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훤
1. 개요
유훤은 사수대왕 유하의 유복자로, 사수나라가 폐지될 위기에 처했으나 태후의 상소로 황제 소제가 상과 내사를 처벌하고 사수나라를 다시 세워 사수왕이 되었다. 그는 사수근왕 39년에 사망했으며, 아들 유준이 왕위를 이었다. 자녀로는 유준 외에 유정, 유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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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2년 사망 -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의 주모자이며,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카이사르를 암살했으나 내전에서 패배하여 자결했다. -
기원전 42년 사망 -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는 기원전 1세기의 로마 정치인이자 군인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의 주모자였으며, 필리피 전투에서 패배하여 자결했다. -
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기원전 1세기 중국 사람 -
사마천
사마천은 중국 전한 시대의 역사가, 천문학자, 역법가로서 중국 최초의 통사로 평가받는 『사기』를 저술하여 기전체를 확립하고 역사 서술과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릉 변호 사건으로 궁형을 받는 고난을 겪었으며 태초력 제정에도 참여하는 등 천문학과 역법에도 업적을 남겼다. -
전한의 제후왕 -
전한 무제
전한의 제7대 황제인 전한 무제는 54년간 재위하며 유교 기반 중앙집권 강화, 흉노 정벌을 통한 영토 확장, 소금과 철의 전매제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여 전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과도한 군사 지출, 사치스러운 생활, 무고의 난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였다. -
전한의 제후왕 -
유굉 (광릉왕)
2. 생애
사수나라의 상과 내사가 사수대왕 유하에게 유복자가 있음을 알지 못해 사수나라가 폐지될 뻔했으나, 태후가 상소를 올려 황제 소제가 상과 내사를 하옥하고 사수나라를 다시 세워 유훤을 사수왕으로 세웠다.
39년(기원전 42년)에 죽어 아들 여왕 유준이 뒤를 이었다.
2.1. 출생과 즉위
사수대왕 유하의 유복자로, 사수나라의 상과 내사가 사수대왕에게 유복자가 있음을 알지 못하여 사수나라는 폐지될 뻔했다. 태후가 상소를 올리자, 황제 소제는 상과 내사를 처벌하여 하옥하고 사수나라를 다시 세워 유훤을 사수왕으로 세웠다.
2.2. 통치와 사망
사수근왕 유훤은 유하의 유복자였다. 사수나라의 상과 내사는 사수대왕에게 유복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사수나라를 폐지했다. 태후가 상소를 올리자, 황제 소제는 상과 내사를 처벌해 하옥하고 사수나라를 다시 세워 유훤을 사수왕으로 임명했다.
사수근왕 39년(기원전 42년)에 사망하였고, 아들 여왕 유준이 왕위를 계승했다.
3. 가계
아버지는 사수대왕 유하이다. 아들로는 사수여왕, 우향절후, 취향절후가 있었다.
3.1. 부계
3.2. 자녀
사수여왕 유준, 우향절후 유정, 취향절후 유위는 유훤의 아들들이다.
유정과 유위는 영광 3년(기원전 41년) 3월에 후로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