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남씨
1. 개요
영양 남씨는 신라 경덕왕 때 중국에서 일본으로 가던 중 표류하여 신라에 정착한 남민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고려 시대에 남민의 7세손 남진용의 세 아들을 중시조로 하여 영양 남씨, 의령 남씨, 고성 남씨로 분파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문과 26명, 무과 13명의 급제자를 배출했으며, 2015년 대한민국 인구 조사에서 82,272명으로 확인되었다.
2. 역사
영양 남씨의 시조 남민(南敏)은 본래 김충(金忠)으로, 당 현종 때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신라 경덕왕 때 태풍을 만나 신라에 정착하였다. 경덕왕은 남민에게 남씨 성을 내리고 영양현을 식읍으로 주었다. 고려시대에 남민의 7세손 남진용의 세 아들이 각각 영양 남씨, 의령 남씨, 고성 남씨로 분관되었다.
2.1. 시조 및 기원
시조 남민(南敏)은 본래 이름이 김충(金忠)이다. 당 현종 천보 14년(신라 경덕왕 14년) 중국 봉양부(鳳陽府) 여남(汝南)에서 안렴사(按廉使)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태풍을 만나 경상북도 영덕(盈德)의 죽도(竹島)에 표류하여 신라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경덕왕은 그가 여남에서 왔다고 하여 남씨(南氏)를 내리고 이름을 민(敏)으로 고쳐 부르게 하였으며 영양현(英陽縣)을 식읍으로 내렸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남민의 7세손 대장군(大將軍) 남진용(南鎭勇)의 세 아들을 각각 중시조로 하여 분관되었다. 장남 남홍보(南洪輔)가 선조의 대를 이어 영양(英陽)을 본관으로 하고, 차남 남군보(南君甫)는 의령 남씨, 삼남 남광보(南匡甫)는 고성 남씨로 분관하여 각 본관의 1세조가 되었다.
2.2. 분관 및 중시조
시조 남민(南敏)은 본래 이름이 김충(金忠)이었다. 당 현종 천보 14년(신라 경덕왕 14년) 중국 봉양부(鳳陽府) 여남(汝南)에서 안렴사(按廉使)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태풍을 만나 경상북도 영덕(盈德)의 죽도(竹島)에 표착하여 신라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경덕왕은 그가 여남에서 왔다고 하여 남씨(南氏)를 내리고 이름을 민(敏)으로 고쳐 부르게 하였으며 영양현(英陽縣)을 식읍으로 내렸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남민의 7세손 대장군(大將軍) 남진용(南鎭勇)의 세 아들을 각각 중시조로 하여 분관되었다. 장남 남홍보(南洪輔)가 선조의 대를 이어 영양(英陽)을 본관으로 하고, 차남 남군보(南君甫)는 의령 남씨, 삼남 남광보(南匡甫)는 고성 남씨로 분관하여 각 본관의 1세조가 되었다.
3. 인물
영양 남씨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남숙손이 문과에 급제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문과 26명, 무과 13명을 비롯하여 생원시, 진사시, 역과, 율과, 음양과, 의과, 취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재를 배출하였다.
3.2. 조선
영양 남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6명, 무과 급제자 13명을 배출하였다.
4. 항렬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
| ○조(朝) |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46세 | 47세 | 48세 | 49세 | 50세 |
|---|---|---|---|---|---|---|---|---|---|
| ○배(培) |
5. 인구
| 연도 | 인구 |
|---|---|
| 2000년 | 69,155명 |
| 2015년 | 82,272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