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미촌 (아이치현 헤키카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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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이미촌은 아이치현 헤키카이군에 존재했던 촌이다. 1878년 이즈미다촌, 이마가와촌, 이마오카촌이 합병하여 성립되었으며, 아이미산에서 지명이 유래했다. 1889년 정촌제 시행으로 헤키카이군 아이미촌이 발족하였으며, 1906년 사카이촌, 히가시사카이촌, 히토츠기촌과 합병하여 후지마쓰촌이 발족하면서 폐지되었다. 주요 명소로는 하치오지 신사, 순경사, 승련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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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미촌 (아이치현 헤키카이군) - [옛 지명]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자치체 명칭 | 아이미촌 (逢見村) |
| 요미가나 | 아이미무라 |
| 행정구분 | 촌 (村) |
| 폐지일 | 1906년 5월 1일 |
| 폐지 이유 | 합병 |
| 현재의 자치체 | 가리야시 |
| 위치 | 아이치현 헤키카이군 아이미촌 |
| 인구 (1891년) | 2374명 |
2. 지리
아이즈마강이 사카이강에 합류하는 지점 부근에 있었다.[1]
1878년(메이지 11년), 헤키카이군 이즈미다촌, 이마가와촌, 이마오카촌이 합병하여 아이미촌이 성립되었으며, 이 지역에 있던 해발 10m~20m의 대지를 아이미산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한다.[1] 근대 아이미촌에서는 면화 재배가 활발했다.[1] 1889년(메이지 22년) 정촌제 시행으로 헤키카이군 아이미촌이 발족했고,[1] 1891년(메이지 24년) 당시 호수는 524호, 인구는 2,374명이었다.[1] 메이지 초기에는 양잠업이 시작되어 메이지 중기에 성행했다.[1]
3. 역사
3. 1. 연혁
4. 명소 및 유적
아이미촌에는 다음과 같은 명소와 유적이 있다.
- 이즈미다 고분 - 이즈미다에 있으며, 하치오지 신사 경내에 횡혈식 석실이 이전되어 있다.
- 하치오지 신사 조개더미 - 이즈미다에 있는 야요이 시대의 조개더미이다. 카리야시 지정 사적(1958년 지정)이다.
- 오후지의 소나무 - 이마가와에 있으며, 후지마츠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소나무이다.[3] 1560년 (에이로쿠 3년) 오케하자마 전투 때, 이마가와 요시모토 군에게 베여 죽은 여행자의 묘에 심어진 소나무였으나, 이세만 태풍으로 고사하여 현재는 메이테츠 나고야 본선 후지마츠역 앞에 2대째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3]
- 히모카와 우동 발상지 비 - 이마오카에 있다. 에도 시대 도카이도의 기행문에 등장하는 이모카와 우동의 발상지로 여겨져 세워진 비석이다.[3]
- 십왕당 - 이마오카에 있으며, 10명의 왕을 모시는 당이다.[3] 각지에 있던 석지장이 모여 있다.[3]
4. 1. 신사
- 하치오지 신사 - 이즈미다에 있는 촌사(村社)이다. 하치오지 신사 조개더미 위에 세워졌으며, 경내에는 이즈미다 고분(古墳)의 석실이 이전되었다.[1]
- 후쿠이즈미 류오샤 - 이즈미다에 있다.[1]
- 이마가와 하치만구 - 이마가와에 있는 촌사이다. 고도 경제 성장기에 아이치현도 제282호 건설을 위해 현재 위치로 이전되었으며, 이전 부지는 하치만 공원으로 정비되었다.[1]
- 신메이샤 - 이마오카에 있는 촌사이다. 1589년(덴쇼 17년)에 창립되었다.[1]
4. 2. 사찰
- 순경사 - 이즈미다. 진종 오타니파 사찰이다.[2]
- 서념사 - 이즈미다. 진종 오타니파 사찰이다.
- 정신사 - 이즈미다. 진종 오타니파 사찰이다.
- 승련사 - 이마가와. 진종 오타니파 사찰이다. 에도 시대 전기에 개산하였다고 한다.[3] 수령 850년으로 여겨지는 「승련사의 후박나무」는 카리야시 지정 천연기념물이다.[3]
- 승원사 - 이마오카. 진종 기베파 사찰이다. 1587년(덴쇼 15년)에 개산하였다.[3] 처음에는 지장사라고 불렸다.[3]
- 동린사 - 이마오카. 조동종 사찰이다. 1580년(덴쇼 8년)에 개산하였으며, 카리야 성 성주인 미즈노 타다시게가 개기하였다고 한다.[3] 상야등에는 1796년(간세이 8년)의 연호가 새겨져 있다.[3] 「나카츠 번사의 묘」와 「멧타이쿠야시이의 묘」 등의 사적이 있다.[3]
- 나카츠 번사의 묘 - 1742년(간포 2년), 분고국나카츠 번의 가신 2명이 이마오카 마을에서 칼부림을 하여 두 사람 모두 사망하여 동린사에 매장되었다.[3] 두 사람의 묘는 몇 번이나 고쳐도 반대쪽으로 기울어졌지만, 정성껏 공양을 한 뒤 기울어지지 않게 되었다는 전승이 있다.[3]
- 멧타이쿠야시이의 묘 - 동린사의 하녀 딸이 타카츠나미 마을에 있는 의왕사의 젊은 승려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불법 수행 중인 젊은 승려가 딸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이자 딸은 분사했다.[3] 딸의 묘에서는 불덩이가 떠오르거나 "정말 억울하다"는 소리가 난다는 전승이 있다.[3]
4. 3. 기타
- 이즈미다 고분 - 이즈미다. 하치오지 신사 경내에 횡혈식 석실이 이전되어 있다.
- 하치오지 신사 조개더미 - 이즈미다. 야요이 시대의 조개더미. 카리야시 지정 사적 (1958년 지정).
- 오후지의 소나무 - 이마가와. 후지마츠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소나무[3]。1560년 (에이로쿠 3년) 오케하자마 전투 때, 이마가와 요시모토 군에게 베여 죽은 여행자의 묘에 심어진 소나무였으나, 이세만 태풍으로 고사하여 현재는 메이테츠 나고야 본선 후지마츠역 앞에 2대째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3]。
- 히모카와 우동 발상지 비 - 이마오카. 에도 시대 도카이도의 기행문에 등장하는 이모카와 우동의 발상지로 여겨져 세워진 비석[3]。
- 십왕당 - 이마오카. 10명의 왕을 모시는 당[3]。각지에 있던 석지장이 모여 있다[3]。
참조
[1]
서적
角川日本地名大辞典 23 愛知県
[2]
웹사이트
順慶寺公式サイト
http://www.junkyoji.[...]
[3]
간행물
歴史の小径 東海道
https://www.city.kar[...]
刈谷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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