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스에마루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오다 스에마루는 덴도 번의 다이묘인 오다 노부미치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보신 전쟁 당시 형 오다 노부토시가 은퇴하면서 양자가 되어 가독을 이었고, 덴도 번 지번사가 되었으나 어린 나이로 인해 면직되었다. 이후 6세에 사망했으며, 도쿄도 분쿄구의 고린지에 묘가 있다.

오다 스에마루
기본 정보
씨족오다 씨 (노부카쓰 계통 노부요시 류)
묘소도쿄도분쿄구무코가오카의 고린지
생애
시대에도 시대 말기 - 메이지 시대
출생게이오 2년 2월 20일 ((1866년4월 5일))
사망메이지 4년 5월 9일 ((1871년6월 26일))
아명스에마루
아버지오다 노부미치
양아버지오다 노부토시
형제노부토시, 스에마루 외 6남 9녀
직위
데와덴도 번 번주
막부해당 없음
주군해당 없음
관위해당 없음
기타
계명해당 없음
신호해당 없음
시호해당 없음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덴도번주 - 오다 노부치카 (1751년)
    오다 노부치카는 에도 시대 하타모토 출신으로 메이와 사건 이후 오바타 번주가 되었으며, 영지를 옮겨 다카하타 진야를 세우고 가문의 격식 회복에 힘썼으나 덴메이 대기근을 겪었고 그의 사후 아들 오다 노부카즈가 가문을 이었다.
  • 덴도번주 - 오다 노부미치 (1819년)
    오다 노부미치는 에도 시대 덴도 번의 2대 번주로, 재정 악화에 대응하여 홍화 전매제와 연공 선납화를 실시했으며 막말 동란기에 쇼나이번의 공격으로 피신 후 은거하였다.
  • 1866년 출생 - 하신토 베나벤테
    스페인의 극작가 하신토 베나벤테는 사회 비판과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172편의 희곡을 썼으며, 19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자유주의적 군주제 지지 성향을 보였다.
  • 1866년 출생 - 램지 맥도널드
  • 막말의 다이묘 - 나베시마 나오마사
    나베시마 나오마사는 막말에서 메이지 유신기에 사가 번의 번정 개혁과 근대화를 주도하며 재정 개혁, 서양 기술 도입, 천연두 예방 접종 도입, 정치적 중립, 신정부 수립 참여 등의 업적을 남긴 사가 번 제10대 번주이다.
  • 막말의 다이묘 - 이이 나오스케
    이이 나오스케는 1815년에 태어나 1850년 히코네 번의 번주가 되었으며, 다이로로서 미국과의 통상 조약을 체결하고 막부 정치를 주도했으나 안세이 대옥을 일으켜 비판받았고, 1860년 사쿠라다 문 밖의 변에서 암살당했다.

2. 생애

오다 스에마루는 에도 시대 말기 덴도 번주 오다 노부미치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보신 전쟁메이지 유신이라는 격동기에 형 오다 노부토시가 은거하면서 아주 어린 나이에 가독을 이어받아 명목상 번주이자 판적봉환 이후 지번사가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 나이를 이유로 지번사에서 물러나 형의 적자가 되었으며, 1871년 6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의 묘소는 도쿄도 분쿄구의 고린지에 있다.

2.1. 출생과 가독 상속

오다 노부미치(제2대 덴도 번주)의 여섯째 아들로 텐도에서 태어났다.

1868년 12월 7일, 보신 전쟁에서 신정부에 저항한 형이자 덴도 번주였던 오다 노부토시는 신정부로부터 영지 2천 석 몰수와 은거 명령을 받았다. 당시 노부토시는 메이지 유신에 반대하여 북부 제번의 오우에쓰 열번 동맹에 참여한 상태였다. 같은 해 12월 18일, 노부토시가 은거함에 따라 당시 젖먹이였던 스에마루(당시 이름 쥬쥬마루)가 노부토시의 양자로 입적되어 가독을 상속받았다.

1869년 4월 2일 판적봉환이 실시되었고, 같은 해 6월 22일 스에마루는 덴도의 지번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 때문에 같은 해 7월 19일 지번사에서 면직되었고, 은거 중이던 형 노부토시가 다시 지번사 자리를 맡게 되었다. 이로 인해 스에마루는 노부토시의 적자 신분이 되었다.

1871년 5월 9일, 스에마루는 6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정실과 자식은 없었다. 그의 묘소는 도쿄도 분쿄구에 위치한 고린지에 있다.

2.2. 번주 지위 상실과 번지사 재임

오다 노부미치(제2대 덴도 번주)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메이지 원년(1868년) 12월 7일, 보신 전쟁 당시 메이지 유신에 반대하여 북부 제번의 오우에쓰 열번 동맹에 가담했던 형 오다 노부토시(제3대 덴도 번주)가 신정부로부터 2000석 영지 몰수와 함께 은거 명령을 받았다. 당시 노부토시는 가택 연금 상태였다. 같은 해 12월 18일, 노부토시가 은거함에 따라 그의 양자가 된 스에마루가 가독을 이어받아 명목상 덴도 번의 마지막 번주가 되었다. 이때 스에마루는 아직 젖먹이였다.

메이지 2년(1869년) 4월 2일 판적봉환이 이루어졌고, 같은 해 6월 22일 스에마루는 덴도 번의 번지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당시 스에마루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같은 해 7월 19일 번지사에서 면직되었다. 대신 은거 중이던 형 노부토시가 다시 번지사가 되었고, 스에마루는 노부토시의 적자 신분이 되었다.

스에마루는 메이지 4년(1871년) 5월 9일, 6세의 어린 나이로 사망했다. 정실과 자녀는 없었다. 그의 묘는 도쿄도 분쿄구에 있는 고린지 불교 사찰에 있다.

2.3. 요절

메이지 원년(1868년) 12월 7일, 보신 전쟁에서 메이지 유신 신정부에 저항한 텐도 번주이자 형인 오다 노부토시가 영지 2,000석 몰수와 함께 은거 명령을 받았다. 같은 해 12월 18일, 노부토시가 은거함에 따라 당시 젖먹이였던 스에마루가 양자가 되어 가독을 이었다.

메이지 2년(1869년) 4월 2일 판적봉환이 이루어졌고, 같은 해 6월 22일 스에마루는 텐도 번지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를 이유로 같은 해 7월 19일 번지사에서 면직되었고, 은거 중이던 노부토시가 다시 번지사가 되면서 스에마루는 노부토시의 적자가 되었다.

메이지 4년(1871년) 5월 9일, 스에마루는 6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정실과 자녀는 없었다. 그의 묘는 도쿄도 분쿄구에 있는 고린지 불교 사찰에 있다.

3. 가계

오다 노부미치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인 오다 노부토시(제3대 덴도 번주)의 양자가 되었다.

1868년 12월, 보신 전쟁 당시 메이지 유신에 반대하여 북부 제번의 오우에쓰 열번 동맹에 가담했던 양부 오다 노부토시가택 연금 처분을 받고 은거하게 되자, 아직 젖먹이였던 스에마루가 그의 뒤를 이어 제4대 덴도 번주가 되었다. 그러나 1869년 7월, 노부토시가 덴도로 돌아오는 것이 허락되었고, 판적봉환 이후 번지사로 임명되면서 스에마루는 번주(번지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스에마루는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사망했으며, 묘는 도쿄도 분쿄구에 있는 고린지 불교 사찰에 있다.

👆
좌우로 밀어서 보기
관계이름
실부오다 노부아키
양부오다 노부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