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기 (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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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기(字는 次況)는 신나라에서 후한 시기까지 활약한 인물이다. 후한 광무제 유수를 섬기며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워 안성후에 봉해졌고, 위위까지 역임했다. 경시 원년 유수가 부성을 함락시켰을 때 풍이의 천거로 유수에게 등용되었고, 등우의 휘하에서 편장군으로 활약하며 왕랑 토벌, 동마, 청독, 적미 토벌에 참여했다. 광무제 즉위 후에는 위군태수와 대장군을 겸임하며 탁경 등의 반란을 진압했다. 건무 10년에 사망했으며, 시호는 충이다.
요기는 부친상을 3년간 치르며 고향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경시 원년(23년) 유수가 부성을 함락시키자 풍이가 요기를 천거하여 유수는 요기를 적조연에 임명하고 계에서 종군하게 하였다.
[1]
서적
後漢書』巻20、銚期王霸祭遵列伝第10、銚期伝
2. 생애
경시 2년(24년), 유수가 신도에 이르렀을 때 요기는 등우의 속관이 되었다. 등우는 요기를 편장군에 임명하고 병사 2천 명을 주었다. 요기는 왕랑 토벌에 공을 세워 호아대장군이 되었고, 동마(銅馬), 청독(靑犢), 적미를 격파했다.[3]
건무 원년(25년), 광무제 즉위 후 요기는 안성후에 봉해지고 식읍 5천 호를 받았다. 단향(檀鄕)과 오루(五樓)가 위군을 침략하고 탁경(卓京)이 업성(鄴城)에서 저항하자, 요기는 위군태수 겸 대장군으로서 이들을 모두 평정하였다.[3]
건무 5년(29년), 광무제가 위군으로 행차했을 때 요기는 태중대부에 임명되었고, 이후 위위에 임명되었다. 건무 10년(34년)에 사망하여 충(忠)이라는 시호를 받았다.[3]
2. 1. 초기 생애 및 유수와의 만남
경시 원년(23년), 유수가 부성(父城)을 함락시켰다. 이때 부성을 지키다 항복한 장수 풍이가 동향인 요기를 천거하였고, 유수는 요기를 적조연(賊曹掾)에 임명하여 계(薊)에서 종군토록 하였다.
경시 2년(24년), 유수는 계를 떠나 신도에 이르렀다. 요기는 이때 등우의 속관이 되었는데, 등우는 그의 유능함을 높이 사 편장군(偏將軍)에 임명하여 병사 2천 명을 주었다. 요기는 이후 왕랑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워 호아대장군(虎牙大將軍)에 임명되었다. 또 동마(銅馬)[3]의 병사 10만 명과 교전하여 항복시켰고, 청독(靑犢)[3]·적미[3]와 교전하여 물리쳤다.
2. 2. 유수의 하북 평정과 요기의 활약
경시 원년(23년), 유수가 부성(父城)을 함락시켰다. 이때 부성을 지키다 항복한 장수 풍이가 동향인 요기를 천거하였고, 유수는 요기를 적조연(賊曹掾)에 임명하여 계(薊)에서 종군토록 하였다.[3]
경시 2년(24년), 유수는 계를 떠나 신도에 이르렀다. 요기는 이때 등우의 속관이 되었는데, 등우는 그의 유능함을 높이 사 편장군(偏將軍)에 임명하여 병사 2천 명을 주었다. 요기는 이후 왕랑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워 호아대장군(虎牙大將軍)에 임명되었다. 또 동마(銅馬)의 병사 10만 명과 교전하여 항복시켰고, 청독(靑犢)·적미와 교전하여 물리쳤다.[3]
건무 원년(25년), 광무제가 즉위하였다. 요기는 공신으로써 안성후(安成侯)에 봉해지고 식읍 5천 호를 받았다. 이때 단향(檀鄕)·오루(五樓)가 위군을 침략하였고, 또 탁경(卓京)이 위군의 호족들을 규합하여 업성(鄴城)에서 저항하였다. 위군태수에 임명되고 대장군을 겸한 요기는 탁경 등을 무찔러 난을 평정하였다.[3]
건무 5년(29년), 광무제는 위군으로 행차하였다. 요기는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임명되었고, 또 위위에 임명되었다.
