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곡동
1. 개요
역곡동은 대한민국 경기도 부천시에 위치한 지역으로, 조선 시대에는 부평부 옥모면(또는 옥산면)에 속했다. 1973년 부천시 승격과 함께 역곡동으로 개칭되었으며, 이후 행정구역 개편을 거쳐 현재의 역곡1동, 역곡2동, 역곡3동을 통합한 형태를 갖추었다. 지명은 벌응절리, 사래리, 역곡 등에서 유래했으며, 수도권 전철 1호선 역곡역이 위치한다. 또한 가톨릭대학교, 유한대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초·중·고등학교가 있어 교육 중심지 역할을 한다.
| 이름 | 역곡1동 |
|---|---|
| 한자 표기 | 驛谷1洞 |
| 영문 표기 | Yeokgok 1(il)-dong |
| 광역시도 | 경기도 |
| 시군구 | 부천시 원미구 |
| 면적 | 1.1 |
| 법정동 | 역곡동 |
| 통 | 18 |
| 반 | 110 |
| 동주민센터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부일로791번길 14 |
| 홈페이지 | 역곡1동 행정복지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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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역곡2동 |
|---|---|
| 한자 표기 | 驛谷2洞 |
| 영문 표기 | Yeokgok 2(i)-dong |
| 광역시도 | 경기도 |
| 시군구 | 부천시 원미구 |
| 면적 | 1.1 |
| 법정동 | 역곡동 |
| 통 | 15 |
| 반 | 127 |
| 동주민센터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부일로699번길 35 |
| 홈페이지 | 역곡2동 행정복지센터 |
| 이름 | 역곡3동 |
|---|---|
| 한자 표기 | 驛谷3洞 |
| 영문 표기 | Yeokgok 3(sam)-dong |
| 광역시도 | 경기도 |
| 시군구 | 부천시 소사구 |
| 면적 | 1.8 |
| 법정동 | 괴안동 |
| 통 | 21 |
| 반 | 176 |
| 동주민센터 |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부광로8번길 53 |
| 홈페이지 | 역곡3동 행정복지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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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구 -
심곡본동
심곡본동은 경기도 부천시에 위치한 행정동으로, ‘깊은 구지’라는 옛 지명에서 유래되었으며, 과거 심곡1동에서 분동되어 부천역을 중심으로 발달된 교통망을 갖추고 2010년 기준 41,107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
소사구 -
한울빛도서관
한울빛도서관은 1988년 개관한 서울 강서구 소재 공공 도서관으로,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지역 사회의 문화적 거점 역할을 하며, 온라인 서비스 강화 및 정보 격차 해소에 힘쓰고 있다. -
부천시의 법정동 -
심곡본동
심곡본동은 경기도 부천시에 위치한 행정동으로, ‘깊은 구지’라는 옛 지명에서 유래되었으며, 과거 심곡1동에서 분동되어 부천역을 중심으로 발달된 교통망을 갖추고 2010년 기준 41,107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
부천시의 법정동 -
오정동 (부천시)
오정동은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에 속한 법정동으로, 조선시대에는 부평군에 속했으며 일제강점기에 한자가 바뀌었다가 복원되었고, 오정구의 일부로서 공공기관과 학교, 그리고 부천둘레길 제4코스인 황금들판길이 위치한 명소이다. -
1985년 폐지 -
삼성동 (강남구)
삼성동은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속하는 법정동으로, 봉은사, 선정릉, 코엑스 등의 주요 시설과 여러 지하철 노선 및 교육 시설을 갖추고 있다. -
1985년 폐지 -
구암동 (창원시)
구암동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속하는 행정 구역으로, 1570년 정씨의 정착으로 시작되어 1981년 구암동으로 개칭되었으며, 남해고속도로, 학교, 기업체, 3·15 민주묘지 등이 위치한다.
2. 역사
역곡동은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 여러 행정구역 변화를 겪었다. 조선 시대에는 부평부에 속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부천군에 속했다가 1973년 부천시로 승격되면서 역곡동이 되었다. 이후 행정동 분리와 구 편제 변경을 거쳐 2016년 책임읍면동제 도입으로 현재의 역곡1·2·3동이 되었다.
