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크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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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윌리엄 크룩스는 1832년 런던에서 태어난 영국의 과학자이다. 그는 탈륨을 발견하고 크룩스관을 발명하여 음극선 연구에 기여했으며, 복사계와 신타리 스코프를 개발했다. 또한, 1898년 영국 과학 진흥 협회 회장 연설에서 질소 비료 부족으로 인한 식량 위기를 경고하여 하버-보슈 공정 개발에 영향을 주었다. 한편 심령 현상 연구에 몰두하여 심령 연구 협회 창립에 참여했으나, 영매 현상에 대한 맹신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윌리엄 크룩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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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의 크룩스
이름윌리엄 크룩스
작위경(Sir)
수훈메리트 훈장(OM), 왕립학회(FRS)
출생과 사망
출생1832년 6월 17일, 런던, 잉글랜드
사망1919년 4월 4일, 런던, 잉글랜드
학력
모교왕립 화학 대학
분야물리화학
업적
주요 업적탈륨 발견
크룩스 방사기
크룩스 관
보석 조사
헬륨
플라스마
섬광체
스핀타리스코프
경력
근무 기관체스터 교구 훈련 대학
수상
수상 내역로열 메달(1875년)
데이비 메달(1888년)
앨버트 메달(1899년)
코플리 메달(1904년)
엘리엇 크레슨 메달(1912년)
가족
배우자엘렌 험프리 (1856년 결혼)
자녀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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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런던 출생으로 왕립 전문 학교에서 화학을 배우고, 옥스퍼드대학의 래드클리프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체스터 트레이닝 칼리지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1859년 《Chemical News》를 발간하고 자택에 연구소를 설치, 각종 실험을 실시했다.

1861년 탈륨을 발견하고, 그 원자량을 정했다. 또한 복사에너지의 크기를 측정하는 장치인 복사계를 발명했다. 1870년대에는 음극선의 움직임을 연구하려고 진공관을 만들었는데, 윌리엄 크룩스의 이름을 따서 크룩스관이라 명명되었다. 크룩스관은 오늘날 전자장치에 쓰이는 음극선관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때는 심령 현상 연구에 몰두하였고, 만년에는 인공 다이아몬드 제조에 열중하기도 하였다.

1898년 영국 과학 진흥 협회의 회장으로 취임하며 한 연설에서 1930년대에 식량 위기가 올 것이며, 그 이유는 천연자원에서 얻을 수 있는 질소 비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화학자들에게 대기 중 질소(약 80%)로 비료를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할 것을 촉구했다. 기근에 대한 그의 발언은 신문에 널리 퍼졌으며, 그의 촉구에 부응하여 20세기 초반에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카를 보슈는 하버-보슈 공정을 개발하여 질소 비료 생산 기술을 개발했고, 인류는 대기근의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크룩스의 삶은 67년간 끊임없이 이어진 과학 활동의 연속이었다. 그는 근면함과 지적 능력으로 주목받았고, 화학 및 물리학 실험은 독창적인 설계로 유명했으며, "뛰어난 실험가"로 여겨진다. 순수 및 응용 과학, 경제 및 실용적인 문제, 그리고 심령 연구에 이르기까지 그의 관심사는 그를 유명 인사로 만들었고 상당한 수입을 얻게 해주었다. 그는 많은 공적 및 학술적 영예를 받았다.

2.1. 초기 생애

1832년 런던에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848년, 16세의 나이에 유기화학을 공부하기 위해 왕립화학대학(현재 임페리얼 칼리지 화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아우구스트 빌헬름 폰 호프만(August Wilhelm von Hofmann)의 조수로 일했다.

1856년 4월, 크룩스는 달링턴 출신 윌리엄 험프리의 딸 엘렌과 결혼했다. 윌리엄과 엘렌 크룩스는 슬하에 6남 3녀를 두었다.

1859년, 과학 잡지 화학 뉴스(Chemical News)를 창간하여 편집장을 역임했다.

2.2. 과학 연구

1861년 분광학 연구를 통해 탈륨을 발견하고, 그 원자량을 측정했다. 화염 분광법을 이용하여 스펙트럼에서 밝은 녹색 방출선을 가진 탈륨을 발견했으며, "녹색 새싹이나 가지"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θαλλός그리스어, [[thallusel-Latn에서 유래한 탈륨(Thalliu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클로드 오귀스트 라미도 1862년에 독자적으로 탈륨을 발견했다.

1875년크룩스관을 발명하여 음극선 연구에 기여했고, 이는 J. J. 톰슨의 전자 발견으로 이어졌다. 크룩스관 실험 중 X선을 발견할 기회를 놓쳤지만, 빌헬름 뢴트겐의 X선 발견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1870년대에는 음극선의 움직임을 연구하려고 진공관을 만들었는데, 윌리엄 크룩스의 이름을 따서 크룩스관이라 명명되었다. 크룩스는 크룩스관을 개발하여 음극선을 연구했다. 저압 기체에서의 전기 전도성에 대한 연구에서 그는 압력이 낮아짐에 따라 음극(cathode)이 광선(소위 "음극선", 현재는 자유 전자의 흐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브라운관에 사용됨)을 방출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크룩스는 음극선의 성질을 조사하여 그것들이 직선으로 이동하고, 일부 물질에 닿으면 형광을 일으키며, 그 충격으로 큰 열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복사 물질"이라고 부르는 물질의 네 번째 상태를 발견했다고 믿었지만, "복사 물질"의 본질에 대한 그의 이론적 견해는 뒤집히게 되었다. J. J. 톰슨이 음극선(음의 전자의 흐름으로 구성됨)의 원자보다 작은 본질을 설명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에서 크룩스의 실험적 연구는 결국 화학과 물리학 전체를 바꾼 발견의 기초가 되었다.

