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하라 다카시
1. 개요
오쿠하라 다카시는 1972년생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선수 시절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FC 도쿄에서 활약하며 '판타지스타'로 불렸으며, 풋살 일본 대표로도 활동했다. 2003년부터 FC 도쿄에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여 유소년팀을 거쳐 1군 코치를 역임했으며, U-15 팀 감독으로 2014년 고텐노미야배 우승을 이끌었다. 2024년부터 FC 도쿄 1군 팀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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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출생 -
나르게스 모하마디
이란의 인권 운동가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나르게스 모하마디는 여성 인권과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해 활동하며 이란 정부에 의해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2023년에는 이란 여성 억압에 맞선 투쟁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수감 중에도 저술 활동을 통해 인권 유린 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
1972년 출생 -
김여진
김여진은 1998년 영화 데뷔 후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고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2000년대 후반부터는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배우이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교토쿠 고지
교토쿠 고지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2008년 부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남아시아 축구 연맹컵 준결승 진출, 2003년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으로 J리그컵 준결승과 천황배 준결승 진출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
FC 도쿄의 축구 선수 -
리 다다나리
리 다다나리는 일본 도쿄 출신의 재일교포 4세 축구 선수로, 일본 국적을 취득 후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동했으며 J리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싱가포르 프리미어리그 등 다양한 리그에서 활약하다 은퇴했다. -
FC 도쿄의 축구 선수 -
루카스 세베리누
루카스 세베리누는 브라질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브라질, 프랑스, 일본 등에서 활약했으며, 특히 일본 J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2. 선수 경력
오쿠하라는 1972년 7월 31일 이나기에서 태어났다. 호리코시 고등학교와 주오 대학을 졸업하고, 1995년 당시 일본 풋볼 리그 소속이던 도쿄 가스 축구부(현 FC 도쿄)에 입단했다. 뛰어난 기술과 창의적인 플레이를 갖춘 판타지스타로 활약하며, FC 도쿄의 초대 등번호 10번을 달았다.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과 포니테일 헤어스타일 때문에 "로베르토 옥", "도쿄의 바조"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6년부터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팀의 1998년 리그 우승과 1999년 J2 리그 승격에 기여했다.
그러나 대학 시절 입은 무릎 부상은 선수 생활 내내 그를 괴롭혔다. 바조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한 것도 심한 부상에서 부활한 바조를 존경했기 때문이었다. 1999년 J2 리그에서는 부상 여파로 7경기 출전에 그쳤고, 결국 시즌 종료 후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 천황배 주빌로 이와타전이 그의 마지막 공식 경기가 되었다.
은퇴 후에는 원 소속팀 모기업인 도쿄 가스 본사에서 영업 담당으로 근무하면서, 아마추어 선수로도 활동을 이어갔다. 간토 리그의 엘리스 FC 도쿄에서 뛰었으며, 2000년에는 오메 FC로 기간 한정 이적하기도 했다. 같은 해 국민체육대회에서는 도쿄도 대표로 선발되어 우승을 경험했다. 2001년에는 풋살 선수로 전향하여 일본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AFC 풋살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2.1. 클럽 경력
호리코시 고등학교와 주오 대학을 졸업한 후, 1995년 도쿄 가스 축구부(현 FC 도쿄)에 입단했다. 뛰어난 기술과 창의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며 판타지스타로 활약했고, FC 도쿄의 초대 등번호 10번을 받았다. 스루 패스나 발리슛 등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과 포니테일을 휘날리는 외모 때문에 "로베르토 옥", "도쿄의 바조"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6년부터 공격형 미드필더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 잡았다. 도쿄 가스는 해마다 성적이 향상되어 1998년에는 일본 풋볼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대학 시절 당한 무릎 부상은 선수 생활 내내 그를 괴롭혔다. 머리 스타일을 바조처럼 했던 이유도 심한 부상을 딛고 일어선 바조를 존경했기 때문이었다. 팀이 FC 도쿄로 명칭을 변경하고 1999년 J2 리그에 참가했을 때도, 무릎 부상 여파로 허리 상태까지 나빠져 시즌 중반까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9월 25일, 고마자와 올림픽 공원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오이타 트리니타와의 홈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며 약 10개월 만에 복귀했고, 이후 J1 승격을 목표로 하는 팀을 위해 분투했다. 도도로키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중요한 경기에서는 발리슛으로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1999 시즌 리그 출전은 7경기에 그쳤고, 구단은 그의 무릎 상태를 고려하여 다음 시즌 J1 리그 구상에서 제외한다는 결정을 통보했다. 결국 오쿠하라는 1999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니시가오카에서 열린 천황배 하쓰시바하시모토 고등학교와의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 팬들에게 공식적으로 은퇴 의사를 밝혔으며, 주빌로 이와타와의 천황배 경기가 그의 마지막 공식 경기가 되었다. 이 경기에서도 부상으로 인해 도중 교체되었지만, 그의 플레이는 인상적이었으며, 당시 경기를 관전하던 이와타 OB 둥가는 이와타 승리의 요인 중 하나로 "도쿄의 10번(오쿠하라)이 벤치로 물러난 것"을 꼽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원 소속팀의 모기업인 도쿄 가스 본사에서 영업 사원으로 근무했으며, 아마추어 선수로서 간토 리그의 엘리스 FC 도쿄(2000년~2002년)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000년에는 오메 FC로 기간 한정 이적하기도 했다. 또한, 과거 팀 동료였던 오카모토 하야토와 함께 국민체육대회 도쿄도 대표로 선발되어 2000년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2001년에는 풋살 선수로 전향하여 일본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AFC 풋살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3. 지도자 경력
2003년부터 FC 도쿄에 복귀하여 보급부 코치로서 아이들을 지도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조후쿠 히로시 감독이 이끌던 2008년부터는 1군 팀 코치로 활동하며 조후쿠 감독을 보좌하고 선수들과의 소통을 담당했다. 이 기간 동안 A급 제너럴 라이센스를 취득했다. 2010년 9월, 조후쿠 감독이 해임되면서 함께 1군 코치직에서 물러나 U-12 육성 담당이 되었다.
