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초 (평제장후)
1. 개요
유초는 기원전 68년 4월에 평제후에 봉해졌으나 그 해에 사망한 전한의 제후이다. 시호는 장(莊)이며, 작위는 아들 유영이 이었다. 《한서》 권15상 왕자후표 上에 관련 기록이 있다.
유초 (평제장후)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기원전 68년 사망 -
곽광
곽광은 곽거병의 이복 동생으로, 한 무제의 신임을 받아 섭정하며 어린 소제를 보좌하고 한 선제를 옹립했으며, 훌륭한 통치 능력으로 존경받았으나 독재적인 통치 스타일과 족벌주의로 비판받기도 한다. -
기원전 68년 사망 -
유장 (선처절후)
유장은 전한 시대 선처후 유기의 아들로, 기원전 71년에 선처후 작위를 계승하고 기원전 68년에 사망하여 선처절후로 평가받았으며, 청렴하고 신중한 성품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
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
전한의 열후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전한의 열후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2.2. 사후
지절 2년(기원전 68년) 4월 계묘일에 평제후(平隄侯)에 봉해졌으나 그 해에 죽었다. 시호는 장(莊)으로 추증되었고, 작위는 아들 유영이 계승하였다.
3. 가계
4. 출전
반고의 한서 권15상 왕자후표 上에 관련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