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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레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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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진레이온은 1964년 설립된 흥한화학섬유 공장에서 시작하여, 세진레이온을 거쳐 1976년 원진레이온으로 사명을 변경한 섬유 회사이다. 이황화탄소 중독 사고와 부실한 산업재해 관리로 인해 1993년 폐업했으며, 노동자들의 직업병 투쟁을 통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원진산업재해자협회와 원진재단이 설립되었고, 원진녹색병원을 운영하며 직업병 환자들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2. 연혁

1964년 박흥식일본 동양레이온의 중고 기계를 들여와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도농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에 흥한화학섬유 공장을 착공했다.[1] 1966년 흥한화학섬유 공장이 준공되었다.[1] 1968년 한국산업은행의 법정관리에 들어갔다.[4] 1972년 동선화학(東鮮化學)에 인수되어 흥한화학섬유에서 세진레이온(世進-)으로 사명을 변경했다.[2] 1976년 원진산업(源進産業)에 인수되어 세진레이온에서 원진레이온으로 사명을 변경했다.[3] 1979년 다시 한국산업은행의 법정관리에 들어갔다.[4] 1988년 7월 22일 이황화탄소 중독자 12명이 발생했으며,[5] 같은 해 8월 3일 직업병 치료를 거부한 원진레이온 회사 대표가 입건되었다.[6] 1993년 7월 10일 폐업했다.[7]

3. 이황화탄소 중독과 직업병

원진레이온에서 가장 유해한 부서로 꼽히는 방사과 노동자들은 월정규 근로시간 200시간 동안과 그 외에 평균 120시간씩의 초과 노동시간 동안에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이황화탄소와 황화수소 가스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이 되어 있었다. 이들은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인해 팔, 다리마비와 언어장애, 기억력 감퇴, 정신이상, 불능, 콩팥기능 장애 등의 증상으로 고생을 하였다.

노동부는 이황화탄소가 허용기준치의 2.6배, 유화수소가 1.3배가 검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진레이온 회사 측에 25,000 시간 무재해 기록증을 발급하는 등의 산업재해에 대한 감시와 감독을 겉치레 형식으로 하였다. 노동부 측은 회사가 전담 보건관리사를 배치하였다고 허위 보고했으며 유기용제인 이황화탄소, 유화수소의 취급 부서 노동자에 대한 특수 건강진단을 실시하지 않는 등의 산업안전보건법 9개 항목을 위반하였다고 발표했다.

1977년 입사하여 원액2과에서 7년간 근무하고 1983년 퇴사한 김봉환은 1990년 10월 30일 초진으로 이황화탄소 중독판정을 받고 회사에 산재요양신청을 냈으나 거부당했다. 1991년 1월 5일 김봉환은 이황화탄소 중독증상인 뇌혈관질환으로 사망하였다.[8] 원진직업병피해노동자협의회 (이하 원노협)는 이황화탄소 중독 여부를 검진 받지 못하고 사망한 데에 대한 책임을 물어 사업주를 처벌하고 부검 담당 검사에게 의뢰하여 원진직업병으로 인한 사망 여부를 판정해 줄 것을 노동부 측에 요구하였다. 그러나 병리학 검사를 의뢰받은 고려대학교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회사와 사측 추천 의사들의 무성의로 사건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였다. 유족과 원노협 회원들은 영결식을 위한 회사 출입을 봉쇄당하여 회사 정문 앞에서 시신투쟁을 벌이고 평일에는 대책위와 조합원을 중심으로 주말에는 수도권의 노동자와 사회단체, 학생들의 지지와 지원으로 연대집회를 열어 거리정치투쟁을 하였다. 연일 계속되는 언론보도와 거리투쟁으로 발전한 조합원들의 열기가 정치권이 움직이게 했고 마침내 5월 21일 노동부와 회사를 굴복시켰다. 137일간의 긴 투쟁은 이황화탄소에 대한 업무상 재해인정기준안을 만들고 퇴직직업병 판정자 평균임금 산정방법의 개정을 통한 특례적용이라는 성과를 이루었다.

3. 1. 직업병의 발생

원진레이온에서 가장 유해한 부서로 꼽히는 방사과 노동자들은 월정규 근로시간 200시간 외에 평균 120시간씩의 초과 노동을 했다. 이들은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이황화탄소와 황화수소 가스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팔, 다리 마비와 언어 장애, 기억력 감퇴, 정신 이상, 불능, 콩팥 기능 장애 등의 이황화탄소 중독 증상으로 고생하였다.

3. 2. 직업병의 원인

노동부는 이황화탄소가 허용기준치의 2.6배, 유화수소가 1.3배가 검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진레이온 회사 측에 25,000 시간 무재해 기록증을 발급하는 등 산업재해에 대한 감시와 감독을 겉치레 형식으로 하였다. 노동부 측은 회사가 전담 보건관리사를 배치하였다고 허위 보고했으며 유기용제인 이황화탄소, 유화수소의 취급 부서 노동자에 대한 특수 건강진단을 실시하지 않는 등 산업안전보건법 9개 항목을 위반하였다고 발표했다.

