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우옌반비
1. 개요
응우옌반비는 1916년 하노이에서 태어난 베트남 군인이다. 프랑스 식민 정부군에서 복무를 시작하여, 베트남 전쟁과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베트남 국민군 국방부 장관을 거쳐, 1967년 남베트남 육군 참모총장, 1968년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부패 혐의로 해임된 후 가택 연금되었으며, 1981년 프랑스에서 사망했다.
| 이름 | 응우옌반비 (Nguyễn Văn Vy) |
|---|---|
| 출생일 | 1916년 1월 16일 |
| 출생지 | 하노이, 통킹,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
| 사망일 | 1981년 |
| 사망지 | 생망데, 프랑스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소속 | 베트남 국가군 베트남 공화국군 |
|---|---|
| 복무 기간 | 19??년 - 1955년 10월 25일 (베트남 국가군) 1955년 10월 26일 - 1975년 4월 30일 (베트남 공화국군) |
| 최종 계급 | |
| 충성 | 베트남국 |
| 병과 | 베트남 국가군 베트남 공화국군 |
| 직책 | 남베트남 국방부 장관 |
|---|---|
| 임기 시작 | 1967년 11월 9일 |
| 임기 종료 | 1972년 8월 6일 |
| 대통령 | 응우옌반티에우 |
| 이전 | 까오반비엔 |
| 이후 | 쩐티엔키엠 |
-
베트남의 범죄인 -
즈엉반민
즈엉반민은 응오딘지엠 정권 축출 쿠데타를 주도하고 베트남 공화국의 마지막 대통령으로서, 사이공 함락 직전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여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킨 인물이다. -
남베트남의 장군 -
즈엉반민
즈엉반민은 응오딘지엠 정권 축출 쿠데타를 주도하고 베트남 공화국의 마지막 대통령으로서, 사이공 함락 직전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여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킨 인물이다. -
남베트남의 장군 -
응우옌응옥로안
응우옌응옥로안은 남베트남의 군인이자 경찰 총수로, 테트 공세 당시 베트콩 대위를 즉결 처형한 사진으로 국제적 논란의 중심에 섰으며, 후에에서 태어나 공군 장교로 복무, 국가 경찰 총감으로 권력을 휘둘렀고, 사이공 함락 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암으로 사망했다. -
베트남에서 프랑스로 이민간 사람 -
아만다 레아
아만다 레아는 프랑스 출신의 다재다능한 연예인으로, 모델 활동으로 이름을 알린 후 살바도르 달리의 뮤즈로 활동하며 예술계에 영향을 미쳤고, 디스코 음악 가수로 유럽에서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방송, 영화, 연극, 저술,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다. -
베트남에서 프랑스로 이민간 사람 -
쩐아인훙
베트남 태생의 프랑스 영화 감독 쩐아인훙은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데뷔하여 칸 영화제 황금 카메라상, 세자르상 신인 감독상,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 등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2. 생애
응우옌반비는 1916년 하노이의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노이 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1939년 프랑스가 하노이에 세운 선떠이 군사학교 1년 과정에 입학하여 1940년 프랑스령 통킹 식민 정부군 소위가 되었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국민군을 지휘하여 프랑스군을 지원했으나, 베트남 독립동맹회의 매복 작전에 의해 프랑스군은 패배했다.
2.1. 초기 생애와 군 경력
응우옌반비는 1916년 하노이의 중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노이 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1939년 프랑스가 하노이에 세운 선떠이 군사학교 1년 과정에 입학하여 1940년 프랑스령 통킹 식민 정부군 소위가 되었다. 1942년에는 통킹 식민군 제4 보병연대의 소대장(중위)으로 진급하였고, 1945년 대위로 승진하였다. 1947년에는 프랑스군이 베트남 독립동맹회를 후방에서 타격할 목적으로 조직한 제3 레인저 부대 중대장이 되었다.
