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흔 (악평후)
1. 개요
유흔은 전한의 제후로, 회양헌왕 유흠의 아들이다. 양삭 2년(기원전 23년)에 악평후에 봉해졌으나 정신이 미쳐 작위가 박탈되었고, 원수 2년(2년)에 공악후에 봉해졌다. 이듬해 아들들이 열후에 봉해졌지만 유흔의 작위를 잇지 않고 다른 땅에 봉해졌으며, 1년 만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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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양삭 2년(기원전 23년), 악평후(樂平侯)에 봉해졌으나, 정신이 미쳐버려 작위가 박탈되었다.
원수 2년(2년), 공악후(共樂侯)에 봉해졌다. 이듬해에 아들들이 열후에 봉해졌는데, 유흔의 작위를 잇지 않고 모두 다른 땅에 봉해졌다.
2.1. 악평후 시절
양삭 2년(기원전 23년), 악평후(樂平侯)에 봉해졌으나, 정신이 미쳐버려 작위가 박탈되었다.
원수 2년(2년), 공악후(共樂侯)에 봉해졌다. 이듬해에 아들들이 열후에 봉해졌는데, 유흔의 작위를 잇지 않고 모두 다른 땅에 봉해졌다.
2.2. 공악후 시절
원수 2년(2년), 공악후(共樂侯)에 봉해졌다. 이듬해에 아들들이 열후에 봉해졌는데, 유흔의 작위를 잇지 않고 모두 다른 땅에 봉해졌다.
3. 가계
유흔은 전한의 제후로, 회양헌왕 유흠의 아들이다. 기원전 23년 윤6월 임오일에 악평후로 봉해졌다. 이후 기원전 1년에 공악후로 봉해졌으나 1년만에 사망하였다.
| 아버지 | 어머니 | 형제자매 |
|---|---|---|
| 회양헌왕 유흠 | 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