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공 (경양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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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공(경양후)은 전한 성제 시대에 경양후에 봉해진 인물이다. 건시 2년(기원전 31년)에 경양후가 되었으며, 39년간 재위했다. 기원후 9년 왕망이 신나라를 건국하면서 작위를 잃었다. 유공에 대한 기록은 반고의 한서 권15하 왕자후표 하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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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내용 없음)

2.1. 경양후 즉위

건시 2년(기원전 31년), 경양후(頃陽侯)에 봉해졌다.

2.2. 작위 박탈

경양후로 봉해진 지 39년째인 기원후 9년, 작위를 박탈당했다. 이 해는 왕망이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건국한 시기로, 왕망은 전한 황실과 관련된 제후들의 작위를 박탈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는 기존 세력을 정리하고 새로운 통치 체제를 확립하려는 왕망의 의도가 반영된 조치로 해석된다.

3. 가계

교동경왕 유음의 아들이며, 전한 황실의 일원이다.

4. 출전

* 반고, 《한서》 권15하 왕자후표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