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 (창성절후)
1. 개요
유원(劉原)은 기원전 59년에 창성후(昌成侯)에 봉해졌으며, 3년 뒤인 기원전 56년에 사망했다. 그의 시호는 '절(節)'이며, 작위는 아들 유치가 이었다. 관련 기록은 반고의 《한서》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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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유원(劉元, ? ~ 기원전 56년)은 전한 시대의 황족이자 제후왕으로, 마지막 창성후이다. 교동대왕 유수의 아들이다. 기원전 59년(신작 3년)에 창성후에 봉해졌고, 기원전 56년에 사망하여 시호를 절(節)이라 하였다.
2.1. 창성후 책봉과 죽음
기원전 59년(신작 3년), 유원은 창성후(昌成侯)에 봉해졌다. 기원전 56년(창성절후 4년)에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절(節)이라 하였다. 창성후의 작위는 아들 유치가 이었다.
3.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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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출전
原중국어은 전한의 제후왕으로, 시호는 절(節)이다. 반고가 지은 《한서》 권15하 왕자후표 下에 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