2.2. 일제 강점기
*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사래리와 벌응절리를 통합해 부천군 계남면 벌응절리가 되었다.
* 1941년 10월 1일: 부천군 소사읍 벌응절리가 되었다.
2.3. 해방 이후
* 1973년 7월 1일: 부천군이 부천시로 승격되면서 역곡동으로 고쳤다. 이때 역곡동과 괴안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역곡동이 설치되었다.
* 1974년: 역곡역이 신설되었다.
* 1983년 10월 1일: 역곡동과 괴안동이 독자적인 행정동으로 나누어졌다.
* 1985년 11월 15일: 역곡동이 역곡1·2동으로 나누어졌다.
* 1989년: 남구 괴안동이 역곡3동과 괴안동으로 분동되었다.
* 1993년 2월 1일: 원미구 역곡동으로 관할이 변경되었다.
* 2010년 10월: 원미구 관할 역곡1동, 역곡2동과 소사구 관할 역곡3동으로 분동되었다.
* 2016년 7월 4일: 부천시가 책임읍면동제를 도입하며 기존의 오정구, 원미구, 소사구 3개 구 편성을 폐지하였다. 이에 따라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역곡1·2동',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역곡3동'이 '경기도 부천시 역곡1·2·3동'이 되었다. 부천시는 기존 구청이 담당하던 복지업무 과부하로 인해 일부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던 주민들의 관리를 원활히 하고, 시민들의 구청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구 편성을 폐지하고 인근 4~5개 동을 묶어 일부 구청 업무를 대신하는 행정복지센터를 신설하였다.
3. 지명 유래
역곡동의 지명은 '벌응절리', '사래리', '역곡'이라는 세 가지 주요 지명에서 유래했다.
* 벌응절리({{lang|zh|伐應節里}}): 조선 1789년에 발간된 『호구총수』에 나오는 지명으로, '벌언저리', '벌은저리'의 한자 표기이거나, 봉응사(蜂應寺)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했거나, 혹은 임진왜란 때 왜군을 쳤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 사래리(士來里): 순우리말 '사래울'의 한자 표기로, 사하리(沙下里)·사리월(士里月)이라고도 불렸다.
* 역곡(驛谷): 역곡역 북쪽에 있던 역골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조선시대 역원(驛院) 설치와 관련이 있으며, '역마골'로도 불렸다.
3.1. 벌응절리
伐應節里중국어는 조선 1789년에 발간된 인구조사 기록인 『호구총수』의 부평부 옥산면에 기록되어 있는 지명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래가 있다.
# 벌판의 끝자락에 위치한 마을이란 뜻의 '벌언저리' 또는 '벌은저리'의 한자 표기이다.
# 옛날 이곳에 蜂應寺중국어란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설이다. ('蜂'은 우리말로 '벌'이고 '寺'는 우리말로 '절'이다.)
#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왜군에 '應[응할 응]'하여 왜군을 쳤(伐[칠 벌])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란 설이다.
이 마을은 지금의 역곡1동에 속하는 멀미산(또는 원미산, 역곡초등학교 북쪽에 위치)의 동쪽 기슭에 있었다.
3.2. 사래리
사래리(士來里)는 순우리말 이름인 '사래울'의 한자 표기이다. 사하리(沙下里)·사리월(士里月)이라고도 기록하는데, 모두 같은 발음에 대한 다른 한자 표기이다. 지금의 역곡2동이 옛 사래리가 있던 곳이다.
3.3. 역곡
현재의 역곡역 북쪽, 예전에 역골이 있던 자리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조선시대에 40리마다 역원(驛院)이 설치되었는데, 계곡 이름으로 역곡(驛谷)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역원이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역곡이란 이름은 여기에서 따온 것으로, 일명 역마골로도 불렸다.
4. 교통
수도권 전철 1호선 역곡역을 중심으로 대중교통이 발달하였다.
4.1. 지하철
수도권 전철 1호선 역곡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