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자하)
1. 개요
왕상(王商, ? ~ 기원전 12년)은 전한 시대의 인물로, 자는 자하(子夏)이다. 그는 하평 2년(기원전 27년)에 성도후(成都侯)에 봉해져 형제들과 함께 '오후'로 불렸으며, 왕봉의 사후 권력을 장악하고 사치를 부렸다. 이후 성제의 분노를 사 문신을 새기거나 코를 베어 사죄하려 했으나 용서받았다. 영시 원년(기원전 16년)에는 특진으로 임명되었고, 이듬해 대사마 위장군이 되었다. 영시 4년(기원전 13년)에 대사마 대장군으로 승진했으나 며칠 후 사망하여 경성(景成)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아들 왕황이 작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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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의 대장군 -
한신 (회음후)
한신은 전한 초기의 군인이자 전략가로, 초한쟁란 시기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공헌했으나, 유방의 경계로 회음후로 강등된 후 모반 혐의로 여후에게 처형당했으며, 그의 삶은 토사구팽, 다다익선 등 고사성어와 관련되어 후대에 다양한 평가를 받는다. -
전한의 대장군 -
곽광
곽광은 곽거병의 이복 동생으로, 한 무제의 신임을 받아 섭정하며 어린 소제를 보좌하고 한 선제를 옹립했으며, 훌륭한 통치 능력으로 존경받았으나 독재적인 통치 스타일과 족벌주의로 비판받기도 한다. -
전한의 대사마 -
곽거병
곽거병은 전한 무제 시대 흉노 정벌에 큰 공을 세운 명장으로, 젊은 나이에 표기장군과 대사마에 오르며 군사적 재능을 인정받았으나 24세에 병사했으며, 그의 묘는 흉노를 짓밟는 말의 석상으로 유명하다. -
전한의 대사마 -
장안세
장안세는 전한 시대 장탕의 임자로 관직에 올라 무제, 소제, 선제를 섬기며 곽광의 신임을 받아 부평후에 봉해지고 사후 경이라는 시호를 받은 관료이다. -
기원전 12년 사망 -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는 아우구스투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악티움 해전 승리를 이끌고 로마의 공공시설 개선에 기여한 고대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이다. -
기원전 12년 사망 -
신경기
신경기는 전한 시대 파강장군 신무현의 아들로, 음서로 관직에 올라 낭중거기장, 장액태수, 주천태수 등을 거쳐 우장군과 좌장군에 이르렀으나 왕망 정권과의 불화로 몰락한 인물이다.
2. 생애
영시 원년(기원전 16년), 왕담이 죽자 성제는 왕담이 생전에 정사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불쌍히 여겨 왕상에게 특진을 부여하고 부서를 열게 하였다. 이듬해에 왕음이 죽은 후 대사마위장군이 되었다.
영시 4년(기원전 13년), 병으로 물러났다가 이듬해에 복직하였고, 대사마대장군으로 승진하였으나 며칠 후 죽었다. 시호를 경성(景成)이라 하였고, 아들 왕황이 작위를 이었다.
2.1. 권력 장악과 사치
하평 2년(기원전 27년), 관내후 왕상은 성도후(成都侯)에 봉해져, 형제 왕담, 왕립, 왕근, 왕봉시와 함께 열후의 반열에 올라 오후(五侯)라고 불렸다. 왕봉이 권력을 장악한 와중에 형제들과 사치를 즐겼고, 천자의 제도를 따라하기까지 하였다.
왕봉이 죽고 사촌 왕음이 뒤를 이었다. 성제는 왕상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가 성벽에 굴을 파서 집으로 물을 끌어다 쓰는 것을 알게 되었고, 왕근이 천자의 궁전을 본뜬 정원을 지은 것도 알게 되어 격노하였다. 왕상과 왕근은 스스로 문신을 새기거나 코를 베어 왕태후에게 사죄하려 하였지만, 성제는 이 사실을 알고 더욱 노하여 둘을 죽이려 하였다. 왕상과 왕근은 도끼를 메고 성제에게 사죄하였고, 성제는 둘을 용서하였다.
2.2. 왕음과의 갈등, 그리고 몰락
하평 2년(기원전 27년), 관내후 왕상은 성도후(成都侯)에 봉해져 형제 왕담, 왕립, 왕근, 왕봉시와 함께 열후의 반열에 올라, 오후(五侯)라고 불렸다. 왕봉이 권력을 장악한 와중에 형제들과 사치를 즐겼고, 천자의 제도를 따라하기까지 하였다.
