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 을
1. 개요
용산구 을은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용산구 선거구가 분구되면서 신설되었다가, 1963년 대한민국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용산구 갑 선거구와 통합되어 폐지된 대한민국의 옛 국회의원 선거구이다.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남송학이 당선되었으며, 이후 황성수, 김원만이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역대 선거 결과는 대한국민당, 자유당, 민주당 후보들이 당선되었으며, 민주당이 2회 당선으로 가장 많은 당선 횟수를 기록했다.
| 이름 | 용산구 을 |
|---|---|
| 의회 | 국회 |
| 큰 지도 | 서울특별시 |
| 연도 | 1950 |
| 폐지 | 1963 |
| 유형 | 국회 |
| 이전 선거구 | 용산구 |
| 이후 선거구 | 용산구 |
| 의원수 | 1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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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의 정치 -
용산구 (1988년 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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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의 정치 -
용산구 갑
용산구 갑은 제2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용산구에서 분리 신설되어 제5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존속하다가 용산구 을과 통합 폐지된 선거구로, 장면이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사례가 있다. -
서울특별시의 폐지된 선거구 -
중구 (1988년 서울 선거구)
중구 (1988년 서울 선거구)는 1988년 제13대 총선을 앞두고 종로구·중구 선거구에서 분리되어 신설된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의 국회의원 선거구였으나, 2016년 인구 감소로 성동구 갑·을 선거구와 통합되어 중구·성동구 을 선거구로 개편되었다. -
서울특별시의 폐지된 선거구 -
노원구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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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폐지된 대한민국 선거구 -
단양군 (선거구)
단양군 선거구는 1948년 신설되어 1963년 제천군과 통합 폐지될 때까지 5번의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으며, 조종승, 장영근, 조종호 등이 당선되었다. -
1963년 폐지된 대한민국 선거구 -
고창군 갑
고창군 갑은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신설되어 고창군 지역을 관할했으며, 1963년 선거구 통합으로 폐지되었고 김영동, 김수학, 정세환, 류진 등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2.1. 설치 배경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용산구 선거구가 갑, 을로 분구되면서 용산구 을 선거구가 신설되었다. 이는 당시 인구 증가 등의 요인으로 서울 지역 선거구 조정의 일환이었다.
2.2. 폐지 과정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용산구 갑과 용산구 을 선거구가 통합되면서 폐지되었다.
4. 역대 선거 결과
용산구 을에서는 제2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제5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국회의원을 선출했다. 제2대 선거에서는 대한국민당 남송학 후보가, 제3대 선거에서는 자유당 황성수 후보가, 제4대 선거와 제5대 선거에서는 민주당 김원만 후보가 당선되었다.
4.1. 제2대 국회의원 선거 (1950년)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한국민당 남송학 후보가 당선되었다. 당시 대한국민당 김성주 후보, 무소속 명제세 후보 등도 출마했는데, 당시 정치 상황으로 인해 무소속 및 군소 정당 후보들이 난립하였다.
4.3. 제4대 국회의원 선거 (1958년)
1958년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김원만 후보가 당선되었다. 자유당 황성수 후보는 재선을 노렸으나 실패했다. 이 선거는 4.19 혁명 직전에 치러진 선거로, 야당인 민주당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4.4. 제5대 국회의원 선거 (1960년)
4.19 혁명 이후 치러진 대한민국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김원만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