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부트루
1. 개요
에밀 부트루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이다. 몽루주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고등사범학교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874년 칸트 철학을 분석한 저서 『자연 법칙의 우연성에 관하여』를 출판했고, 낭시 대학교와 소르본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앙리 베르그손, 에밀 뒤르켐 등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1898년 윤리 정치학 아카데미 회원, 1902년 티에르 재단 이사장, 1912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으며, 1921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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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로마 가톨릭교도 -
루이 1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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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로마 가톨릭교도 -
샤를 8세
샤를 8세는 프랑스 발루아 왕가의 왕으로, 브르타뉴 여공작과의 결혼으로 브르타뉴를 프랑스에 통합하고 이탈리아 전쟁을 일으켰으나 큰 성과 없이 사망하여 발루아 왕가의 직계가 단절되었지만,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를 프랑스에 전파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동문 -
막스 베버
막스 베버는 독일 출신의 사회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 법학자로서, 종교사회학, 정치 체제 등을 연구하고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 발전에 미친 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을 분석했으며, 권위의 유형을 구분하고 사회과학 연구의 객관성과 가치 중립성을 강조했다. -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동문 -
오토 카리우스
오토 카리우스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150대 이상의 적 전차를 격파한 독일 국방군의 전차 에이스였으며, 종전 후 약학을 공부하여 약국을 운영하다 2015년에 사망했다. -
파리 대학교 교수 -
질 들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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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대학교 교수 -
자크 데리다
자크 데리다는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로, 탈구조주의의 주요 인물이며 서구 철학의 전제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현전의 형이상학"을 해체하려 했으며,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기호학에 영향을 받아 "텍스트 바깥은 없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2. 생애
에밀 부트루는 파리 근교 오드센주몽루주에서 태어나, 리세 나폴레옹(현 리세 앙리 4세)을 거쳐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유학 후, 캉의 리세에서 철학 교사로 재직했다. 1874년 박사 논문을 바탕으로 한 《자연 법칙의 우연성에 관하여》를 출판했다.
낭시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중 앙리 푸앵카레의 여동생 알린 푸앵카레와 결혼하여 아들 피에르 부트루를 낳았다. 이후 소르본 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도덕·정치학 아카데미 및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티에르 재단의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앙리 베르, 앙리 베르그송, 에밀 뒤르켐 등이 그의 제자이다. 1921년 11월 파리에서 사망하여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 묻혔다.
2.1. 초기 생애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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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부트루는 파리 근교 오드센주몽루주에서 태어났다. 리세 나폴레옹(현재 리세 앙리 4세)에서 중등 교육을 마치고, 1866년 고등사범학교에 합격하여 쥘 라슐리에의 수업을 들었다. 1868년 철학 아그레가시옹에 합격한 후, 펠릭스 라베송을 만나 1870년까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헤르만 폰 헬름홀츠에게 배우며 독일 철학을 접했다.
캉의 리세에서 철학 교수로 처음 일했다. 1874년 박사 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한 책 《자연 법칙의 우연성》을 출판했는데, 이 책은 칸트 철학이 과학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1874년부터 1876년까지 낭시 대학교 문학부에서 가르쳤으며, 그곳에서 과학자이자 수학자인 앙리 푸앵카레의 여동생 알린 푸앵카레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1880년 아들 피에르 부트루가 태어났다.
2.2. 학문적 경력
부트루는 리세 나폴레옹(현 리세 앙리카트르)에서 중등 교육을 마치고, 1866년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 합격하여 그곳에서 쥘 라슐리에의 수업을 들었다. 1868년 철학 아그레가시옹을 합격하고 나서, 곧바로 펠릭스 라베송을 만나 1870년까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 있었다. 이어서 부트루는 캉의 리세에서 철학 교사직을 얻었다. 1874년에 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몽펠리에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는데, 이후 낭시 대학교에서, 1878년에는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1885년부터는 마침내 소르본 대학교에서 가르쳤다.
1898년 윤리 정치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912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뽑혔다.
1902년, 부트루는 이후 돈-티에르 재단이 되는 티에르 재단의 이사장으로 임명되었다.
부트루가 가르친 제자로는 앙리 베르, 아벨 레, 앙리 베르그손, 모리스 블롱델, 에밀 뒤르켐이 있다.
2.3. 결혼과 가족
부트루는 1878년 앙리 푸앵카레의 누이인 알린 푸앵카레와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아들 피에르 부트루와 딸 루이즈 부트루를 두었다. 피에르 부트루는 훗날 저명한 수학자이자 과학사학자가 되었다. 에밀 부트루의 형제로는 루이 파스퇴르의 제자인 화학자 레옹 부트루가 있었다.
2.4. 학문적, 사회적 활동
리세 나폴레옹(현 리세 앙리카트르)에서 중등 교육을 마치고, 1866년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고등사범학교)에 합격하여 쥘 라슐리에의 수업을 들었다. 1868년 철학 아그레가시옹에 합격하고 나서, 곧바로 펠릭스 라베송을 만나 1870년까지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유학했다. 이어서 리세 드 캉에서 철학 교사직을 얻었다. 1874년에 철학 박사학위를 따고 나서, 몽펠리에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는데, 이후 낭시 대학교, 1878년에는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 1885년부터는 소르본 대학교에서 가르쳤다.
1898년 윤리 정치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912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뽑혔다. 1902년, 티에르 재단의 이사장으로 임명되었다.
부트루가 가르친 제자로는 앙리 베르, 아벨 레, 앙리 베르그송, 모리스 블롱델, 에밀 뒤르켐이 있다.
1898년 10월 9일 낭시에서 만난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의 누이인 알린 푸앵카레와 결혼하여 아들 피에르 부트루와 딸 루이즈 부트루를 가졌다.
2.5. 사망
에밀 부트루는 1921년 11월 22일 파리 16구 뷔고 로터리(현 샹슬리에-아드노에 광장) 5번가에 위치한 자택에서 사망하여, 몽파르나스 공동묘지 16구역에 묻혔다.
3.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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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저작
에밀 부트루는 다양한 철학 저서를 남겼다. 주요 저작으로 1874년에 출간된 《자연 법칙의 우연성》이 있으며, 이 책은 헤이본샤(1926), 소겐샤(1945), Puboo(2013)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소크라테스, 파스칼, 피히테, 윌리엄 제임스 등 여러 철학자들에 대한 연구서도 저술하였다.
1877년부터 1884년까지는 에두아르트 첼러의 《그리스 철학》을 번역했다. 1908년에 출간된 《현대 철학에서의 과학과 종교》는 하쿠분칸(1919), 다이 니혼 문명 협회(1923) 등에서 번역되어 일본에도 소개되었다.
영어 번역본으로는 《파스칼》(1902), 《윌리엄 제임스》(1911), 《현대 철학에서의 과학과 종교》(1911), 《철학사 연구》(1912), 《교육과 윤리》(1913) 등이 있다.
4.1. 사후 출판
* 《자연과 정신》 (1925)
* 《독일 철학사 연구》 (1926)
* 《칸트의 철학》 (1926)
* 《철학사 신 연구》 (1927)
*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강의》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