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 (발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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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홍은 후한 시대의 인물로, 낙안왕 유총의 아들이다. 121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낙안왕이 되었으며, 146년 낙안의 지리적 조건 때문에 발해왕으로 봉해졌다. 147년에 사망하여 시호를 효(孝)라 하였으며, 후사가 없어 후한 환제의 동생인 유괴가 발해왕위를 이었다.

유홍 (발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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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년 사망 - 유산 (청하왕)
    유산은 후한의 황족이자 청하효왕의 아들로 청하왕을 지냈으나, 환관의 미움을 받아 황제 옹립 과정에서 배제되고 황제 추대 시도 실패 후 위씨후로 강등되어 유배 후 자결하였다.

2. 생애

유총의 아들로, 122년 아버지 유총이 경사(京師)에서 사망하자 그 지위를 계승하였다.

145년 후한 충제가 3살의 나이로 사망하자 그의 아들 유찬이 후한 질제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실권은 양태후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질제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146년 (본초 원년) 양태후는 낙안의 지리적 조건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유홍을 발해왕(勃海王)으로 개봉하였다. 이후 질제가 양기에게 살해당했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147년 (건화 원년)에 사망하였다. 시호는 효(孝)로, 발해효왕(勃海孝王)이라 하였다. 질제가 사망하여 후사가 없었기에 양태후는 후한 환제의 동생인 여오후 유회를 발해왕으로 봉하고 유홍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2.1. 가계와 초기 생애

유총의 아들로 태어났다. 121년(영녕 2년)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낙안왕의 봉작을 이었다. 안제가 사망하자 처음으로 낙안국으로 부임했다. 127년(영건 2년) 1월, 유홍은 낙양으로 조근했다.

145년 후한 충제가 3살의 나이로 사망하자 그의 아들인 유찬이 후한 질제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실권은 양태후가 장악한 상태였기에 질제는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146년(본초 원년) 5월 경인, 양태후가 낙안의 지리적 조건이 좋지 않음을 사유로 들어 유홍을 발해왕(勃海王)으로 개봉하였다. 이후 질제가 양기에게 살해당했음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147년(건화 원년) 7월, 사망하니 시호를 효(孝)라고 하여 발해효왕(勃海孝王)이 되었다. 질제가 사망해 후사가 없었기에 양태후는 후한 환제의 동생인 여오후 유회를 발해왕으로 봉하고 유홍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2.2. 발해왕 즉위와 사망

146년(본초) 5월, 양태후는 낙안의 지리적 조건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유홍을 발해왕(勃海王)으로 개봉하였다. 이후 질제가 양기에게 살해당했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147년(건화 원년) 7월에 사망하였다. 시호는 효(孝)로, 발해효왕(勃海孝王)이라 하였다. 질제가 사망하여 후사가 없었기에 양태후는 후한 환제의 동생인 여오후 유회를 발해왕으로 봉하고 유홍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2.3. 사후

146년(본초) 양태후가 낙안의 지리적 조건이 좋지 않음을 이유로 유홍을 발해왕(勃海王)으로 개봉하였다. 이후 질제가 양기에게 살해당했음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147년(건화 원년) 사망하니, 시호를 효(孝)라 하여 발해효왕(勃海孝王)이 되었다. 질제가 사망하여 후사가 없었기에, 양태후는 후한 환제의 동생인 여오후 유회(劉悝)를 발해왕으로 봉하고 유홍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