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필
1. 개요
유필은 고려 시대의 문신으로, 글재주와 행실로 명성이 높았다. 1143년 금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으며, 이후 지주사, 이부시랑, 추밀원부사, 비서감, 지추밀원사, 지문하성사 등을 역임하며 고위 관직에 올랐다. 1152년에는 수국사를 겸임하고, 두 차례 과거를 주관했으며, 태자태사를 겸직하기도 했다. 1155년에 사망했으며, 공숙이라는 시호를 받고 의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그의 강직한 성품은 정함의 관직 임명을 반대하여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은 일화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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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콜롬비아 |
|---|---|
| 주 | 카사나레 주 |
| 면적 | 2771km² |
| 해발고도 | 945m |
| 인구 (2018년) | 129,733명 |
| 시간대 | UTC-5 |
| 시장 | Marco Tulio Ruiz Riañ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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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사이트 | 요팔 공식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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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이부시랑 -
왕자지
왕자지는 고려 시대 문신으로, 왕국모의 쿠데타를 통해 요직에 발탁되었고, 윤관의 여진족 정벌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으며,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송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
고려의 이부시랑 -
서눌
서눌은 996년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형부시랑, 상서이부시랑 등을 역임하고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고려 전기의 문신으로, 딸 원목왕후가 현종의 비가 되면서 문하시중에 올랐으며, 거란과의 외교 관계에서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
무송 유씨 -
유민봉
유민봉은 대한민국의 행정학자이자 정치인으로,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 제20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현재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사무총장 및 국가교육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무송 유씨 -
유용원
유용원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군사 분야 전문성을 쌓았고, 다양한 저서 집필 및 방송 활동을 거쳐 제2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방위원회 위원과 국민통합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
1155년 사망 -
고노에 천황
도바 상황의 원정 정치 하에 명목상의 군주였던 고노에 천황은 스토쿠 천황의 양위를 받아 즉위했으나 후계자 문제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
1155년 사망 -
몬머스의 제프리
몬머스의 제프리는 아서 왕 전설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한 중세 작가이자 성직자이며, 《브리타니아 열왕사》, 《멀린의 예언》, 《멀린의 생애》 등의 작품을 남겼다.
2. 생애
유필은 글재주와 행실이 뛰어나 명성이 높았으며, 훗날 두 차례 과거 시험관을 맡은 것으로 보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1143년(인종 21) 금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만수절(萬壽節)을 축하하였다. 1147년(의종 원년) 지주사(知奏事)·이부시랑(吏部侍郎)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동지공거(同知貢擧)로서 과거를 주관했고, 같은 해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1149년 비서감(秘書監), 1150년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에 차례로 임명되었다.
1151년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에 임명되었고, 최유청, 문공원과 함께 최자영, 왕식, 김영부, 박소 등의 간관(諫官)을 이끌고 대궐문에 엎드려 정서의 죄를 왕에게 아뢰어 유배 보내도록 하였다. 같은 해 참지정사(參知政事)·판병부사(判兵部事),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차례로 임명되었다.
1152년 수국사(修國史)를 겸직했고, 지공거(知貢擧)로서 다시 한번 과거를 주관했으며, 권신 김존중(金存中)의 건의로 태자태사(太子太師)를 겸직했다. 같은 해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수문전대학사(修文殿大學士)·판이부사(判吏部事)에 임명되었다가, 1155년 세상을 떠났다.
사후 공숙(恭肅)이라는 시호를 받고 의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2.1. 초기 관직 생활
글재주와 행실로 명성이 있었다. 후대에 두 차례 과거 시험관을 맡은 것으로 보아, 본인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1143년(인종 21) 금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만수절(萬壽節)을 축하하였다. 1147년(의종 원년) 지주사(知奏事)·이부시랑(吏部侍郎)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동지공거(同知貢擧)로서 과거를 주관했고, 같은 해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1149년(의종 3) 비서감(秘書監), 1150년(의종 4)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에 차례로 임명되었다.
1151년(의종 5)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에 임명되었고, 최유청(崔惟淸)·문공원(文公元)과 함께 간관(諫官) 최자영(崔子英)·왕식(王軾)·김영부(金永夫)·박소 등을 데리고 대궐문에 엎드려, “정서가 대령후(大寧侯)와 친하게 지내며 자기 집에 불러다가 잔치를 베풀고 논다하니 그 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왕에게 아뢰어, 정서를 유배보내도록 했다. 같은 해 참지정사(參知政事)·판병부사(判兵部事),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차례로 임명되었다.
1152년(의종 6) 수국사(修國史)를 겸직했고, 지공거(知貢擧)로서 또다시 과거를 주관했으며, 태자태사(太子太師)를 겸직했는데, 이는 권신 김존중(金存中)이 태자의 교육은 재상이 담당하도록 건의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해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수문전대학사(修文殿大學士)·판이부사(判吏部事)에 임명되었다가, 1155년(의종 9)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 공숙(恭肅)이라는 시호를 받고 의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2.2. 고위 관직 역임
글재주와 행실로 명성이 있었으며, 후에 두 차례 과거의 시험관을 맡은 점으로 보아 본인도 과거에 급제하여 출사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1143년(인종 21) 금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만수절(萬壽節)을 축하하였고, 1147년(의종 원년) 지주사(知奏事)·이부시랑(吏部侍郎)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동지공거(同知貢擧)로서 과거를 주관했고, 같은 해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1149년(의종 3) 비서감(秘書監), 1150년(의종 4)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에 차례로 임명되었다.
1151년(의종 5)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에 임명되었고, 최유청·문공원과 함께 간관(諫官) 최자영·왕식(王軾)·김영부·박소 등을 데리고 대궐문에 엎드려, “정서가 대령후와 친교를 맺고 자기 집에 불러다가 잔치를 베풀고 논다 하니 그 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주장하여, 왕이 정서를 유배 보내도록 했다.
같은 해 참지정사(參知政事)·판병부사(判兵部事),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차례로 임명되었다.
1152년(의종 6) 수국사(修國史)를 겸직했고, 지공거(知貢擧)로서 또다시 과거를 주관했으며, 태자태사(太子太師)를 겸직했는데, 이는 권신 김존중(金存中)이 태자의 교육은 재상이 담당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건의했기 때문이었다.
같은 해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수문전대학사(修文殿大學士)·판이부사(判吏部事)에 임명되었다가, 1155년(의종 9) 사망하였다.
2.3. 사망
1155년(의종 9) 사망했다.
사후 공숙(恭肅)이라는 시호를 받고 의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3. 성품
천성이 강직하여 남에게 아첨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