2. 3. 광무제 즉위와 위군 평정
경시 원년(23년), 유수가 부성(父城)을 함락시켰을 때, 부성을 지키다 항복한 장수 풍이가 동향인 요기를 천거하였다. 유수는 요기를 적조연(賊曹掾)에 임명하여 계(薊)에서 종군토록 하였다.
경시 2년(24년), 유수는 계를 떠나 신도에 이르렀다. 요기는 이때 등우의 속관이 되었는데, 등우는 그의 유능함을 높이 사 편장군(偏將軍)에 임명하여 병사 2천 명을 주었다. 요기는 이후 왕랑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워 호아대장군(虎牙大將軍)에 임명되었다. 또 동마(銅馬)[3]의 병사 10만 명과 교전하여 항복시켰고, 청독(靑犢)[3]·적미[3]와 교전하여 물리쳤다.
건무 원년(25년), 광무제가 즉위하였다. 요기는 공신으로써 안성후(安成侯)에 봉해지고, 식읍 5천 호를 받았다. 이때 단향(檀鄕)[3]·오루(五樓)[3]가 위군을 침략하였고, 또 탁경(卓京)이 위군의 호족들을 규합하여 업성(鄴城)에서 저항하였다. 위군태수에 임명되고 대장군을 겸한 요기는 탁경 등을 무찔러 난을 평정하였다.
2. 4. 위위 역임과 죽음
건무 5년(29년), 광무제는 위군으로 행차하였다. 요기는 태중대부에 임명되었고, 낙양으로 따라가 위위에 임명되었다.[3]
건무 10년(34년)에 죽었고, 시호를 충(忠)이라 하였다.[3]
3. 인물됨과 일화
요기는 키가 8척 2촌(약 190cm)이나 되었으며, 범상치 않은 용모를 가지고 있었고, 신중하고 위엄이 있었다.
유수가 계(薊) 지역에 있었을 때, 현지 사람들이 왕랑의 격문에 호응하여 거병했다. 유수는 계를 벗어나기 위해 수레를 재촉했지만, 그를 발견한 군중에 의해 길이 막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요기는 말 위에서 창을 휘두르며 눈을 부릅뜨고 "물러서라"고 크게 소리쳐 길을 열게 했다. 이후 천하 경영에 대해 유수에게 계책을 올리자, 유수는 "이전의 '물러서라'를 하고 싶은 것이냐"고 웃으며 물었다. '물러서라(蹕)'는 천자의 호위병만이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는 어구이다. 즉 유수는, 요기의 계책에 대해 자신을 천자로 만들고 싶은 것이냐고 답한 것이다.
위군(魏郡)에서 반란을 일으킨 호족 이륙(李陸)은 요기의 부하 이웅(李熊)의 동생이었다. 처음에는 요기는 이 사실을 믿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에게 같은 말을 듣고 이웅을 불렀다. 이때 이웅은 스스로의 사형을 청했지만 요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관직에 있을지, 도적에 붙을지는 네 마음대로라고 말했다. 이웅이 이륙을 찾아내자, 이륙은 부끄러워하며 자결함으로써 요기에게 사죄했다. 요기는 슬퍼하며 이륙을 후하게 장례 지내고, 이웅을 옛 직책으로 복귀시켰다. 이로 인해 위군에서 요기의 인망이 높아졌다.
"신의를 중시하고, 항복한 성을 약탈하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나라를 걱정하고 주군을 사랑하며, 간언을 숭상했다"고 평가받는다. 가벼운 차림으로 몰래 행차하려던 광무제에게, 수레 앞에서 "고금의 경계로, 사물의 변화는 뜻밖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자주 몰래 행차하지 마시옵소서"라고 간언하여 외출을 막은 적이 있었다.
광무제의 명을 받아 괴효에게 재물을 보내주려 했을 때, 도중에 도난당한 적이 있다. 괴효로부터 광무제에게 오는 사자 또한 그 원수에게 참수당하고 하사품을 빼앗기자, 요기는 이것을 상대(괴효)와의 사이가 잘 풀리지 않는 운명이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참조
[2]
서적
後漢書』巻20、銚期王霸祭遵列伝第10、銚期伝
[3]
문서
농민 반란군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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