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 (신향후)
1. 개요
유동은 전한 선제의 아들 청하강왕 유의의 후손으로, 신향후 유표의 손자이자 신향양후 유존의 아들이다. 유존의 뒤를 이어 신향후에 봉해졌으며, 원시 원년(1년) 왕망의 섭정을 지지하는 상소를 올렸다. 신나라 건국 후 왕망으로부터 왕씨 성을 하사받았으나, 전한이 멸망하면서 봉국 또한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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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劉東중국어은 전한의 제후로, 청하강왕의 아들 유표의 손자이다.
| 전한의 제후 (新鄕侯중국어) | ||
|---|---|---|
| 대수 | 이름 | 재위 기간 |
| 1 | 신향양후 유존 | ? ~ ? |
| 2 | 신향후 유동 | ? ~ 8년 |
* 아버지 유존의 뒤를 이어 신향후에 봉해졌다.
* 원시 원년(1년), 왕망이 섭정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신나라 건국 후, 왕망은 유동에게 왕씨 성을 내렸다.
2.1. 전한 시대
아버지 유존의 뒤를 이어 신향후에 봉해졌다.
원시 원년(1년), 유동은 왕망이 섭정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신나라 건국 후, 왕망은 유동에게 왕씨 성을 내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