내 끝이 났지만, 영도는 오나라 군사가 이미 유린했고,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파괴하였다. 이에 소왕은 천도를 결정하였다.
기원전 504년, 오나라가 초나라를 쳐서 반(番)을 취했다. 초나라가 마침내 약(鄀)으로 천도했다.
기원전 500년, 소왕이 돈자국(頓子國)과 호성(胡城)을 멸했다.
기원전 489년 봄, 오나라가 진나라를 치자 구원하였다. 10월, 소왕의 병이 심하였고, 이후에 군중에서 죽었다.
2.2. 오나라의 침입과 망명
기원전 515년, 아버지 평왕이 죽자 초왕으로 즉위했다. 즉위 후, 백성들에게 미움을 받던 비무기를 숙청하여 민심을 얻었다.
기원전 512년, 오나라의 이보공(二父公)이 초나라로 도망쳐오자, 소왕은 오나라를 막아내기 위해 그들에게 땅을 주어 봉했다. 기원전 511년, 오나라가 초나라를 쳐서 육성(六城)과 체성(潜城) 두 개의 성을 취했다. 기원전 509년, 소왕이 자상에게 명령하여 오나라를 쳤지만, 예장에서 크게 패했다.
기원전 506년 겨울, 오자서와 손무가 오나라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를 쳤다. 소왕은 심윤술과 영윤 자상(子常)을 보내어 오나라군을 막게 했으나 백거(柏擧)전투에서 자상의 욕심으로 초나라군이 크게 패했다. 이어서 오나라군이 초나라의 수도인 영도(郢都)를 공격하여 들어가니, 소왕은 도망갔다. 운몽택에 이르렀을 때 오나라 군이 쏜 화살에 부상을 입었으며, 이리저리 도망다니다가 운나라, 수나라에 이르렀다. 신포서(申包胥)는 진나라에 가서 군사를 내어 구원해 주기를 빌었다. 진(秦) 애공(哀公)은 처음엔 응답하지 않았지만, 신포서가 조정의 뜰에서 꿇어 앉고 곡을 한지 7일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자 마침내 그 충성에 감동하여 군사를 내어 초나라를 구원하였다.
2.3. 초나라의 부흥
기원전 506년, 오의 오왕 합려는 손무, 오자서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를 침략했다. 박저 전투에서 초나라 군대는 크게 패했고, 낭와는 정나라로 도주했다. 오나라 군대는 초나라 수도 영을 점령했고, 초 소왕은 운몽에서 화살에 부상을 입고 운을 거쳐 수나라로 피신했다.
신포서(申包胥중국어)는 진나라에 가서 원군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진 애공이 거절했지만, 신포서가 7일 동안 궁궐 뜰에서 통곡하자 감동하여 군대를 파견했다. 기원전 505년 6월, 초나라와 진나라 연합군은 오나라 군사를 격파했고, 소왕은 영으로 돌아와 공신들에게 상을 내렸다. 오나라에서 부개가 반란을 일으키자 오왕 합려는 군사를 돌려 이를 평정했다. 부개는 초나라로 달아났고, 소왕은 그에게 당계(堂谿) 땅을 봉읍으로 주었다.
장자에는 초나라를 떠났던 소왕의 신하 양부(, 도양설)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소왕이 수도로 돌아왔을 때 양부는 선물을 거절하며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지켰다.
소왕은 귀국 후, 이복 형인 공자 신·공자 서 · 공자 결등과 힘을 합쳐 초나라 부흥에 힘썼다. 오나라와 대립하던 월나라 왕 구천과 동맹을 맺고, 구천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
기원전 504년, 오나라가 초나라를 쳐서 반(番)을 취하자 초나라는 약(鄀)으로 천도했다.
2.4. 최후
기원전 506년, 오자서와 손무가 이끄는 오나라 군대가 초나라를 침공하여 백거 전투에서 크게 승리했다. 초나라의 수도 영이 함락되고 초 소왕은 도망쳤다. 운몽에서 화살에 부상을 입고, 운나라와 수나라로 피신했다. 신포서가 진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여 7일 동안 통곡한 끝에 진 애공의 지원군을 얻어냈다. 기원전 505년, 초나라와 진나라 연합군은 오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소왕은 영도로 복귀했다.
기원전 504년, 오나라가 다시 초나라를 공격하여 반(番)을 점령하자, 초나라는 약으로 천도했다.
기원전 489년, 소왕은 진나라를 정벌하던 중 병으로 군중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