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홍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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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홍철은 대한민국의 前 체조 선수이자 現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교수이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도마 종목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으며, 1994년, 1998년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했다. 그가 개발한 '여 1', '여 2' 기술은 국제 체조 연맹에 의해 그의 이름을 따 'YEO' 기술로 명명되었다. 은퇴 후에는 한국체육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KBS 기계체조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딸 여서정 역시 체조 선수로,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여홍철
기본 정보
이름여홍철
국적대한민국
출생일1971년 5월 28일
출생지광주광역시
164 cm
종목체조
주 종목도마
레벨시니어
소속팀금호건설 체조단
대산기업 체조단
은퇴일2000년
로마자 표기Yeo Hong-cheol
기술
기술 이름"여 I" 및 "여 II" (도마)
메달 기록
1996 애틀랜타은메달 (도마)
1996 산후안은메달 (도마)
1994 브리즈번동메달 (도마)
1994 히로시마금메달 (도마)
1998 방콕금메달 (도마)
1994 히로시마은메달 (단체전)
1998 방콕은메달 (단체전)
1996 창사은메달 (도마)
1996 창사은메달 (단체전)
1991 셰필드금메달 (도마)
1993 버펄로은메달 (도마)
1993 상하이금메달 (도마)
1997 부산금메달 (마루)
1997 부산은메달 (도마)
1997 부산은메달 (단체전)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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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홍철(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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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여홍철은 어린 시절부터 상상했던 기술들을 현실로 만들었다. 국제 체조 연맹은 그의 독보적인 기술에 주목하여 그의 성을 딴 '여(YEO)' 기술을 정식으로 명명했다. '여 1' (쿠에르보 한 바퀴 반)은 손을 짚고 몸을 틀어 뒤로 세 바퀴를 도는 기술이며, '여 2' (쿠에르보 더블턴)는 공중에서 몸을 펴 두 바퀴 반을 비트는 고난도 기술이다.

그는 일본 장애물 코스 쇼인 사스케에 네 번(7회, 8회, 11회, 12회 토너먼트) 출연했지만, 매번 1단계를 통과하지 못했다.

2.1. 올림픽 및 국제 대회

여홍철은 1992년 하계 올림픽, 1996년 하계 올림픽, 2000년 하계 올림픽1994년 아시안 게임, 1998년 아시안 게임에 참가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개인 전 종목 예선 탈락이라는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도마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모든 종목에서 예선 탈락이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기계 체조 도마 부문 예선 3위로 결선에 올라 알렉세이 네모프(2000년 시드니), 리샤오솽(1996년 애틀랜타), 비탈리 셰르보(1992년 바르셀로나) 등 올림픽 개인 종합 챔피언들과 경합을 벌였지만, 착지 불안에 의한 실수로 네모프에 이어 은메달에 머물렀다.

'여 2(YEO 2·쿠에르보 더블턴)'는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중국리샤오솽을 이기기 위해 전지 훈련 당시 개발한 기술이다.

2000년 하계 올림픽 이후 은퇴를 선언했다.

2.2. '여 1', '여 2' 기술 개발

여홍철이 최초로 개발한 기술인 '여 1', '여 2'는 어린 시절부터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상상 속 기술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국제 체조 연맹은 여홍철의 독보적인 기술에 주목하여 그의 성을 붙여 '여(YEO)' 기술로 정식 명명하였다.

'여 1(YEO 1·쿠에르보 한 바퀴 반)' 기술은 손을 짚고 몸을 틀어 뒤로 세 바퀴를 도는 고난도 기술이다. 여홍철이 초등학교 때 처음 상상하고 그려왔던 기술이다.

'여 2(YEO 2·쿠에르보 더블턴)'는 공중에서 몸을 펴 두 바퀴 반을 비트는 기술로, 이 역시 착지 불안이 따르는 고난도 기술이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중국리샤오솽을 이기기 위해 전지 훈련 당시 이 기술을 개발했다.

2.3. '스포츠맨 No.1 결정전' 출연

여홍철은 1997년 1월 1일 TBS(TBSテレビ)의 『최강의 사나이는 누구인가! 격렬 근육 배틀!! 스포츠맨 No.1 결정전』 아틀란타 높이뛰기 선수권 대회에 처음 출전했다. 당시 세계 기록인 21단(높이 2.86m)에 처음 도전하여 성공, 잠시 세계 타이 기록 보유자가 되었으나 바로 이어 22단을 기록한 비탈리 셸보에게 패했다. 같은 해 4월 2일 같은 프로그램의 높이뛰기 세계 챔피언 결정전에서 23단(높이 3.06m)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인류 최초로 23단 성공자가 되었다. 이후 같은 프로그램과 『사스케』에도 여러 차례 출전했다. 높이뛰기에 도전한 선수들 중에서도 뛰어난 가속력과 순발력을 가진 선수였으며, 자신의 비결에 대해 "다리가 튼튼해서 발판(ロイター板)에 지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케가야 나오키는 "여홍철(ヨーさん)의 도약을 일반 선수가 한다면 다리만 부러질 뿐"이라고 말할 정도로 여홍철의 실력은 뛰어났다.

3. 은퇴 후 활동

여홍철은 2000년 하계 올림픽 이후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 한국체육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연구는 주로 엘리트 선수들의 운동 역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일본 장애물 코스 쇼인 사스케에 네 번(7회, 8회, 11회, 12회 토너먼트) 출연했지만 매번 1단계를 통과하지 못했다.

방송 활동으로는 2004년 KBS 《가족오락관》에 게스트로 출연했고, 2019년 JTBC뭉쳐야 찬다》, 2021년 JTBC 《뭉쳐야 쏜다》에 고정 출연했다. KBS2020년 하계 올림픽 기계체조 경기 국내 중계 방송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4. 학력

* 전남체육고등학교
* 경희대학교 체육학과 (체육학사)
*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학과 (교육학 석사, 학위논문명: 남자 도마에서 손짚고 앞공중돌아 540도 비틀기의 운동학적 분석)
*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 (체육학 박사, 학위논문명: 도마 손 짚고 몸펴 앞 공중 돌아 540도 비틀기의 역학적 분석)

5. 가족 관계

김채은과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다. 큰 딸은 여하연, 막내딸은 여서정이다. 여서정은 2020년 올림픽 도마 결선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아내 김채은은 전 체조 선수로 1994년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