3. 3. 김봉환 사건

1977년 입사하여 원액2과에서 7년간 근무하고 1983년 퇴사한 김봉환은 1990년 10월 30일 초진으로 이황화탄소 중독판정을 받고 회사에 산재요양신청을 냈으나 거부당했다. 1991년 1월 5일 김봉환은 이황화탄소 중독증상인 뇌혈관질환으로 사망하였다.[8] 원진직업병피해노동자협의회 (이하 원노협)는 이황화탄소 중독 여부를 검진 받지 못하고 사망한 데에 대한 책임을 물어 사업주를 처벌하고 부검 담당 검사에게 의뢰하여 원진직업병으로 인한 사망 여부를 판정해 줄 것을 노동부 측에 요구하였다. 그러나 병리학 검사를 의뢰받은 고려대학교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회사와 사측 추천 의사들의 무성의로 사건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였다. 유족과 원노협 회원들은 영결식을 위한 회사 출입을 봉쇄당하여 회사 정문 앞에서 시신투쟁을 벌이고 평일에는 대책위와 조합원을 중심으로 주말에는 수도권의 노동자와 사회단체, 학생들의 지지와 지원으로 연대집회를 열어 거리정치투쟁을 하였다. 연일 계속되는 언론보도와 거리투쟁으로 발전한 조합원들의 열기가 정치권이 움직이게 했고 마침내 5월 21일 노동부와 회사를 굴복시켰다. 137일간의 긴 투쟁은 이황화탄소에 대한 업무상 재해인정기준안을 만들고 퇴직직업병 판정자 평균임금 산정방법의 개정을 통한 특례적용이라는 성과를 이루었다.

4. 노동자들의 투쟁과 사회적 영향

1988년 '문송면(당시 나이 17세) 수은 중독 사망 사건'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한 단체와 직업병 피해자, 그 가족들이 7월 23일 구리노동상담소의 제안으로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 가족 협의회'(이하 원가협)를 결성하였다. 같은 시기에 공해연구소와 노동, 보건, 의료계 관계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당시 국회의원들과 함께 진상조사를 실시하였다. 원가협은 88 서울 올림픽 성화봉송로를 막아 온 세상에 원진 직업병을 알리기로 했으나 외국 언론의 보도를 염려한 노동부가 적극적인 태도를 내비춰 9월 14일 회사 측 대표와 원가협 및 대책위 대표가 모여 원진직업병 문제의 협상을 하였다. 그 결과 1989년 8월에 1차로 29명, 1993년 8월에는 257명이 직업병 판정을 받고 병상에서 고통받고 있다고 조사되었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의 여파로 그동안의 산업재해, 직업병 문제 처리가 피해자 보상 문제 차원에서 근본적인 치료와 예방 대책 수립으로 옮겨졌다. 직업병 피해 예상자들에 대한 특수 건강검진의 지속적인 실시와 직업병 전문병원 설립을 요구하는 등 전 사회적으로 산업재해와 직업병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책 수립을 촉구하였으며, 산재 추방 전선의 폭을 확대시키는 성과를 가져왔다.

4. 1. 원가협의 결성과 투쟁

1988년 '문송면(당시 나이 17세) 수은 중독 사망 사건'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한 단체와 직업병 피해자, 그 가족들이 7월 23일 구리노동상담소의 제안으로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 가족 협의회'(이하 원가협)를 결성하였다. 같은 시기에 공해연구소와 노동, 보건, 의료계 관계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당시 국회의원들과 함께 진상조사를 실시하였다. 원가협은 88 서울 올림픽 성화봉송로를 막아 온 세상에 원진 직업병을 알리기로 했으나 외국 언론의 보도를 염려한 노동부가 적극적인 태도를 내비춰 9월 14일 회사 측 대표와 원가협 및 대책위 대표가 모여 원진직업병 문제의 협상을 하였다. 그 결과 1989년 8월에 1차로 29명, 1993년 8월에는 257명이 직업병 판정을 받고 병상에서 고통받고 있다고 조사되었다.

4. 2. 사회적 여파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의 여파로 그동안의 산업재해, 직업병 문제 처리가 피해자 보상 문제 차원에서 근본적인 치료와 예방 대책 수립으로 옮겨졌다. 직업병 피해 예상자들에 대한 특수 건강검진의 지속적인 실시와 직업병 전문병원 설립을 요구하는 등 전 사회적으로 산업재해와 직업병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책 수립을 촉구하였으며, 산재 추방 전선의 폭을 확대시키는 성과를 가져왔다.