1949년 프랑스가 괴뢰국인 베트남국을 수립하고 베트남 국민군을 창설하였으나, 그는 1952년까지 북베트남 내에서 프랑스군 게릴라 지휘관으로 복무하며 베트남 독립동맹회에 대한 후방 공격을 담당하여 프랑스 본군에 소속된 상태였다. 1952년 이후에는 한국 전쟁 지원에도 참여하였으며, 당시 계급은 대령이었다.
2.2. 베트남 국군 복무
응우옌반비는 1940년 프랑스령 통킹 식민 정부군 소위로 임관하여, 1942년 통킹 식민군 제4 보병연대 소대장(중위)으로 진급했다. 1945년 대위, 1947년 프랑스군 제3 레인저 부대 중대장을 역임했다. 1949년 프랑스가 베트남국을 수립하고 베트남 국민군을 창설했으나, 1952년까지 프랑스군 소속으로 베트남 독립동맹회를 공격하는 게릴라 부대 지휘관으로 복무했다. 이후 한국 전쟁에도 참전했으며, 당시 계급은 대령이었다. 베트남 국민군으로 복귀한 후에는 베트남국의 국방부 장관이 되었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국민군을 지휘하여 프랑스군을 지원했으나, 베트남 독립동맹회의 매복 작전에 의해 프랑스군은 패배했다.
3. 베트남 공화국 (남베트남)에서의 활동
베트남 공화국 수립 이후 응우옌반비는 베트남 국군 장성으로 승진했다. 그는 디엔비엔푸 전투 참전 용사였으며, 한국 연합군 상륙 작전에도 참여했다. 응우옌 반 힌 장군 휘하의 베트남 국민군에서 복무하다가, 1974년 3월 가택 연금에서 해제되었다. 1981년 베쟁 군사 교육 병원에서 65세로 사망했다.
3.1. 응오딘지엠 정권 시기
응오딘지엠 정부는 극단적인 친프랑스 성향의 응우옌반비를 신뢰하지 않아, 그는 군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1955년 5월 1일, 응우옌반비는 응오딘지엠이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해 황제 바오다이의 이름으로 군대를 장악하려다 체포되어 프랑스로 망명해야 했다.
3.2. 쿠데타 가담과 권력 복귀
응우옌 반 비는 1963년 즈엉반민의 쿠데타에 참가하여 응오딘지엠 암살에 관여하였다. 1년 후 응우옌카인이 다시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응우옌카인 내각에 의해 즈엉반민의 쿠데타를 도운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석방되었다.
3.3. 티우 내각
1967년 응우옌반비는 베트남 공화국 육군 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같은 해 2월 응우옌까오끼가 주도하는 군사반부패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1968년 5월 25일 국방부 장관에 임명되었고, 남베트남 군인을 위한 정부 운영 연금 기금을 관리했다.
그러나 그는 이 기금에서 수백만 달러를 횡령하여 군납 운송회사, 도로 및 교량 건설사, 보험회사 등에 투자하다 1971년 적발되었다. 1972년 8월 6일 티우 내각은 횡령, 부패 등을 이유로 그를 국방부 장관에서 해임하고 가택 연금 조치를 내렸다.
3.4. 부패 스캔들과 몰락
1968년 5월 25일 국방부 장관이 된 응우옌반비는 남베트남 군인들을 위한 정부 운영 연금 기금인 군인 상호 원조 및 저축 기금(SMASF)을 관리했다. 그러나 그는 이 기금에서 수백만 달러를 횡령하여 군납 운송회사, 도로 및 교량 건설사, 보험회사 등에 투자하다가 1971년에 적발되었다. 1972년 8월 6일, 응우옌 반 티에우 대통령은 횡령 및 부패 혐의로 그를 국방부 장관직에서 해임하고 가택 연금 조치를 내렸다. 이는 응우옌 반 티에우 정권의 부패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4. 사망
1981년 프랑스 생망데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