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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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봉순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당 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4.19 혁명 이후 제5, 7, 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유봉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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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와 초기 정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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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회의원 활동 (3대, 4대)

유봉순은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와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 합천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3대 국회에서는 경상남도 지역구 의원들과 함께 활동했다. 제3대 국회의원 중 경상남도 소속 의원으로는 김지태, 이영언, 이영희, 조만종, 김법린 등이 있었다.

4대 국회에서도 경상남도 지역구 의원으로 활동했다. 제4대 국회의원 중 경상남도 소속 의원으로는 김응주, 이만우, 박찬현, 최천 등이 있었다.

3.1. 제3대 국회의원 선거 (1954년)

1954년 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봉순은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합천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42.55%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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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명정당득표수득표율(%)순위당선 여부비고
제3대 총선무소속12,691표42.551위당선초선

3.2. 제4대 국회의원 선거 (1958년)

유봉순은 1958년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경남 합천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69.53%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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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대수직함선거구정당득표수득표율순위당락비고
1958년 총선4대국회의원경남 합천군 갑자유당23,770표69.53%1위당선재선

4. 4.19 혁명 이후의 정치 역정

4.19 혁명 이후 유봉순은 자유당 소속으로 제5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이후 제7대 총선, 제9대 총선에도 출마했으나 낙선하는 등 정치적 시련을 겪었다.

4.1. 제5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1960년)

4.19 혁명 직후 1960년에 치러진 제5대 총선에서 유봉순은 자유당 소속으로 경남 합천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4,548표(12.86%)를 얻어 3위에 그쳤다. 이는 4.19 혁명으로 인해 자유당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극심했던 당시 정치 상황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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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명선거구소속 정당득표수 (득표율)순위당락비고
제5대 총선경남 합천군 갑자유당4,548표 (12.86%)3위낙선

4.2. 제7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1967년)

1967년 대한민국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봉순은 자유당 전국구 5번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당시 자유당은 3.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4.3. 제9대 국회의원 선거 낙선 (1973년)

1972년 10월 유신으로 유신 체제가 들어선 이후 치러진 첫 국회의원 선거였다. 유신 체제 하에서는 대통령이 국회의원 정원의 1/3을 추천하고, 국회의원은 2인 선거구에서 1인 1표제로 선출하는 등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제도들이 시행되었다. 유봉순은 이러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무소속으로 서울 서대문구에 출마하였으나, 5,251표(2.06%)를 얻어 5위로 낙선하였다.

5. 역대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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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선거 종류소속 정당득표수 (득표율)순위당락비고
1950년제2대 총선무소속4,656표 (15.14%)3위낙선
1954년제3대 총선무소속12,691표 (42.55%)1위당선초선
1958년제4대 총선자유당23,770표 (69.53%)1위당선재선
1960년제5대 총선자유당4,548표 (12.86%)3위낙선
1967년제7대 총선자유당393,448표 (3.6%)전국구 5번낙선
1973년제9대 총선무소속5,251표 (2.06%)5위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