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비 야속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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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의비 야속진은 고려 충선왕의 후궁으로, 충숙왕의 어머니이다. 원나라 황족 출신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충선왕이 세자 시절 원나라에 머물 때 혼인한 것으로 보인다. 1316년에 원나라에서 사망하여 고려에서 장례를 치렀으며, 사후 의비로 추증되었다. 그녀는 충선왕과의 사이에서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은 광릉군 왕감이며, 차남은 고려 충숙왕이다.

의비 야속진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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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충선왕
기본 정보
배우자충선왕
봉작
시호의비 (懿妃)
야속진 (也速眞)
원 이름예쉬진 (也速眞, Yěsùzhēn)
출생미상
출생지원나라
사망1316년 음력 7월 18일
사망지원나라
묻힌 곳연릉
국적원나라, 고려
가문왕씨 (혼인으로)
자녀세자 감, 충숙왕
가계
아버지미상
어머니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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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골계 한국인 - 충선왕
    충선왕은 고려 제26대 왕으로 즉위 후 원나라 간섭 속에서 심양왕에 봉해졌으며, 고려와 심양을 동시에 통치하는 동군연합을 이루었으나 개혁 정치는 실패하고 티베트로 유배되었다.

2. 생애

그녀의 가계에 대해서는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고 시호에도 공주(公主)라는 단어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원나라 황족 출신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충선왕은 세자로 있던 시절 원나라에 자주 머물렀는데, 아마 이때 그녀와 혼인한 것으로 보인다. 의비 소생의 둘째 아들인 충숙왕이 1294년에 태어난 것을 볼때, 적어도 그녀는 1296년 충선왕과 결혼한 정비 계국대장공주보다 빨리 충선왕에게 시집을 왔을 것으로 보인다.

1316년(충숙왕 3년) 음력 7월 18일원나라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시신은 음력 8월 3일 고려로 들어왔으며, 음력 8월 20일에 장례를 치렀다. 그녀의 시신은 화장 후 가매장되었다가 사망 3년 후에 을 마련하였고, 능호는 연릉(衍陵)이라 하였다. 그녀의 영정은 청운사(靑雲寺)를 거쳐 묘련사(妙蓮寺)에 봉안되었다. 사후에 의비(懿妃)에 추증되었다.

남편 충선왕과의 사이에서 아들 둘을 낳았다. 장남은 광릉군에 봉해진 왕감(王鑑)으로, 한때 세자에 책봉되었다가 1310년 음력 5월에 부왕 충선왕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에 의비의 차남이 대신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곧 충숙왕이다.

3. 사망과 장례

1316년 (충숙왕 3년) 음력 7월 18일원나라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시신은 음력 8월 3일 고려로 들어왔으며, 음력 8월 20일에 장례를 치렀다. 시신은 화장 후 가매장되었다가 사망 3년 후에 을 마련하였고, 능호는 연릉(衍陵)이라 하였다. 영정은 청운사(靑雲寺)를 거쳐 묘련사(妙蓮寺)에 봉안되었다. 사후에 의비(懿妃)에 추증되었다.

야속진의 장례 준비가 고려에서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신은 화장되어 원나라에 묻혔으며, 고려 관리 김이(金怡)가 매달 묘를 찾아 고기와 술을 바쳤다. 3년 후, 충숙왕은 어머니의 묘를 칸발리크 근처 서산에 있는 묘소로 옮기려 했으나, 김이는 이에 반대했다. 김이는 점술가에게 돈을 주고 왕에게 "자신의 나라에 모시면 나중에 재앙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게 했다. 그 후 음력 8월 3일에 시신이 고려로 옮겨졌고, 음력 8월 20일에 장례가 거행되었다. 왕은 설득당하여 야속진의 유해를 고려로 가져와 사망 3년 후 묘역이 준비된 연릉(衍陵)에 안장했다. 위패는 "청운사(靑雲寺)"를 거쳐 "묘련사(妙蓮寺)"에 봉안되었다.

4.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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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내용
불명
불명
남편충선왕
장남광릉군 감 (? ~ 1310년)
차남충숙왕 (1294년 ~ 1339년, 재위 : 1313년 ~ 1330년, 1332년 ~ 1339년) - 고려의 제27대 왕