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순
1. 개요
유봉순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당 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4.19 혁명 이후 제5, 7, 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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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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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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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출생 -
에드먼드 힐러리
에드먼드 힐러리는 1953년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등정하고, 남극과 북극을 모두 정복했으며, 히말라야 지역 셰르파족을 위한 자선 활동에도 헌신한 뉴질랜드의 등반가, 탐험가, 자선가이다. -
1919년 출생 -
피에르 트뤼도
캐나다의 제15대 총리인 피에르 트뤼도는 자유당 소속으로 하원의원을 거쳐 법무장관을 역임하며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했고, 총리 재임 시절에는 외교 정책을 펼치고 헌법 개정을 통해 캐나다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했으며, 그의 장남 쥐스탱 트뤼도 또한 캐나다의 총리를 역임했다. -
경상남도의 국회의원 -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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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의 국회의원 -
허영호 (정치인)
허영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신간회 활동을 했으나, 중일전쟁 이후 친일로 전향하여 해방 후 혜화전문학교 교장과 동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했으며, 제헌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후 친일 행적이 드러나 건국훈장이 취소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2. 생애와 초기 정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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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회의원 활동 (3대, 4대)
유봉순은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와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 합천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3대 국회에서는 경상남도 지역구 의원들과 함께 활동했다. 제3대 국회의원 중 경상남도 소속 의원으로는 김지태, 이영언, 이영희, 조만종, 김법린 등이 있었다.
4대 국회에서도 경상남도 지역구 의원으로 활동했다. 제4대 국회의원 중 경상남도 소속 의원으로는 김응주, 이만우, 박찬현, 최천 등이 있었다.
3.1. 제3대 국회의원 선거 (1954년)
1954년 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봉순은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합천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42.55%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 선거명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선 여부 | 비고 |
|---|---|---|---|---|---|---|
| 제3대 총선 | 무소속 | 12,691표 | 42.55 | 1위 | 당선 | 초선 |
3.2. 제4대 국회의원 선거 (1958년)
유봉순은 1958년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경남 합천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69.53%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4. 4.19 혁명 이후의 정치 역정
4.19 혁명 이후 유봉순은 자유당 소속으로 제5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이후 제7대 총선, 제9대 총선에도 출마했으나 낙선하는 등 정치적 시련을 겪었다.
4.1. 제5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1960년)
4.19 혁명 직후 1960년에 치러진 제5대 총선에서 유봉순은 자유당 소속으로 경남 합천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4,548표(12.86%)를 얻어 3위에 그쳤다. 이는 4.19 혁명으로 인해 자유당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극심했던 당시 정치 상황을 반영한다.
4.2. 제7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1967년)
1967년 대한민국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봉순은 자유당 전국구 5번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당시 자유당은 3.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