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빈 스텐로스
1. 개요
알빈 스텐로스는 핀란드의 육상 선수이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100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1924년 파리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15년 30km, 1923년 20km에서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으며, 핀란드 국내 선수권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다. 1926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2위를 차지한 후 1927년에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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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오스카르 알비누스 ("알빈") 스텐로스 |
|---|---|
| 별칭 | 알빈 스텐로스 |
| 국적 | 핀란드 |
| 출생일 | 1889년 2월 24일 |
| 출생지 | 베흐마, 핀란드 |
| 사망일 | 1971년 4월 30일 |
| 사망지 | 헬싱키, 핀란드 |
| 키 | 173 cm |
| 몸무게 | 64 kg |
| 종목 | 육상 |
|---|---|
| 세부 종목 | 1500 m – 마라톤 |
| 소속 클럽 | 헬싱긴 레이파스 |
| 개인 최고 기록 | 1500 m – 4:10.5 (1912) 3000 m – 8:54.1 (1912) 5000 m – 15:24.0 (1915) 10000 m – 32:21.8 (1912) 마라톤 – 2:41:23 (1924) |
| 올림픽 | 금메달 1924 파리 육상 마라톤 은메달 1912 스톡홀름 육상 단체 크로스컨트리 동메달 1912 스톡홀름 육상 10000 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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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남자 마라톤 선수 -
파보 누르미
파보 누르미는 핀란드의 육상 선수로, 올림픽에서 9개의 금메달과 3개의 은메달을 획득하고 22개의 세계 기록을 세웠으며, 체계적인 훈련 방식을 도입하여 육상 훈련에 혁신을 가져왔다. -
핀란드의 남자 마라톤 선수 -
한네스 콜레흐마이넨
한네스 콜레흐마이넨은 핀란드의 육상 선수로,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획득하고 1920년 안트베르펜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채식주의자이자 벽돌공으로도 활동했다. -
핀란드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
발테르 야콥손
발테르 야콥손은 핀란드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여러 차례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루도비카 아일러스와 페어를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
핀란드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
이보 니스카넨
핀란드의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인 이보 니스카넨은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획득하고 FIS 크로스컨트리 월드컵에서 9번 우승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인정받는다. -
1912년 하계 올림픽 육상 참가 선수 -
한스 브라운
한스 브라운은 독일의 육상 선수로,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800m 동메달과 혼성 계주 은메달을,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400m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중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
1912년 하계 올림픽 육상 참가 선수 -
미시마 야히코
미시마 야히코는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 일본 육상 대표로 참가하고 개막식 기수를 맡았으며, 가쿠슈인과 도쿄 제국대학 졸업 후 은행원으로 근무한 인물이다.
2. 선수 경력
스텐로스는 1909년 핀란드 국내 선수권 대회 마라톤을 통해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10000m, 5000m, 크로스컨트리 등 다양한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핀란드를 대표하는 장거리 육상 선수로 성장했다. 그는 한네스 콜레마이넨이 출전하지 않았던 1912년부터 1916년까지 5000m와 10000m에서 우승했고, 1915년부터 1917년까지 크로스컨트리도 제패했다.
2.1. 초기 경력 (1909년 ~ 1912년)
스텐로스는 1909년 핀란드 국내 선수권 대회에 처음 출전했다. 이 대회 마라톤 거리는 현재보다 짧게 설정되었다. 그는 이듬해인 1910년 핀란드 국내 선수권 대회 10000m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2. 전성기 (1912년 ~ 1924년)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 출전한 스텐로스는 10000m에서 한네스 콜레마이넨에게 뒤져 동메달을 획득했다. 크로스컨트리 종목에도 출전하여 6위에 올라 핀란드 대표팀의 단체전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1915년에는 30km에서 1시간 48분 06초 2의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다. 1923년에는 20km에서 1시간 07분 11초 2, 1924년에는 30km에서 1시간 46분 11초 6의 세계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1916년 하계 올림픽은 중지되었고, 스텐로스는 1920년 안트베르펜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후 1924년 파리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 15년 만에 마라톤에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더운 날씨 속에서 2위와 약 6분 차이의 압도적인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3. 선수 생활 은퇴 (1926년 ~ )
그는 1926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2위를 차지했고, 이듬해에도 참가했지만 참패하여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다.
3. 업적과 평가
스텐로스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육상 영웅으로, 특히 1924년 파리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은 그의 불굴의 의지와 뛰어난 기량을 상징하는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1915년과 1924년에 30km, 1923년에 20km 세계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당대 최고의 장거리 육상 선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100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1924년 파리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특히 1924년 파리 올림픽 마라톤에서는 15년 만의 마라톤 출전이었고, 매우 더운 날씨 속에서도 2위에 약 6분이나 앞서는 압도적인 기록으로 우승하며 핀란드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1926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2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1927년 보스턴 마라톤 참패를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