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영
1. 개요
오드리 영은 1940년대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계약 배우로 활동했으며, 2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 데뷔작은 《레이디 인 더 다크》였으며, 배우가 되기 전에는 토미 도세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노래를 불렀고, 《블루 스카이즈》 등 여러 영화에서 노래했다. 또한, 영화 《아파트》와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의상 컨설턴트로 일했다. 1949년 영화 감독 빌리 와일더와 결혼하여 2002년 빌리 와일더가 사망할 때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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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사망 -
시아오시 투포우 5세
시아오시 투포우 5세는 통가의 제23대 국왕으로, 외무장관을 역임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다 2006년 즉위 후 민주주의 개혁을 추진하고 권력을 이양하는 등 통가의 정치 개혁에 힘썼으나 결혼하지 않아 왕위 계승권이 있는 자녀는 없었다. -
2012년 사망 -
에릭 홉스봄
에릭 홉스봄은 영국 출신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 등 저술을 통해 근대와 20세기를 분석했으며, 공산주의에 대한 옹호적 시각과 소련의 범죄에 대한 침묵 등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 -
미국의 여자 영화 배우 -
린지 모건
린지 모건은 《제너럴 호스피털》의 크리스티나 데이비스, 《더 100》의 레이븐 레예스, 《워커》의 미키 라미레즈 역으로 알려진 미국의 배우로, 2013년 데이타임 에미상 드라마 시리즈 부문 신인 여배우상 후보에 올랐다. -
미국의 여자 영화 배우 -
라나 우드
라나 우드는 미국의 배우이자 작가이며, 1956년 영화 《수색자》로 데뷔하여 1971년 영화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서 본드걸로 출연했고, 자서전을 집필했다. -
1922년 출생 -
유기정
유기정은 삼화인쇄 회장, 국회의원,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 최초로 컬러 인쇄를 도입했고, 2010년에 노환으로 사망했다. -
1922년 출생 -
신상초
신상초는 일제강점기 항일 운동에 참여하고 해방 후 정치인으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 교수, 연구원 대표 등을 역임했다.
2. 초기 생애
영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스트라튼 영은 영화 세트를 제작했다.
3. 경력
오드리 영은 1940년대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계약 배우로 활동하며 경력을 시작했다. 1944년부터 1949년까지 약 20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데뷔작은 레이디 인 더 다크(1944)였다. 배우가 되기 전에는 토미 도세이 오케스트라의 가수였으며, 영화와 보드빌 무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노래 실력을 선보였다. 이후에는 남편 빌리 와일더가 감독한 영화 아파트와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의상 컨설턴트로 참여하기도 했다.
3.1. 영화 배우
영은 1940년대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계약하여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배우가 되기 전에는 토미 도세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노래했으며, 영화에서도 종종 노래 실력을 선보였다. 배우 활동 외에도 가수로 활동하거나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1944년 11월 1일에는 로스앤젤레스의 W6XYZ (후에 KTLA) 방송국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What a Difference a Day Makes"와 "Getting Sentimental Over You"를 불렀다. 당시 연예 전문지 빌보드는 영의 목소리와 외모를 칭찬하며 텔레비전 출연에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그녀는 보드빌 무대에서도 가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이후 남편 빌리 와일더가 감독한 영화 아파트(1960)와 뜨거운 것이 좋아(1959)에서 의상 컨설턴트로 참여하기도 했다.
3.1.1. 출연 영화 목록
오드리 영은 1940년대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계약 배우로 활동했으며, 1944년부터 1949년까지 약 2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녀의 영화 데뷔작은 레이디 인 더 다크(1944)였다. 배우가 되기 전에는 토미 도세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노래했으며, 블루 스카이스를 포함한 여러 영화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녀가 맡은 역할 대부분은 비중이 작거나 크레딧에 이름이 오르지 않는 단역이었지만, 데인저 스트리트(1947)와 더 위스풀 위도우 오브 왜건 갭(1947) 같은 영화에서는 예외적으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 그녀의 마지막 영화 출연은 오후의 사랑(1957)으로, 게리 쿠퍼가 연기한 배역의 오페라 데이트 상대로 등장했으나 크레딧에는 이름이 오르지 않았다.
| 연도 | 제목 | 비고 |
|---|---|---|
| 1944년 | 업 인 암스 | |
| 1945년 | 조지 화이트의 스캔달 | |
| 1945년 | 스토크 클럽 | |
| 1946년 | 블루 스카이스 | |
| 1946년 | 러버 컴 백 | |
| 1946년 | Monsieur Beaucaire | |
| 1947년 | 데인저 스트리트 | |
| 1947년 | 더 위스풀 위도우 오브 왜건 갭 | |
| 1949년 | 이지 리빙 | |
| 1957년 | 오후의 사랑 | 크레딧 없음 |
3.2. 가수 및 기타 활동
배우가 되기 전에는 토미 도세이(Tommy Dorsey)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이후 '블루 스카이즈'를 포함한 여러 영화에서 솔로 또는 그룹의 일원으로 노래하기도 했다. 또한 보드빌 무대에서도 가수로 활동했다.
1944년 11월 1일에는 로스앤젤레스의 W6XYZ (후에 KTLA) 방송국에서 방영된 파라마운트 스튜디오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영은 "What a Difference a Day Makes"와 "Getting Sentimental Over You" 두 곡을 불렀다. 당시 빌보드지의 리뷰에서 사이 와그너는 영에 대해 "멋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매우 텔레제닉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배우 활동 외에도, 그녀의 남편이 감독한 영화 '아파트'와 '뜨거운 것이 좋아' 두 편에서 의상 컨설턴트로 참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