2011년에는 FC 도쿄 U-15 후카가와 코치를 맡았고, 2012년부터는 감독으로 승격하여 팀을 이끌었다. 감독으로서 2013년 U-15 클럽 유스 선수권 준우승, 2014년 U-15 고엔노미야배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FC 도쿄에서의 활동 외에도 국민 체육 대회에 참가하는 도쿄도 소년 대표팀 지도를 맡았으며, 2013년에는 감독으로서 해당 대회에서 우승을 달성했다.
2017년부터는 육성 부장으로서 FC 도쿄의 하부 조직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2021년 12월에는 S급 코치 라이센스를 취득했다.
2022년에는 FC 도쿄 U-18 감독으로 부임하며 5년 만에 현장으로 복귀했다. 2024년부터는 다시 FC 도쿄의 1군 팀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 연도 | 소속 | 직책 |
|---|---|---|
| 2003년 | FC 도쿄 | 보급부 코치 |
| 2004년 - 2006년 | FC 도쿄 | 보급부 클리닉 마스터 |
| 2007년 | FC 도쿄 | 보급부 스쿨 마스터 |
| 2007년 - 2012년 | 도쿄도 국체 선발 | 소년 남자 코치 |
| 2008년 - 2010년 9월 | FC 도쿄 | 1군 코치 |
| 2010년 9월 - 12월 | FC 도쿄 | 보급부 코치 겸 U-12 육성 담당 |
| 2011년 | FC 도쿄 U-15 후카가와 | 코치 |
| 2012년 - 2016년 | FC 도쿄 U-15 후카가와 | 감독 |
| 2013년 | 도쿄도 국체 선발 | 소년 남자 감독 |
| 2017년 - 2021년 | FC 도쿄 | 아카데미 매니지먼트 부장, 아카데미 디렉터 |
| 2022년 - 2023년 | FC 도쿄 U-18 | 감독 |
| 2024년 - | FC 도쿄 | 1군 코치 |
4. 수상 내역
| 구분 | 대회명 | 수상 연도/결과 |
|---|---|---|
| 선수 | 전일본 대학 축구 선수권 대회 | 1992년 우승 |
| 선수 | 일본 풋볼 리그 | 1998년 우승 |
| 선수 | 국민체육대회 축구 경기 청년 남자 | 2000년 우승 |
| 지도자 | 일본 클럽 유스 축구 선수권 (U-15) | 2013년 준우승 (FC 도쿄 U-15) |
| 지도자 | 고엔노미야배 전일본 유스(U-15) 축구 선수권 대회 | 2014년 우승 (FC 도쿄 U-15) |
| 지도자 | 국민 체육 대회 축구 경기 소년 남자 | 2013년 우승 (도쿄도 선발) |
4.1. 선수 시절
1972년 7월 31일 이나기에서 태어났다. 주오 대학을 졸업한 후, 1995년 일본 풋볼 리그의 도쿄 가스(훗날 FC 도쿄)에 입단하며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96년부터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소속팀 도쿄 가스는 해마다 성적이 향상되었고, 마침내 1998년에는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 우승을 바탕으로 팀은 1999년부터 새롭게 출범한 J2 리그로 승격했다. 그러나 오쿠하라는 부상으로 인해 J2 리그에서는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결국 1999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났다.
주요 수상 내역
| 대회명 | 수상 연도 |
|---|---|
| 전일본 대학 축구 선수권 대회 | 1992년 |
| 일본 풋볼 리그 | 1998년 |
| 국민체육대회 축구 경기 청년 남자 | 2000년 |
4.2. 지도자 시절
2003년부터 FC 도쿄에 복귀하여 보급부 코치(클리닉 마스터)로서 아이들을 지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조후쿠 히로시 감독이 취임한 2008년부터는 1군 팀 코치로 활동하며 조후쿠 감독을 보좌하고 선수들과의 소통을 담당했다. 이 기간 동안 A급 제너럴 라이센스를 취득했다. 2010년 9월, 조후쿠 감독이 해임되면서 함께 1군 코치직에서 물러나 U-12 육성 담당이 되었다.
2011년에는 FC 도쿄 U-15 심카와 코치를 맡았고, 2012년부터는 감독으로 승격했다. 감독으로서 2013년 U-15 클럽 유스 선수권에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2014년 U-15 고엔노미야배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FC 도쿄에서의 활동 외에도 국민 체육 대회에 참가하는 도쿄도 선발(소년 남자) 팀의 지도를 맡았으며, 2013년에는 감독으로서 자국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우승을 달성했다.
2017년부터는 육성 부장으로서 FC 도쿄의 하부 조직 전체를 총괄했다. 2021년 12월에는 S급 코치 라이센스를 취득했다.
2022년에는 FC 도쿄 U-18 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5년 만에 현장 지도자로 복귀했다. 2024년부터는 다시 FC 도쿄의 1군 팀 코치로 활동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