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국 (양경왕)
1. 개요
유정국(양경왕)은 양정왕 유무상의 아들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양나라의 왕이 되었다. 그는 교만하고, 재상들이 다스리기 어려울 정도로 호걸들이 많았다. 유정국은 양경왕 40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 유수가 왕위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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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아버지가 양정왕 11년(기원전 86년)에 죽자 그 뒤를 이어 양왕이 되었다. 양경왕 40년(기원전 46년)에 죽어 아들 유수가 왕위를 계승했다.
양경왕은 교만했고, 그의 치세에는 양나라에 호걸이 많아 재상이 다스리기 어려웠다.
2.1. 양왕 재위
아버지 양정왕 11년(기원전 86년)에 죽자 그 뒤를 이어 양왕이 되었고, 양경왕 40년(기원전 46년)에 죽어 아들 유수가 왕위를 계승했다.
양경왕은 사람됨이 교만하였고, 그의 치세에는 양나라에 호걸이 많아 재상이 다스리기 어려웠다.
3.1. 가계 관련 추가 설명
劉定國중국어은 양정왕 유무상의 아들이다.
양이왕 유수, 세향후 유평, 악후 유의, 중향후 유연년, 정경후 유피군, 황절후 유순, 평악절후 유천, 치향희후 유취, 동향절후 유방, 능향후 유흔, 율양후 유흠, 이향후 유고, 고시절후 유발, 임도절후 유미앙, 고질후 유순은 모두 유정국의 형제들이다. 세향후 이하는 모두 건소 원년(기원전 38년) 정월에 봉해졌다.
4. 출전
반고가 지은 한서 제후왕표제2와 문삼왕전제17에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