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취
1. 개요
유취는 건소 원년(기원전 38년)에 아버지 유정국의 뒤를 이어 치향후에 봉해진 전한 시대의 열후이다. 치향후는 현재의 산둥성 지역에 위치했으며, 유취는 희후라는 시호를 받았고, 작위는 아들 유봉희가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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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내시는 아버지 유종의 뒤를 이어 동양경후 작위를 받았으며, 시호는 경, 아들은 유봉친이다.
2. 생애
건소 원년(기원전 38년), 유취는 아버지 유정국의 뒤를 이어 치향후(菑鄕侯)에 봉해졌다. 이는 전한 시대 제후왕의 아들이 열후(列侯)에 봉해지는 전형적인 사례 중 하나로, 황실의 권위를 유지하고 지방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유취가 봉해진 치향(菑鄕)은 현재의 산둥성(山東省) 지역으로 추정되며, 당시 전한의 주요 통치 거점 중 하나였다. 시호는 희(釐)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유봉희가 이었다. 사후 희후(釐侯)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작위는 아들 유봉희(劉奉僖)가 계승하였다.
2.1. 치향후 책봉
건소 원년(기원전 38년), 유취는 아버지 유정국의 뒤를 이어 치향후(菑鄕侯)에 봉해졌다. 이는 전한 시대 제후왕의 아들이 열후(列侯)에 봉해지는 전형적인 사례 중 하나로, 황실의 권위를 유지하고 지방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유취가 봉해진 치향(菑鄕)은 현재의 산둥성(山東省) 지역으로 추정되며, 당시 전한의 주요 통치 거점 중 하나였다. 시호는 희(釐)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유봉희가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