복사계를 발명하여 복사에너지의 크기를 측정했다. 신타리 스코프를 고안하여 핵 방사능 연구에 기여했다. 저압 기체에서의 전기 전도성 연구를 통해 플라스마를 물질의 네 번째 상태로 확인했다.

1913년, 세륨을 함유하고 있지만 약간만 색이 칠해진 유리로 만든 자외선 차단 렌즈를 만들었다. 이것은 유리 작업자를 백내장으로부터 보호하는 렌즈 유리 제형을 찾기 위한 크룩스의 연구의 의도하지 않은 부산물이었다.

2.3. 심령 현상 연구

1860년대 후반부터 심령 현상 연구에 몰두하여 심령 연구 협회(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창립에 참여하고 1890년대에 회장을 역임했다. 크룩스는 다니엘 덩글러스 홈, 플로렌스 쿡 등 유명 영매들을 연구했다. 그는 영매들이 진정한 초자연적 현상을 일으키고 영혼과 교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1871년, "영매의 왕자"로 불리던 다니엘 덩글러스 홈에 대해 "심령 현상에는 속임수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1872년부터는 플로렌스 쿡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여, 그녀가 일으키는 현상이 진짜라고 발표했다. 크룩스는 쿡이 에크토플라즘을 사용하여 물질화시켰다고 하는 케이티 킹()이라는 영의 맥박을 측정하거나 수십 장의 사진을 촬영했다.

크룩스와 케이티 킹
크룩스와 케이티 킹

많은 과학자들은 크룩스가 속았다고 생각했지만, 크룩스는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반론했다. 크룩스는 아내와 함께 쿡이 1904년에 사망할 때까지 그녀를 돌봤다.

그러나 심리학자 레너드 주스네와 워렌 H. 존스는 크룩스가 사기 영매들을 진짜라고 옹호했기 때문에 속기 쉬운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클로드는 크룩스의 시력이 좋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윌리엄 램지의 말을 인용하여 "크룩스는 시력이 너무 나빠서, 의심할 여지 없는 정직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았다고 말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안나 에바 페이는 1875년 2월 런던에 있는 크룩스의 집에서 실험을 통해 크룩스가 그녀에게 진정한 초능력이 있다고 믿게 만들었으나, 나중에 자신의 사기를 자백하고 사용했던 속임수를 밝혔다. 1916년, 윌리엄 홉은 크룩스의 아내의 가짜 영혼 사진으로 크룩스를 속였다. 올리버 로지는 이중 노출의 명백한 징후가 있었고, 레이디 크룩스의 사진은 결혼 기념 사진에서 복사되었다는 것을 밝혔지만, 크룩스는 확신하는 영매주의자였으며 그것이 영혼 사진에 대한 진정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2.4. 질소 고정과 식량 위기 경고

크룩스는 1898년 영국 과학 진흥 협회 회장 취임 연설에서 1930년대에 식량 위기가 닥칠 것이며, 그 이유는 천연자원에서 얻을 수 있는 질소 비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화학자들에게 대기 중의 엄청난 양의 질소(약 80%)를 이용해 비료를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할 것을 촉구했다. 기근에 대한 그의 발언은 신문에 널리 보도되었고, 책으로도 출판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에 20세기 초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카를 보슈는 하버-보슈 공정을 개발하여 질소 비료 생산 기술을 개발했고, 인류는 대기근의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2.5. 말년

1897년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서임받았다. 1910년 메리트 훈장(OM)을 받았다. 1913년 왕립학회 회장에 취임했다. 1919년 런던에서 사망했다.

3. 서훈 및 수상

* 1875년 로열 메달
* 1888년 데이비 메달
* 1897년 기사작위(Knight Bachelor) 서임
* 1899년 앨버트 메달
* 1904년 코플리 메달
* 1910년 메리트 훈장(OM)
* 1912년 엘리엇 크레슨 메달

4. 평가 및 영향

윌리엄 크룩스는 분광 분석 방법을 통해 1861년 탈륨을 발견했으며, 크룩스관을 개발하여 음극선을 연구했다. 이는 전자 발견과 브라운관 개발로 이어져 현대 전자 기술의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신타리 스코프를 고안하여 핵 방사능 연구에 기여했다.

크룩스는 1898년 영국 과학 진흥 협회 회장 취임 연설에서 1930년대에 질소 비료 부족으로 인한 식량 위기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화학자들에게 대기 중 질소를 이용한 비료 생산 방법을 개발할 것을 촉구했고, 이는 프리츠 하버칼 보쉬의 하버-보슈 공정 개발로 이어져 인류를 기근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러나 크룩스는 심령 연구에도 깊이 관여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는 영매 플로렌스 쿡이 일으킨 현상이 진짜라고 주장했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그가 속았다고 생각했다. 특히 플로렌스 쿡과의 관계는 그의 명성에 흠집을 남겼다는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