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 블루지
1. 개요
오시 블루지는 미국의 야구 선수, 코치, 감독, 그리고 구단 경영진이었다. 그는 조 엥겔에 의해 발굴되어 1922년부터 1939년까지 워싱턴 세네터스에서 18년간 1,867경기를 소화하며 선수 생활을 했다. 1924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했으며, 1925년과 1933년에는 팀의 페넌트 우승에 기여했다. 통산 타율 .272, 848타점을 기록했으며, 1935년 메이저 리그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선수 은퇴 후에는 1940년부터 1942년까지 워싱턴 세네터스의 코치를, 1943년부터 1947년까지는 감독을 맡았으며, 이후 팜 시스템 디렉터와 구단 감사로 1971년 은퇴할 때까지 50년간 구단에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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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Oswald Louis Bluege |
|---|---|
| 출생일 | 1900년 10월 24일 |
| 출생지 |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
| 사망일 | 1985년 10월 14일 |
| 사망지 | 미국 미네소타주 에디나 |
| 신장 | 180cm |
| 체중 | 73kg |
| 타석 | 우타 |
| 투구 | 우투 |
| 포지션 | 3루수 / 감독 |
| 데뷔 리그 | MLB |
|---|---|
| 데뷔일 | 1922년 4월 24일 |
| 데뷔팀 | 워싱턴 세너터스 |
| 마지막 리그 | MLB |
| 마지막 경기일 | 1939년 7월 13일 |
| 마지막 팀 | 워싱턴 세너터스 |
| 선수팀 | 워싱턴 세너터스 (1922–1939) |
| 타율 | 0.272 |
|---|---|
| 홈런 | 43 |
| 타점 | 848 |
| 감독팀 | 워싱턴 세너터스 (1943–1947) |
|---|---|
| 감독 성적 | 375–394 |
| 승률 | 0.481 |
| 올스타 | 1935년 |
|---|---|
| 월드 시리즈 우승 | 192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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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주 출신 야구 선수 -
톰 퀸런
톰 퀸런은 미국의 야구 선수로, 메이저 리그와 한국 프로 야구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2000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
미네소타주 출신 야구 선수 -
치프 벤더
치프 벤더는 20세기 초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한 투수로,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1910년 아메리칸 리그 승률 1위를 기록하고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독일계 미국인 -
리처드 닉슨
리처드 닉슨은 제37대 미국 대통령으로, 외교 정책, 워터게이트 사건, 그리고 사임이라는 상반된 유산을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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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존슨
가난한 환경에서 독학으로 정치 경력을 쌓아 대통령이 된 앤드루 존슨은 남북전쟁 이후 온건한 재건 정책으로 의회와 갈등을 겪고 탄핵 소추를 받았으나 부결되었으며, 이후 상원의원으로 활동한 논쟁적인 인물이다. -
1900년 출생 -
살로테 투포우 3세
살로테 투포우 3세는 1900년 통가에서 태어나 1918년 즉위하여 제2차 세계 대전 중 통가를 이끌었고, 문화 보존과 학술 연구를 지원하다 1965년 사망한 통가의 여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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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김동인은 '약한 자의 슬픔'으로 시작하여 '감자'와 같은 작품을 통해 사실주의를 개척하고, 《창조》를 창간했으며, 사후 동인문학상이 제정되었다.
2. 선수 경력
조 엥겔에 의해 발굴되어 워싱턴 세네터스에 입단한 블루지는 1922년 4월 24일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1939년 7월 13일 은퇴할 때까지 18년 동안 오직 워싱턴 세네터스 한 팀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1924년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으며, 팀이 아메리칸 리그 페넌트를 차지했던 1925년과 1933년 시즌에도 주전 3루수로 활약했다. 뛰어난 수비력으로 알려졌으며, 1935년에는 유격수로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2.1. 초기 생애
블루지는 시카고에서 태어나 도시의 구스 아일랜드 지역에서 자랐다. 1915년 루터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국제 하베스터에서 회계사로 일자리를 얻었다. 그는 회계사로 일하면서 지역의 모래밭 팀에서 활동하며 야구 실력을 갈고 닦았다. 남동생 오토 블루지는 내야수였으며,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신시내티 레즈에서 109경기에 출전했고, 프로 야구 선수로 13년간 선수 생활을 했다.
2.2. 워싱턴 세네터스 시절
오시 블루지는 사우스턴 협회의 채터누가 루커츠를 운영하며 워싱턴 세네터스 구단주 클라크 그리피스를 위해 스카우트로 일하던 조 엥겔에 의해 발굴되었다. 1922년 4월 24일 메이저 리그에 데뷔한 블루지는 1939년 7월 13일 마지막 경기를 치르기까지 18년 동안 오직 워싱턴 세네터스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다.
그는 1924년 월드 시리즈 우승 멤버였으며, 팀이 아메리칸 리그 페넌트를 차지했던 1925년과 1933년 시즌에도 주전 3루수로 활약했다. 블루지는 뛰어난 수비 능력으로 잘 알려져 있었는데, 아메리칸 리그 3루수로서 세 시즌 동안 병살타 부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시즌 외에는 부업으로 회계 관련 일을 하여 동료들 사이에서 "회계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블루지는 1935년에 유일하게 올스타로 선정되었는데, 당시 워싱턴에서는 주로 유격수로 뛰었다.
18년 동안 총 1,867경기에 출전한 그의 메이저 리그 통산 기록은 타율 .272 (6,440타수 1,751안타), 883득점, 276개의 2루타, 67개의 3루타, 43개의 홈런, 848타점, 140도루, 723볼넷, 출루율 .352, 장타율 .356이다. 그는 통산 수비율 .961을 기록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세 차례 진출한 월드 시리즈에서는 총 17경기에 나서 60타수 12안타, 5득점, 5타점을 기록했다.
3. 코치, 감독, 경영진 경력
1939년 선수 은퇴 후, 오시 블루지는 1940년부터 1942년까지 워싱턴 세너터스에서 코치로 활동했다. 이후 1943년부터 1947년까지는 같은 팀의 감독을 맡았다. 감독으로서 통산 379승 394패의 성적을 기록했으며, 특히 1943년과 1945년에는 팀을 2위로 이끌었다.
1948년에는 구단의 팜 시스템 디렉터로 임명되어 유망주 발굴에 힘썼는데, 그의 가장 큰 성과는 젊은 하먼 킬러브루를 발굴한 것이었다. 1958년, 구단이 미니애폴리스-세인트 폴로 연고지를 이전하여 미네소타 트윈스로 바뀌기 직전에 세너터스의 감사(구단의 수석 회계 담당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팀이 미네소타 트윈스로 바뀐 이후에도 계속 감사직을 유지했으며, 1971년 은퇴할 때까지 총 50년간 구단에 헌신했다.
4. 사망
블루지는 1985년, 85번째 생일을 10일 앞두고 미네소타주 에디나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사망하기 바로 전 주에는 워싱턴 레드스킨스 풋볼 경기 하프타임에 워싱턴 D.C.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여, 워싱턴 스타디움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예를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