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림 (평창후)
1. 개요
왕림(王臨)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평창후(平昌侯)이다. 하평 3년(기원전 26년)에 태상(太上)에 임명되었고, 양삭 4년(기원전 21년)에 사망하여 시호를 희(釐)라 받았다. 평창후 작위는 아들 왕획(王獲)이 이었다.
왕림 (평창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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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관직 역임
기원전 26년, 태상에 임명되었다. 기원전 21년에 죽으니, 시호를 희(釐)라 하였고 평창후(平昌侯) 작위는 아들 왕획이 이었다.
2.2. 사망과 후계
왕림(王臨)은 하평 3년(기원전 26년)에 태상에 임명되었다. 양삭 4년(기원전 21년)에 죽으니, 시호를 희(釐)라 하였고 평창후(平昌侯) 작위는 아들 왕획이 이었다.
3.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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