5. 관련 기구

'원진산업재해자협회'(이하 원산협)은 원진레이온 노동자 중 이황화탄소에 노출되어 국가로부터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로 판정받거나, 산재 요양 중인 환자들의 요양관리에 관한 상담, 치료, 그리고 보상업무 등을 처리하고 있다. 원산협은 1980년대 원진투쟁을 지원했던 진보적인 사회인사들과 함께 이황화탄소에 의한 직업병이 집단적으로 발견됨에 따라 직업병 환자들을 돕기 위해 1993년 11월 23일에 비영리 공익법인으로 원진재단을 설립하였다.[9]

원진재단은 원진레이온의 직업병 확정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고 직업병 환자의 자활을 지원하며 산재, 직업병의 전문적 치료와 연구를 위해 병원을 설치, 운영하고 기타 재단의 목적 달성을 위해 부대사업 또한 벌이고 있다. 원진재단의 산하에는 원진 직업병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치료하기 위해 1999년 6월 구리시에 설립한 원진노동자건강센터가 있다. 그리고 그 센터의 산하에는 원진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원진복지관 등이 있다. 이후 2003년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에 3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인 녹색병원을 개원하였다.[9]

5. 1. 원진산업재해자협회(원산협)

1993년 11월 23일에 설립된 원진산업재해자협회(원산협)는 원진레이온 노동자 중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로 판정받거나 산재 요양 중인 환자들의 요양, 치료, 보상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9] 원산협은 1980년대 원진투쟁을 지원했던 진보적인 사회인사들과 함께 직업병 환자들을 돕기 위해 비영리 공익법인 원진재단을 설립하였다.[9]

원진재단은 직업병 확정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고 직업병 환자의 자활을 지원하며, 산재, 직업병의 전문적 치료와 연구를 위해 병원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9] 1999년 6월 구리시에 설립된 원진노동자건강센터는 원진 직업병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치료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9] 산하에 원진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원진복지관 등이 있다.[9] 2003년에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에 3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인 녹색병원을 개원하였다.[9]

5. 2. 원진재단

1993년 11월 23일 원진레이온 노동자 중 이황화탄소에 노출되어 직업병 판정을 받은 환자들을 돕기 위해 비영리 공익법인으로 원진재단이 설립되었다.[9] 원진재단은 '원진산업재해자협회'(원산협)와 함께 1980년대 원진투쟁을 지원했던 진보적인 사회인사들이 주축이 되었다. 원산협은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들의 요양, 치료, 보상업무 등을 처리하고 있다.[9]

원진재단은 원진레이온 직업병 확정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고 직업병 환자의 자활을 지원한다. 또한, 산재, 직업병의 전문적 치료와 연구를 위해 병원을 설치, 운영하고 기타 재단의 목적 달성을 위한 부대사업도 진행하고 있다.[9] 1999년 6월에는 구리시에 원진 직업병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치료하기 위한 원진노동자건강센터를 설립하였다. 이 센터 산하에는 원진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원진복지관 등이 있다. 2003년에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에 3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인 녹색병원을 개원하였다.[9]

5. 3. 원진노동자건강센터와 녹색병원

1993년 11월 23일 '원진산업재해자협회'(원산협)은 원진레이온 노동자 중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들의 요양관리, 치료, 보상업무 등을 처리하기 위해 비영리 공익법인 원진재단을 설립하였다.[9] 원산협은 1980년대 원진투쟁을 지원했던 진보적인 사회인사들과 함께 이황화탄소에 의한 직업병이 집단적으로 발견됨에 따라 직업병 환자들을 돕기위해 노력했다.[9]

원진재단은 원진레이온의 직업병 확정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고 직업병 환자의 자활을 지원하며 산재, 직업병의 전문적 치료와 연구를 위해 병원을 설치, 운영하고 기타 재단의 목적 달성을 위해 부대사업 또한 벌이고 있다.[9] 1999년 6월 구리시에 원진 직업병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치료하기 위해 원진노동자건강센터를 설립하였다.[9] 2003년에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에 3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인 녹색병원을 개원하였다.[9] 센터 산하에는 원진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원진복지관 등이 있다.[9]

참조

[1] 뉴스 『비스코스』人絹糸 千二百萬封度生産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64-06-30
[2] 뉴스 世進레이온비스 코스 SF工場 신설 http://newslibrary.n[...] 매일경제 1973-12-28
[3] 뉴스 弄談이 眞談으로┈世進레이온,源進에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76-12-04
[4] 뉴스 源進레이온 法定관리결정 http://newslibrary.n[...] 매일경제 1979-10-01
[5] 뉴스 원진레이온,이황화탄소 중독자 12명 발생 유해환경 놔두고 산재환자 강제 퇴사 http://newslibrary.n[...] 한겨례 1988-07-22
[6] 뉴스 노동부, 직업병 치료 거부 원진레이온회사 대표 입건 https://imnews.imbc.[...] MBC뉴스데스크 1988-08-03
[7] 뉴스 정부, 직업병과 만성 적자 시달린 원진레이온 폐쇄 https://imnews.imbc.[...] MBC뉴스데스크 1993-06-08
[8] 뉴스 이황화 탄소 중독증 퇴직 근로자 숨져 https://n.news.naver[...] 연합뉴스 1991-01-07
[9] 뉴스 노동자 눈물로 여는 녹색병원 https://n.news.naver[...] 한겨레 200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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