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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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읍은 전한 문제의 아들로, 기원전 178년에 양나라의 왕으로 봉해졌다. 문제의 막내 아들로서 특별한 총애를 받았으며, 기원전 174년에는 가의를 태부로 삼았다. 기원전 169년 낙마 사고로 사망했으며, 양나라는 폐지되었다. 그의 죽음 이후 가의 또한 슬픔으로 인해 사망했다.

유읍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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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 제국 행정 구역 (기원전 156년)
유읍(劉揖)
시호효(孝)
작위평성사왕(평성사왕/平城思王)
성씨유(劉)
생몰 기간기원전 187년 ~ 기원전 179년
시대전한
아버지문제
어머니신원평의 여종
형제경제 등
봉국평성
가계
부황문제
모후신원평의 여종
형제경제
양효왕 유무
양회왕 유참
가족 관계
문제
신원평의 여종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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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기원전 178년, 전한 문제는 아들들을 왕으로 봉하면서 유읍을 양나라 왕으로 임명했다. 이는 전년에 폐지된 양나라를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기원전 174년에는 낙양의 수재로 칭송받던 가의를 태부로 삼았다.

문제의 막내 아들이었던 유읍은 다른 아들들보다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기원전 169년 6월에 낙마 사고로 사망했고, 시호는 회왕이었다.

2.1. 양나라 왕 즉위

기원전 178년, 전한 문제는 아들들을 왕으로 봉하면서 유읍을 양나라 왕으로 임명했다. 이는 전년에 폐지된 양나라를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유읍은 문제의 막내아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아들들보다 특별히 귀여움을 받았다. 기원전 174년에는 낙양의 수재로 칭송받던 가의를 태부로 삼았다.

2.2. 가의의 등용과 양나라 통치

기원전 174년, 문제는 낙양 출신의 명망 높은 학자 가의를 양나라 태부로 임명했다. 가의는 유읍의 스승이자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회남 지역에 대한 방비책으로 양나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유읍 사후 양나라를 회양왕 유무대왕 유참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막내 아들이었던 유읍은 다른 아들들보다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기원전 178년 양왕에 봉해졌고, 기원전 169년 6월에 낙마 사고로 사망했다. 시호는 회왕이었다. 가의는 유읍의 죽음으로 인해 마음이 상해 항상 곡을 하다가 몇 년 못 가 죽었다.

2.3. 낙마 사고와 죽음

梁懷王중국어 劉揖중국어은 기원전 169년 6월에 낙마 사고로 사망했다. 양회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양나라는 폐지되었다. 양나라 태부 가의는 회남에 대한 방비책으로 양나라를 양회왕의 형인 회양왕 유무나 대왕 유참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고, 문제가 이를 받아들여 이듬해에 유무가 대신 봉해졌다. 가의는 양회왕의 죽음으로 인해 마음이 상해 항상 곡하다가 몇 년 못 가 죽었다.

2.4. 유읍 사후

가의는 유읍의 죽음에 마음이 상해 항상 곡하다가 몇 년 못 가 죽었다. 유읍이 낙마하여 사망하자, 가의는 회남에 대한 방비책으로 양나라를 유읍의 형인 회양왕 유무나 대왕 유참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가의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듬해에 유무를 양나라 왕으로 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