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선우
1. 개요
오자선우는 흉노 내분기에 등장한 선우로, 기원전 57년 도기선우의 명령으로 우욱건왕과 함께 호한야선우를 견제하기 위해 동방에 주둔했다. 이후 세력 다툼 속에서 오자선우로 자립했으나, 도륭기에게 패배하여 호걸선우에게 의탁했다. 도기선우 멸망 후 이릉의 아들로 추대되어 다시 선우가 되었지만, 호한야선우에게 사로잡혀 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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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6년 사망 -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는 로마 공화정 시대의 귀족 출신으로, 제3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에서 뛰어난 군사적 지휘 능력을 보였으나 사치스러운 생활로 비판을 받았으며, 그의 이름에서 유래된 "lucullan"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
기원전 56년 사망 -
유원 (창성절후)
유원은 전한 선제의 아들로 창성후에 봉해졌으며, 사후 절후라는 시호를 받았고 그의 작위는 아들이 계승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참수된 사람 -
악비
남송 시대 장군 악비는 금나라에 맞선 애국 영웅으로, 진회의 모함으로 처형되었으나 사후 충절을 인정받아 무목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만강홍이라는 시와 함께 현대 중국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지만, 최근 그의 군사 행위에 대한 재평가 논의가 있다. -
참수된 사람 -
주문모
청나라 출신 가톨릭 신부 주문모는 1794년 조선에 잠입하여 선교 활동을 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였으며, 초기 조선 천주교회 성장에 기여하여 2014년 시복되었다.
2. 생애
포학한 악연구제선우를 견디지 못한 흉노인들이 전 선우의 아들 계후산을 호한야선우로 옹립했으며 악연구제선우는 패하고 자결했으나, 우현왕 등 악연구제선우의 잔당은 호한야선우의 제거 시도를 알아차리고 악연구제선우의 사촌형 도기선우를 옹립해 흉노는 내분 상태로 빠져들었다. 이때는 오자도위로서 기원전 57년, 도기선우의 명령으로 우욱건왕과 각각 2만 기병을 거느리고 동방에 주둔하며 호한야선우를 대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런데 유리당호와 호걸왕이 우현왕이 오자선우로 자립하려 한다고 참소하고 도기선우가 우현왕 부자를 죽이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도기선우의 세력은 쇠약해졌다. 호걸왕은 유리당호가 진상을 안 도기선우에게 처단돼자 달아나 호걸선우를 자칭하고, 우욱건왕도 자립하여 거리선우를 일컬으니, 오자도위 역시 오자선우를 일컬어, 흉노에는 호한야까지 총 다섯 선우가 나타나고 말았다.
오자선우는 도기선우의 중신 도륭기에게 패배해, 도기선우에게 패배한 거리선우와 함께 서북쪽의 호걸선우에게 달아났다. 그리고 호걸선우와 함께 선우 칭호를 버리고 거리선우를 선우로 추대했다. 기원전 56년, 도기선우가 패망해 거리선우가 호한야선우에게 투항했는데, 오자도위는 이릉의 아들에게 추대돼 다시 선우가 됐으나, 호한야선우에게 사로잡혀 참수됐다.
2.1. 흉노의 내분과 오자선우의 등장
악연구제선우의 포학함에 반발한 흉노인들은 전 선우의 아들 계후산을 호한야선우로 옹립했고, 악연구제선우는 패배 후 자결했다. 그러나 악연구제선우의 잔당인 우현왕 등은 도기선우를 옹립하여 흉노는 내분에 휩싸였다. 이 시기 오자도위는 기원전 57년, 도기선우의 명령으로 우욱건왕과 함께 각각 2만 기병을 이끌고 동방에 주둔하며 호한야선우를 견제했다.
이후 유리당호와 호걸왕이 우현왕이 오자선우로 자립하려 한다고 모함했고, 도기선우가 우현왕 부자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도기선우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호걸왕은 도기선우에게 처형된 유리당호의 진상을 알고 도망쳐 호걸선우로 자립했고, 우욱건왕도 자립하여 거리선우를 칭했으며, 오자도위 역시 오자선우로 자립하여 흉노에는 호한야선우를 포함해 다섯 명의 선우가 난립하게 되었다.
오자선우는 도기선우의 중신 도륭기에게 패배하여 거리선우와 함께 서북쪽의 호걸선우에게 달아났다. 이후 오자선우와 호걸선우는 선우 칭호를 버리고 거리선우를 선우로 추대했다. 기원전 56년, 도기선우가 패망하고 거리선우가 호한야선우에게 투항하자, 오자도위는 이릉의 아들에게 추대되어 다시 선우가 되었으나, 결국 호한야선우에게 사로잡혀 참수되었다.
2.2. 세력 규합과 패배
악연구제선우의 포학함을 견디지 못한 흉노인들은 전 선우의 아들 계후산을 호한야선우로 옹립했고, 악연구제선우는 패배 후 자결했다. 그러나 우현왕 등 악연구제선우의 잔당은 호한야선우를 제거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실패하고, 악연구제선우의 사촌형인 도기선우를 옹립하여 흉노는 내분 상태에 빠졌다.
기원전 57년, 오자도위는 도기선우의 명령으로 우욱건왕과 함께 각각 2만 기병을 이끌고 동방에 주둔하며 호한야선우를 대비했다. 그러나 유리당호와 호걸왕이 우현왕이 오자선우로 자립하려 한다고 참소하고, 도기선우가 우현왕 부자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도기선우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이후 호걸왕은 유리당호가 진상을 알고 자신을 죽이려 하자 달아나 호걸선우를 자칭했고, 우욱건왕도 자립하여 거리선우를 칭했으며, 오자도위 역시 오자선우를 칭하면서 흉노에는 호한야선우를 포함해 다섯 명의 선우가 난립하게 되었다.
오자선우는 도기선우의 중신 도륭기에게 패배했고, 거리선우와 함께 서북쪽의 호걸선우에게 달아났다. 이들은 함께 선우 칭호를 버리고 거리선우를 선우로 추대했다. 기원전 56년, 도기선우가 패망하고 거리선우가 호한야선우에게 투항하자, 오자도위는 이릉의 아들에게 추대되어 다시 선우가 되었으나, 결국 호한야선우에게 사로잡혀 참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