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록충종
1. 개요
오록충종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양구림에게서 《역경》을 배우고 석현과 친분을 맺어 상서령이 되었다. 경방을 쫓아내고 건소 5년(기원전 38년)에 소부가 되었으며, 원제 때 양구역에 대한 토론에서 주운에게 패배하기도 했다. 성제 즉위 후에는 석현이 실각하고 현도태수로 좌천되었으며, 미성자에게서 학문을 수학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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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의 상서령 -
곽광
곽광은 곽거병의 이복 동생으로, 한 무제의 신임을 받아 섭정하며 어린 소제를 보좌하고 한 선제를 옹립했으며, 훌륭한 통치 능력으로 존경받았으나 독재적인 통치 스타일과 족벌주의로 비판받기도 한다. -
전한의 상서령 -
장안세
장안세는 전한 시대 장탕의 임자로 관직에 올라 무제, 소제, 선제를 섬기며 곽광의 신임을 받아 부평후에 봉해지고 사후 경이라는 시호를 받은 관료이다. -
한나라의 정치인 -
구독
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한나라의 정치인 -
석편
석편은 전한 시대의 관료로, 기원전 138년에 내사에 임명되어 석경의 뒤를 이어 내사를 지냈으며, 정당시가 그의 후임자이다. -
전한의 정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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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緱起)는 전한 시대에 기후(騎虎)에 봉해지고 태상(太常)을 역임한 인물로, 기원전 32년 사망 후 그의 아들 구숭(求崇)이 기후 자리를 계승했다. -
전한의 정치인 -
장량
장량은 전국시대 말기부터 초한쟁패기를 거쳐 전한 초기에 활약한 한나라 귀족 출신 인물로,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우고 유후에 봉해진 뛰어난 지략가이자 책사이다.
2. 생애
양구림 밑에서 《역경》을 익힌 후, 중서령(中書令) 석현과의 친분을 통해 상서령에 임명되며 권력의 중심에 다가섰다. 그는 석현과 함께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경방을 몰아내는 데 관여했으며, 건소 5년(기원전 38년)에는 소부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원제의 명으로 역경 학자들과 토론을 벌였으나, 그의 권세와 변설에 눌려 대부분 나서지 못했다. 이때 주운만이 당당히 나서 그를 논파하여 "오록의 긴 뿔을 주운이 꺾었다"는 평을 받았다.
원제 사후 성제가 즉위하고 석현이 실각하자, 오록충종 역시 현도태수로 좌천되었다. 정치적으로는 몰락했지만, 사손장, 등팽조, 형함, 풍상과 같은 제자들을 두어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후대에 남겼다.
2.1. 학문 수학
양구림 밑에서 《역경》을 익혔다.
중서령(中書令) 석현과 친분이 있어 상서령이 되었으며, 이후 중서복야(中書僕射) 뇌량(牢梁)과 함께 높은 지위에 오른 것을 두고 당시 세간에서는 그들의 권세를 노래하기도 했다. 또한, 역경을 배운 경방이 원제에게 임용되려 하자, 경방이 석현 등을 축출하려 한다는 이유로 석현과 함께 그를 쫓아내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건소 5년(기원전 38년)에는 소부가 되었다. 당시 원제는 양구역(梁丘易), 즉 양구림의 학통을 이은 역경 해석을 좋아하여, 다른 역경 학자들에게 소부 오록충종과 토론하게 하여 그 학문의 깊이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오록충종은 석현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권세를 누리고 있었고 교묘한 변설에도 능했기에, 다른 학자들은 그의 권세를 두려워하여 병을 핑계로 토론에 나서지 않았다.
이때 주운만이 당당히 나서 오록충종과 토론하였고, 그의 주장을 성공적으로 논파하였다. 이를 지켜본 학자들은 "오록의 긴 뿔을 주운이 꺾었다"라고 평하며 통쾌해했다.
원제가 세상을 떠나고 성제가 즉위하자, 석현이 실각하면서 오록충종 또한 현도태수로 좌천되었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몰락했지만, 그에게는 사손장, 등팽조, 형함, 풍상과 같은 제자들이 있어 그의 학문은 후대에 전해질 수 있었다.
2.2. 관직 생활
양구림 밑에서 《역경》을 익혔다.
중서령(中書令) 석현과 친분이 있어 상서령이 되었다. 오록충종과 중서복야(中書僕射) 뇌량이 지위를 얻은 것을 두고 세간에서는 "뇌여, 석이여, 오록의 손님이여. 도장은 왜 그리 많은가? 인끈은 왜 그리 긴가?"라고 노래하였다.
역시 역경을 배운 경방이 원제에게 임용되려 하자, 경방이 석현 등을 축출하려 한 것을 염두에 두고 석현과 함께 그를 쫓아냈다.
건소 5년(기원전 38년), 소부가 되었다.
원제는 양구역(梁丘易)을 좋아하여 역경을 배운 학자들로 하여금 소부 오록충종과 함께 토론케 하여 고찰하려 하였다. 오록충종의 권세와 교묘한 변설 때문에 학자들은 대항하려 하지 않았고,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주운은 당당히 오록충종과 토론하여 이겼고, 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오록의 긴 뿔을 주운이 꺾었다"라고 하였다.
원제가 승하하고 성제가 즉위하였다. 석현은 실각하였고, 오록충종 또한 현도태수로 좌천되었다. 석현과 같은 파벌이었던 이가(伊嘉)는 안문도위(雁門都尉)가 되었고, 뇌량과 진순(陳順)은 파면되었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이는 안문으로, 녹은 현도로. 뇌와 진은 쓸모가 없어 내쳐졌구나."라고 노래하였다.
제자로 사손장·등팽조·형함·풍상을 두었다.
2.3. 제자
오록충종은 사손장·등팽조·형함·풍상을 제자로 두었다.
3. 일화
오록충종은 스승 미성자 밑에서도 공부했다. 미성자는 젊은 시절 누군가에게 글자가 새겨진 달걀 크기의 돌을 받았는데, 이 돌을 삼키고 학문에 통달하여 세상에서 학식이 매우 뛰어난 선비라는 뜻의 통유(通儒)로 불렸다. 훗날 미성자는 병이 들자 돌을 토해내어 오록충종에게 주었고, 오록충종 역시 이 돌을 삼키고 학문을 깨우쳤다고 한다.
4. 출전
* 반고, 《한서》 권19하 백관공경표 下·권67 양호주매운전·권88 유림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