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 (서향후)
1. 개요
유쾌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서향후에 봉해졌다. 왕망이 신나라를 건국하자 무리 수천 명을 이끌고 즉묵을 포위했으나, 즉묵 백성들의 저항에 실패하고 달아나다 장광에서 사망했다.
-
9년 사망 -
해명 (고구려)
-
9년 사망 -
푸블리우스 큉크틸리우스 바루스
-
전한의 열후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전한의 열후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전한의 종실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전한의 종실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2. 생애
원연 원년(기원전 12년)에 서향후(徐鄕侯)에 봉해졌다. 이후 신 시건국 원년(9년), 왕망이 제위를 찬탈하고 신나라를 세우자 이에 반발하여 봉국에서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거병하였다. 그는 즉묵(卽墨)을 포위 공격하였으나, 즉묵 백성들의 저항에 부딪혀 실패하고 달아나던 중 장광(長廣)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2.2. 왕망의 신나라 건국과 반란
원연 원년(기원전 12년), 유쾌는 서향후(徐鄕侯)에 봉해졌다.
신 시건국 원년(9년), 왕망이 전한의 제위를 찬탈하고 신나라를 세우자, 유쾌는 이에 반발하여 봉국에서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거병하였다. 그러나 이 시도는 즉묵(卽墨) 백성들의 저항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고, 유쾌는 달아나다 장광(長廣)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2.2.1. 즉묵성 전투
신 시건국 원년(9년), 왕망이 전한의 제위를 찬탈하고 신나라를 세우자, 유쾌는 이에 반발하여 봉국에서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거병하였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즉묵(卽墨)을 포위 공격하였다. 그러나 즉묵의 백성들은 유쾌의 공격에 굴하지 않고 힘을 합쳐 저항했고, 결국 유쾌의 군대를 물리쳤다. 이 싸움에서 패배한 유쾌는 달아나다가 장광(長廣)에서 죽었다. 이 사건은 왕망 정권에 대한 반발뿐만 아니라, 외부의 공격에 맞선 민중의 자발적인 저항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2.3. 최후
신 시건국 원년(9년), 왕망이 제위를 찬탈하고 신나라를 세우자, 유쾌는 이에 반발하여 무리 수천 명을 모아 봉국에서 거병하였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즉묵(卽墨)을 포위하였으나, 즉묵 백성들의 저항에 부딪혀 패배하였다. 유쾌는 달아나던 중 장광(長廣)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하였다.
3. 출전
* 반고, 《한서》 권15하 왕자후표 下·권99중 왕망전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