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가대
1. 개요
영가대는 1614년 광해군 때 경상도 순찰사 권반이 부산진성 인근에 군사적 목적으로 축조한 인공 호수와 대(臺)를 지칭한다. 1624년 경상도 관찰사 이민구가 권반의 고향 안동의 옛 이름인 영가를 따서 영가대로 명명했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었으나, 2000년과 2003년에 각각 표석 설치와 누각 복원이 이루어졌다. 현재 복원된 영가대는 본래의 대(臺) 형태와 다른 누각(樓) 형태를 띄고 있어 복원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2. 역사
영가대는 조선 시대부터 현대까지 그 역사가 이어진다.
1614년 광해군 때 경상도 순찰사 권반이 부산진성 근처 넓은 땅을 파서 호수를 만들고 흙을 쌓아 둑을 만든 뒤, 그 위에 대를 설치하여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1617년 2차 조선통신사 행렬(종사 오윤겸)부터 영가대에서 해신제를 지냈으며, 1624년 경상도 관찰사 이민구가 영가대라 이름 지었다.
1905년 영가대 옆으로 경부선 기차선로가 만들어졌고, 일제강점기 일본 상인 오이카와의 별장으로 옮겨진 후 사라졌다.
2000년 부산광역시는 동구 좌천동에 “부산포왜관·영가대터” 표석을 세웠고, 2003년 동구청은 부산진성 동문 부근에 누각을 짓고 영가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2.1. 조선 시대
1614년 광해군 때 경상도 순찰사 권반이 부산진성 근처 넓은 땅을 파서 호수를 만들고 흙을 쌓아 둑을 만든 뒤, 그 위에 대를 설치하였다. 영가대는 처음에는 높은 곳에서 멀리 보이는 적을 살피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1617년 2차 조선통신사 행렬(종사 오윤겸)부터 영가대에서 항해의 안전을 비는 해신제를 지냈다.
1624년(인조 2) 경상도 관찰사 이민구(李敏求)는 권반의 고향 안동의 옛 이름인 영가(永嘉)를 따서 영가대라 이름지었다.
2.3. 현대
2000년 부산광역시는 역사유적지 표석 설치 계획에 따라 동구 좌천동 지하철역 부근 도로공원에 “부산포왜관·영가대터” 표석을 세웠다.
2003년 9월 25일 동구청은 부산진성 동문 부근에 누각을 짓고 영가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같은 해, 영가대 옛터에는 영가대 미니어처 조형물이 복원되었다.
3. 영가대기
1624년(인조 2) 경상도 관찰사 이민구는 권반의 고향 안동의 옛 이름인 '영가'를 따서 영가대라 이름 지었고, 자신의 문집 '동주집'에 '영가대기'라는 제목으로 영가대 조성 과정을 기록했다.
3.1. 영가대기 갑자(1624, 인조2)
1624년(인조 2) 경상도 관찰사 이민구(李敏求)는 '영가대기'에서 부산에서 일본까지의 거리, 당시 해상 방어의 중요성, 영가대 축조 과정, 완공 후 효과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민구는 권반이 백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가대를 건설한 배경과 과정, 완공 후 태풍에도 배들이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었던 효과 등을 기록하였다. 또한 영가대 건설에 참여한 인물들(전삼달, 엄황 등)과 영가대라는 이름의 유래(권반의 고향 안동의 옛 이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민구는 부산에서 일본까지 돛배 한 척으로도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기 때문에, 배와 전투 장비를 갖추고 밤낮으로 경계하며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바다에는 큰 바람이 자주 불어 배가 파손되는 경우가 많아 수리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배를 안전하게 정박시킬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1613년(광해군 5) 권반은 넓은 땅을 파서 호수를 만들고 흙을 쌓아 둑을 만들어 배를 정박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호수 주변에는 모래를 쌓아 대를 만들었는데, 이는 높은 곳에서 적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백성들은 이러한 공사에 반대했지만, 권반은 탁월한 견해로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영가대 건설을 추진했다.
공사가 끝난 후, 큰 제방과 넓은 호수가 만들어져 파도가 쳐도 안쪽은 잔잔했다. 1613년 8월에 큰 태풍이 불었을 때도 배들이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었고, 이에 백성들은 권반의 업적을 칭송하는 노래를 불렀다.
당시 전삼달(全三達)과 엄황(嚴愰)이 영가대 건설을 도왔다. 1624년(인조 2) 봄, 경상도 관찰사가 된 이민구는 전삼달, 엄황과 함께 영가대 공사를 마무리했다. 이들은 배를 침몰시켜 기초를 다지고 큰 돌로 제방을 만들어 파도를 막고 모래를 제거했다.
이민구는 권반이 쌓은 모래 위에 대가 있었지만 이름이 없었기에, 권반의 고향인 안동의 옛 이름인 '영가'를 따서 영가대라고 이름 지었다.
4. 복원 오류
2003년 부산광역시 동구에서 복원한 영가대는 원래의 모습과 다르다는 지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