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 (항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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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조는 전한의 인물로, 항산왕이었다. 기원전 187년 지후에 봉해졌으며, 여후 4년(기원전 184년) 항산왕 유의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항산왕이 되었다. 여후 사후 주발, 진평 등이 여씨 세력을 타도하면서 소제, 양왕 유태, 회양왕 유무와 함께 주살되었다.

유조 (항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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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내용 없음)

2.1. 황제 즉위 전

기원전 187년(고후 원년), 여태후가 여씨 일족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먼저 혜제의 서자들을 왕후로 봉하면서 유조는 지후(軹侯)에 봉해졌다. 기원전 184년(여후 4년), 여태후가 자신에게 반발하던 당시 황제를 폐위하고 항산왕이었던 유의를 새 황제로 세우면서, 유조가 항산왕 자리를 이어받았다.

기원전 180년(고후 8년), 여태후가 사망했을 때 유조는 아직 어려 봉국으로 가지 않고 장안에 머물고 있었다. 이는 여태후의 다른 손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여태후 사후 주발, 진평, 성양경왕 유장 등이 여씨 세력을 제거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이들은 여태후의 손자들이 실제로는 혜제의 아들이 아니며 여태후가 꾸며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항산왕 유조는 당시 황제였던 소제 유의, 양왕 유태, 회양왕 유무와 함께 주살되었다.

2.2. 여씨 세력 몰락과 죽음

기원전 180년(고후 8년), 여태후가 사망했을 당시 유조는 아직 어려서 다른 여태후의 손자들과 함께 봉국으로 가지 못하고 장안에 머물고 있었다. 이때 주발, 진평, 성양경왕 등이 여씨 세력을 타도하는 정변을 일으켰다. 이들은 여태후가 혜제의 아들이 아닌 아이들을 황제의 아들로 속여 왕위에 앉혔다고 주장하며, 여태후 손자들의 정통성을 부정하였다. 결국 항산왕 유조는 소제, 양왕 유태, 회양왕 유무와 함께 주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