왕봉이 죽고 사촌 왕음이 뒤를 이었다. 성제는 왕상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가 성벽에 굴을 파서 집으로 물을 끌어다 쓰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왕근이 천자의 궁전을 본뜬 정원을 지은 것도 알게 되어 격노하였다. 왕상과 왕근은 스스로 문신을 새기거나 코를 베어 왕태후에게 사죄하려 하였지만, 그것 또한 알게 된 성제는 더욱 노하였고, 둘을 죽이려 하였다. 왕상과 왕근은 도끼를 메고 성제에게 사죄하였고, 성제는 둘을 용서하였다.
영시 원년(기원전 16년), 왕담이 죽었다. 성제는 왕담이 생전에 정사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불쌍히 여겨 왕상에게 특진을 부여하고 부서를 열게 하였다. 이듬해에 왕음이 죽은 후 대사마위장군이 되었다.
2.3. 성제의 분노와 처벌
하평 2년(기원전 27년), 관내후 왕상은 성도후(成都侯)에 봉해짐으로써 형제 왕담, 왕립, 왕근, 왕봉시와 함께 열후의 반열에 올라, 오후(五侯)라고 불렸다. 왕봉이 권력을 장악한 와중에 형제들과 사치를 즐겼고, 천자의 제도를 따라하기까지 하였다.
왕봉이 죽고, 사촌 왕음이 뒤를 이었다. 성제는 왕상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가 성벽에 굴을 파서 집으로 물을 끌어다 쓰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왕근이 천자의 궁전을 본뜬 정원을 지은 것도 알게 되어 격노하였다. 왕상과 왕근은 스스로 문신을 새기거나 코를 베어 왕태후에게 사죄하려 하였지만, 그것 또한 알게 된 성제는 더욱 노하였고, 둘을 죽이려 하였다. 왕상과 왕근은 도끼를 메고 성제에게 사죄하였고, 성제는 둘을 용서하였다.
3. 평가
왕상은 하평 2년(기원전 27년) 성도후(成都侯)에 봉해져 형제 왕담, 왕립, 왕근, 왕봉시와 함께 열후의 반열에 올라, 오후(五侯)라고 불렸다. 왕봉이 권력을 장악한 와중에 형제들과 사치를 즐겼고, 천자의 제도를 따라하기까지 하였다.
왕봉이 죽고 사촌 왕음이 뒤를 이었을 때, 성제는 왕상의 집에서 성벽에 굴을 파 물을 끌어다 쓰는 것을 알고, 왕근이 천자의 궁전을 본뜬 정원을 지은 것도 알게 되어 격노하였다. 왕상과 왕근은 문신을 새기거나 코를 베어 왕태후에게 사죄하려 했지만, 성제는 더욱 노하여 둘을 죽이려 하였다. 왕상과 왕근은 도끼를 메고 성제에게 사죄하였고, 성제는 둘을 용서하였다.
영시 원년(기원전 16년), 왕담이 죽자 성제는 왕담이 생전에 정사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불쌍히 여겨 왕상에게 특진을 부여하고 부서를 열게 하였다. 이듬해에 왕음이 죽은 후 대사마위장군이 되었다.
영시 4년(기원전 13년), 병으로 물러났다가 이듬해에 복직, 대사마대장군으로 승진하였으나 며칠 후 죽었다. 시호를 경성(景成)이라 하였고, 아들 왕황이 작위를 이었다.
4. 가계
王商중국어은 전한 말 외척으로 권력을 휘두른 왕씨 가문으로, 아버지는 왕금이며 어머니는 경성장공주이다. 하평 2년(기원전 27년), 관내후 왕상은 성도열후(成都侯)에 봉해짐으로써 형제 왕담, 왕립, 왕근, 왕봉시와 함께 열후의 반열에 올라, '오후(五侯)'라고 불렸다.
5. 작위
하평 2년(기원전 27년), 관내후 왕상은 성도후(成都侯)에 봉해졌다. 이로써 형제 왕담, 왕립, 왕근, 왕봉시와 함께 열후의 반열에 올라, 오후(五侯)라고 불렸다.
영시 원년(기원전 16년), 왕담이 죽자 성제는 왕담이 생전에 정사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불쌍히 여겨 왕상에게 특진을 부여하고 부서를 열게 하였다.
영시 4년(기원전 13년), 병으로 물러났다가 이듬해에 복직하였고, 대사마대장군으로 승진하였으나 며칠 후 죽었다. 시호를 경성(景成)이라 하였고, 아들 왕황이 작위를 이었다.
6. 출전
* 반고의 한서
권18 외척은택후표
권19하 백관공경표 下
** 권98 원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