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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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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상은 문화 류씨 가문의 의원이다. 그의 아버지 유경집은 관찰사였으며, 아들 유중림은 의술가이자 농업 서적 《증보산림경제》를 저술했다. 《청구야담》에는 유상과 관련된 두 가지 일화가 전해진다. 감꼭지탕 일화에서는 숙종의 꿈에 의해 불려가 천연두를 앓는 임금을 치료하는 내용이, 저미고 일화에서는 명성대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약재를 사용하여 임금의 병을 치료하는 내용이 묘사된다. 저서로는 《고금경험활유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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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
기본 정보
본관강릉 유씨
출생1643년
사망1723년
직업의관
저서
주요 저서고금경험활유방(古今經驗活幼方)

2. 생애

문화 류씨 23대손으로, 아버지 유경집(柳景緝han)은 관찰사를 지냈다.[2] 아들 유중림(柳重臨han) 또한 의술가였으며, 농업 서적인 증보산림경제를 저술했다.[5]

청구야담》에는 유상과 관련된 감꼭지탕(시체탕) 및 저미고 일화가 전해진다. 이 일화들은 유상의 의술 실력과 기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 감꼭지탕 일화 ====

젊은 시절 유상은 경상도 감사의 책실(책의 출판과 보관을 맡은 벼슬아치)로 따라갔다가 할 일이 없어서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어느 날 어떤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는데,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주인의 책을 허락 없이 읽다가 꾸중을 듣게 된다. 그런데 이튿날 그 주인이 유상에게 중간에서 쉬지 말고 가라고 채근하였다. 유상이 탄 나귀는 바람처럼 달려 지금의 성남 판교 부근까지 내달았다. 그곳에는 별감 십여 명이 임금 숙종의 명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숙종이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신인이 나타나 유 의원을 부르라고 했다 한다.

유상이 남대문 부근 구리개(을지로) 입구 부근을 지날 무렵 한 아낙이 마마(곧 천연두)를 앓는 아이를 업고 있었다. 유상이 물으니 아낙이 답하기를, “아이가 다 죽어가는데 한 스님이 보더니 시체탕을 쓰라 하여 그걸 먹여 살렸습니다.”라고 하였다. 유상이 간밤에 몰래 본 책에도 그것이 나온 듯하여 그대로 따랐더니 효험을 보아 임금이 나았다.

이 시체탕(柹蔕湯/枾蔕湯/柿蔕湯)은 감의 꼭지를 달여 만든 탕인데, 딸꾹질이나 설사 따위를 그치게 하는 데 쓴다.[1]

==== 저미고 일화 ====

유상이 입궐하여 숙종을 진찰하고 저미고(猪尾膏)라는 약을 처방하려 하자, 숙종의 어머니 명성대비는 약성이 강하다며 반대하였다. 명성대비가 계속 반대하자, 유상은 소매 속에 몰래 약을 숨겨 들어가 사용하였고, 숙종의 병세는 호전되어 곧 회복되었다.[1]

2. 1. 가계 및 배경

그는 문화 류씨의 23대손이었다.[3] 그의 아버지 유경집(柳景緝han)은 관찰사를 지냈다.[2] 그의 아들 유중림(柳重臨han) 또한 의술가였으며, 농업 서적인 증보산림경제를 저술했다.[5]

2. 2. 활동 및 일화

청구야담》에는 유상과 관련된 감꼭지탕(시체탕) 및 저미고 일화가 전해진다. 이 일화들은 유상의 의술 실력과 기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2. 2. 1. 감꼭지탕 일화

젊은 시절 유상은 경상도 감사의 책실(책의 출판과 보관을 맡은 벼슬아치)로 따라갔다가 할 일이 없어서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어느 날 어떤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는데,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주인의 책을 허락 없이 읽다가 꾸중을 듣게 된다. 그런데 이튿날 그 주인이 유상에게 중간에서 쉬지 말고 가라고 채근하였다. 유상이 탄 나귀는 바람처럼 달려 지금의 성남 판교 부근까지 내달았다. 그곳에는 별감 십여 명이 임금 숙종의 명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숙종이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신인이 나타나 유 의원을 부르라고 했다 한다.

유상이 남대문 부근 구리개(을지로) 입구 부근을 지날 무렵 한 아낙이 마마(곧 천연두)를 앓는 아이를 업고 있었다. 유상이 물으니 아낙이 답하기를, “아이가 다 죽어가는데 한 스님이 보더니 시체탕을 쓰라 하여 그걸 먹여 살렸습니다.”라고 하였다. 유상이 간밤에 몰래 본 책에도 그것이 나온 듯하여 그대로 따랐더니 효험을 보아 임금이 나았다.

이 시체탕(柹蔕湯/枾蔕湯/柿蔕湯)은 감의 꼭지를 달여 만든 탕인데, 딸꾹질이나 설사 따위를 그치게 하는 데 쓴다.[1]

2. 2. 2. 저미고 일화

청구야담에는 유상과 관련된 두 가지 일화가 전해진다. 그 중 하나는 저미고와 관련된 일화이다.

유상이 입궐하여 숙종을 진찰하고 저미고(猪尾膏)라는 약을 처방하려 하자, 숙종의 어머니 명성대비는 약성이 강하다며 반대하였다. 명성대비가 계속 반대하자, 유상은 소매 속에 몰래 약을 숨겨 들어가 사용하였고, 숙종의 병세는 호전되어 곧 회복되었다.[1]

3. 저서


  • 고금경험활유방

참조

[1] 논문 https://www.medhist.[...] 2021-06-12
[2] 웹사이트 http://encykorea.aks[...] 2021-06-12
[3] 논문 http://203.250.217.2[...] 2021-06-12
[4] 서적 Encyclopedia of Korean Folk Literature The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5] 웹사이트 http://encykorea.aks[...] 2021-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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