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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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왕국은 후한 말기에 저족과 강족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187년 양주 자사 경비가 신임하던 정구가 간악하자 저족과 강족을 이끌고 난을 일으켰으며, 금성적 한수와 연합하여 세력을 확장했다. 왕국은 한양을 포위하고 부섭을 회유했으나 실패하고, 마등과 합류하여 합중장군을 자칭하며 삼보를 침탈했다. 188년 진창을 공격했으나 황보숭에게 패배하여 만여 명이 참수당하고 자신은 도주 중 사망했다. 이후 한수 세력은 왕국을 폐하고 염충을 내세웠으나 내부 분열로 멸망했다.

왕국 (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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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87년(중평 4년), 왕국은 양주에서 난을 일으켰다. 이후 세력을 확장하여 합중장군을 자칭하며 삼보를 침탈하였다. 188년 11월(음력), 우부풍 진창현(陳倉縣)을 공격했으나 황보숭동탁에게 진압당했다. 189년 2월, 80여 일간의 공성전 끝에 철퇴하였고, 황보숭의 추격으로 대패하여 만여 명이 참수당하고 자신도 목숨을 잃었다.

2.1. 초기 활동과 반란의 시작

187년(중평 4년), 양주자사 경비(耿鄙)의 신임을 받던 치중(治中) 정구(程球)가 간악했으므로 왕국은 저족과 강족을 아울러 난을 일으켰다. 마침 금성의 도적 한수도 몇 년 전부터 활개를 치고 있었다. 경비는 이들을 토벌하고자 여섯 개 (郡)의 군사를 동원해 농서군 적도현(狄道縣)에 이르렀다. 반군은 양주별가(―別駕)와 내통해 정구는 물론이거니와 경비도 죽였다. 왕국은 이어서 한양군도 포위하고는 한양태수 부섭에게 전 주천태수 황연(黃衍)을 보내 “성패가 이미 알 만합니다. 먼저 일어나셔야 위로는 패왕(霸王)의 업적을 이루고 아래로는 (伊呂)의 공적을 올릴 수 있습니다. 천하에 한나라는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태수께서 저희의 스승이 되어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라며 설득하였다. 부섭은 이를 거절하고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후 경비의 사마(司馬) 마등도 반군에 합류하였고, 왕국 역시 합중장군(合眾將軍)을 자칭하며 이들과 합쳤다. 반군은 왕국을 우두머리로 추대하고 삼보(三輔)를 침탈하였다.

2.2. 세력 확장과 합중장군 자칭

187년(중평 4년), 양주자사 경비(耿鄙)의 신임을 받던 치중(治中) 정구(程球)가 간악했으므로 왕국은 저족과 강족을 아울러 난을 일으켰다. 마침 금성의 도적 한수도 몇 년 전부터 활개를 치고 있었다. 경비는 이들을 토벌하고자 여섯 개 (郡)의 군사를 동원해 농서군 적도현(狄道縣)에 이르렀다. 반군은 양주별가(―別駕)와 내통해 정구는 물론이거니와 경비도 죽였다. 왕국은 이어서 한양군도 포위하고는 한양태수 부섭에게 전 주천태수 황연(黃衍)을 보내 “성패가 이미 알 만합니다. 먼저 일어나셔야 위로는 패왕(霸王)의 업적을 이루고 아래로는 (伊呂)의 공적을 올릴 수 있습니다. 천하에 한나라는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태수께서 저희의 스승이 되어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라며 설득하였다. 부섭은 이를 거절하고 싸우다 전사하였다. 전후 경비의 사마(司馬) 마등도 반군에 합류하였고, 왕국 역시 합중장군(合眾將軍)을 자칭하며 이들과 합쳤다. 반군은 왕국을 우두머리로 추대하고 삼보(三輔)를 침탈하였다.

2.3. 진창 전투와 패배

188년 11월(음력), 왕국이 우부풍 진창현(陳倉縣)을 공격하였다. 조정은 좌장군 황보숭과 전장군 동탁에게 각각 2만 명을 주어 진창을 구원하게 했다. 황보숭은 진창이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판단하여 싸움을 걸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189년 2월, 왕국은 80여 일 동안 공성을 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군사력이 피폐해져 철수하였다. 이때 황보숭이 추격하여 왕국 군대를 대파하고 만여 명을 참수하였다. 왕국은 도주했으나 목숨을 잃었다. 이후 한수 등은 왕국을 폐하고 전 신도현령(信都―) 염충을 강제로 옹립하였으나, 염충이 병으로 세상을 뜨자 내부 분열이 일어나 서로를 죽였다.

2.4. 반란의 종말과 영향

188년 11월(음력), 왕국이 우부풍 진창현(陳倉縣)을 공격하였다. 조정은 좌장군 황보숭과 전장군 동탁에게 각각 2만 명을 주어 이를 구하게 했다. 황보숭은 진창이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판단해 싸움을 걸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189년 2월, 왕국은 80여 일 동안 공성했지만 함락시키지 못하고 피폐해져 철퇴하였다. 비로소 황보숭이 추격해왔다. 왕국은 대패하여 만여 명이 참수당하고 자신은 도주했으나 목숨을 잃었다. 한수 등은 왕국을 폐하고 전 신도현령(信都―) 염충을 강제로 내세웠다가 염충이 화병으로 세상을 뜨자 내부 분열해 서로를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