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기 (양성희후)
1. 개요
유경기(陽城釐侯)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초원 원년에 아버지 유안민의 뒤를 이어 양성후에 봉해졌다. 종정과 태상을 역임했으며, 시호는 희(釐)이다. 아들 유잠이 작위를 이었으며, 《한서》 기록과 백관공경표의 기록이 사망 시기에 대해 상충되는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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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6년 사망 -
임천추
임천추는 전한 시대에 춘추에 밝아 제자들을 가르치고 박사와 중대부에 이르렀으며, 그의 이야기는 한서에 기록되어 전해지는 유학자이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
전한의 종실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전한의 종실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2. 생애
초원 원년(기원전 48년), 아버지 유안민의 뒤를 이어 양성후(陽城侯)에 봉해졌다. 이후 종정과 태상 관직을 지냈다.
시호는 희(釐)이며, 아들 유잠이 작위를 계승하였다. 사망 시점에 대해서는 기록 간 차이가 있는데, 《한서》 은택후표에는 기원전 28년에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같은 책의 백관공경표에는 기원전 26년에 병으로 면직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서로 상충된다.
2.1. 가계와 초기 생애
초원 원년(기원전 48년), 아버지 유안민의 뒤를 이어 양성후(陽城侯)에 봉해졌다. 이후 종정·태상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희(釐)이며, 아들 유잠이 작위를 이었다. 《한서》의 은택후표 기록에 따르면 양성희후 21년(기원전 28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같은 책의 백관공경표에는 하평 3년(기원전 26년)에 유경기가 병으로 면직되고 왕함이 후임 태상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사망 시점에 대한 기록이 서로 충돌한다.
2.2. 관직 생활
초원 원년(기원전 48년), 아버지 유안민의 뒤를 이어 양성후(陽城侯)에 봉해졌다. 이후 종정과 태상 관직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희(釐)이며, 아들 유잠이 작위를 계승하였다. 유경기의 사망 시기에 대해서는 기록 간 차이가 있다. 《한서》 은택후표에는 양성희후 21년인 기원전 28년에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백관공경표에는 하평 3년인 기원전 26년에 유경기가 병으로 면직되고 왕함이 후임 태상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서로 상충된다.
2.3. 사망과 계승
시호를 희(釐)라 하였고, 아들 유잠이 작위를 이었다.
《한서》 은택후표에서는 양성희후 21년(기원전 28년)에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한서》 백관공경표에는 하평 3년(기원전 26년)에 유경기가 병으로 면직되고 왕함이 후임 태상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사망 시점에 대한 기록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3. 평가
(내용 없음)
4. 출전
* 반고, 《한서》
권18 외척은택후표
권19하 백관공경표 下
** 권36 초원왕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